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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용린 칼럼] 앞서 가는 전략, 양궁에서 배워라
오피니언 문용린 칼럼

[문용린 칼럼] 앞서 가는 전략, 양궁에서 배워라

2012 런던 올림픽이 마침내 끝났다. 유례없이 혹독하게 더운 여름을 이 올림픽 덕분에 그나마 잘 견뎌냈다. 여름은 덥고 힘들었지만, 올림픽의 젊은 건아들이 보여준 쾌거는 한국인의 자부심을 만끽하게 해준 고귀한 기회였다.

이는 사실상 이미 높아진 한국의 국제적 위상을 스포츠 분야에서 다시 한번 확인한 것에 불과하다. 대한민국은 이미 우리 스스로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세계 260여개 국가 중에서 가장 잘 나가는 나라 중의 하나다. 제2차 세계대전 후, 원조 수혜국에서 공여국으로 변신한 나라는 우리나라가 유일하다. 런던 올림픽에 모인 엄청난 인파의 5명 중 2~3명은 국산 휴대폰을 쓰고 있었을 것이며, 전세계 65억 인구 중의 상당수가 국산 LED TV를 보고 있었을 것이다. 잘 모르긴 해도 당분간 대한민국을 선진국이든 개발 도상국이든 간에 경제발전 또는 경제운용의 모범적 사례로 삼게 될 것이다.

그러나 과연 언제까지 이런 모범적 사례로 남을 수 있을 것인가. 대한민국은 이제 기로에 서 있다.

지금까지의 성공은 다른 나라를 추격해온 따라잡기 발전 전략의 성공이었다고 하면, 이제 대한민국은 다른 나라에 앞장서서 새 길을 열어 가야하는 발전전략으로 전환해야하는 기로에 서 있다.

이번 런던 올림픽에서 극명하게 나타났듯이 양궁은 따라잡기 전략으로 이미 오래 전에 선두에 서는데 성공했고, 그 선두에 서서 자기혁신과 창의적 발상으로 선두를 유지하는 데 성공하고 있다. 그러나 태권도 영역에서는 선두유지를 위한 창의적 발상과 혁신이 두드러져 보이지 않는다.

대한민국은 지금 이처럼 추격하는 전략에서 앞장서 가는 전략으로 전환해야 하는 분기점에 와 있다.

삼성과 애플 간의 스마트 폰 특허침해 소송도 그런 분기점에서의 위기로 보아야 하고, K-팝에 대한 이웃 나라들의 곱지 않은 시선 등이 선두를 유지하는 전략으로 전환하는 분기점에서 일종의 부작용이라고 볼 수 있다.

이 분기점에서의 부작용의 본질은 뒤쫓는 전략에서의 덕목과 앞서가는 전략에서의 덕목이 갈등하는데 있다. 투지와 의욕은 ‘뒤쫓는 전략’의 핵심 덕목이다. “나도(우리도) 한번 잘 살아 보자”며 경제적 부에 대한 투지와 열망을 불태우던 지난 50여년의 우리 발전전략이 바로 그랬다.

반면, 혁신과 창의성은 ‘앞서가는 전략’의 핵심 덕목이며, ‘끊임없는 자기 혁신’이 언제나 화두가 된다. 투지와 열망이 혁신과 창의성과 조화를 이루기는 쉽지 않다. 전자는 욕심과 감정이고 후자는 합리성과 이성이기 때문이다. 현재의 성취에 도취되어 손에 든 것을 놓치지 않으려 욕심을 부리는 사이, 창의적 혁신의 기회를 놓치면, 결국 다시 뒤쳐지는 것이다. 대한민국은 많은 분야에서 빠르든 느리든 간에 불원간 이런 분기점 전환의 성장통을 겪게 될 것이 틀림없다. 우선 기업들, 특히 대기업은 이미 뒤쫓아가던 전략에서 선두를 달려가는 전략으로 바뀐지 오래 되었다. IT와 가전제품, 조선과 철강, 자동차 등이 그렇지 않은가? K-팝을 포함한 한류 분야는 이미 뒤쫓는 전략을 과감히 포기하고, 일찌감치 앞서가는 전략으로 탈바꿈한 덕분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런 분기점 전환에 가장 무디고 무능하게 대처한 영역이 정치분야가 아닌가 생각된다. 이미 대한민국의 정치, 경제, 문화, 과학, 언론, 지성의 발전양상은 냉전시대 즉, 1990년대의 양상과는 현격한 거리가 있다. 인류 보편적 가치인 자유와 평등과 인권의 향유 양상도 대한민국에서는 냉전 시대와는 아주 다르게 성숙했다. 그런데도 왜 유독 정치분야는 여전히 외국의 정치제도와 이념을 찬탄하며 뒤쫓는 전략을 에워싸고 이전투구하고 있는가? 대한민국에서 창의성과 혁신이 가장 필요한 분야가 바로 정치권이 아닌가 한다. 이미 폐기된 서양의 유물인 이데오로기 중심의 정치에 함몰되어, 대한민국의 정치를 창의적으로 혁신하는데 그들은 너무 게으른 것 같다.

문용린 서울대 교수·前 교육부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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