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혜의 자연 간직한 인도차이나의 보석
전통의상인 하얀색 아오자이를 입은 매력적인 여성, 소박한 쌀국수, 도로를 꽉 채우며 달리는 오토바이의 행렬…. 특히 그림같이 펼쳐진 하롱베이의 해안 등은 베트남을 떠난 뒤에도 나에게 남아 있는 강한 인상들이다. 베트남 정부관광국 초청으로 호치민, 호이안, 하롱베이, 하노이 등을 돌아보면서 활력 넘치는 베트남의 새로움에 놀랐던 기억이 생생하다.
바다에 떠있는 1천 개의 섬… 비경에 감탄사 절로…
유네스코 선정 세계자연유산…하롱베이
베트남 최고의 관광지를 꼽으라면 단연 하롱베이다. 그 만큼 외화벌이에도 큰 몫을 차지하고 있다.
하롱베이에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있다.
하롱베이에 외적이 침입해 갖은 만행을 부릴 때 하늘에서 용들이 내려왔다. 용들은 바다 위에 폭풍우를 쏟고, 격랑을 일으켜 외적들을 격퇴했는데 용들은 그 후에도 하늘로 올라가지 않고 바다에서 살았다.
용들이 용틀임하면서 쏟아 부은 천둥, 번개 등은 수천 개의 섬으로 변했고 사람들은 이곳의 지명을 하룡(下龍)으로 부르게 됐다고 한다. 하롱베이의 하(河)는 ‘내려온다’라는 뜻이고 롱은 ‘용(龍)’을 말하므로 ‘용이 내려온다’ 라는 의미이다. 베이는 ‘만(灣)’을 뜻한다.
하롱베이는 지난 1994년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선정됐다. 수천 개의 기암괴석으로 이뤄진 하롱베이는 지질학적으로 중요할 뿐만 아니라 희귀한 동식물이 서식하므로 생태학적으로도 중요한 곳이다. 긴팔원숭이, 통킹납작코원숭이, 백로, 붉은 왜가리 같은 동물들이 섬에서 흩어져 살고 있다. 바다 속에는 무수한 해양 동식물이 살아가고 있다.
얼마 전, 하롱베이로 가기 위해 인천에서 베트남 항공편으로 하노이까지 갔는데 비행시간이 약 5시간 걸렸다. 하노이에서 하롱베이로 가는 길은 여느 한국의 시골길 같으나 도로 사정은 전혀 달랐다. 좁은 도로를 오토바이와 자전거, 그리고 대형 버스와 트럭, 자동차 등이 어우러져 사이좋게 나아가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교통사고가 빈발할 것 같지만 실제로는 사고율이 적은 이유는 서로 조심해서 운전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오토바이를 타고 베트남 전통의상인 아오자이를 입고 지나가는 처녀들의 모습도 간혹 보인다. 이곳 여성들은 자전거나 오토바이를 탈 때 얼굴이 매연 등으로 검게 되는 것을 막기 위해 수건으로 마스크하고 다닌다.
저녁 무렵, 하롱베이에 도착해 바다를 바라보니 검은 형체의 섬만이 아련한 모습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이튿날 아침 선착장에서 유람선을 타고 바다로 나아가니 하롱베이의 진면목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크고 작은 약 2천 개에 달하는 섬들 대부분은 인간의 손때가 묻지 않은 무인도이다. 그 중 약 1천 개 정도의 섬에는 이름이 붙어 있다. 섬 모습이 코끼리 같다고 하여 ‘코끼리섬’으로 부르는 곳도 있고, 낙타 같다고 하여 ‘낙타섬’ 등등 다양하다.
선착장을 출발하자 작은 나룻배들이 연신 다가온다. 이들은 바나나, 레몬, 망고 같은 열대성 과일이나 바다 게, 물고기, 해삼 같은 해산물을 파는 배들이다. 나룻배 주인은 바다 위에서 살아가는 수상족으로 생계를 위해 관광객에게 물건을 팔려고 나선 것이다. 배안에는 취사용 도구도 있고, 가족도 같이 타고 있는 경우도 많다.
유람선이 계속 깊은 바다로 나아가자 기기묘묘한 섬들이 연이어 나타난다. 마치 첩첩산중에서 골짜기를 지나가는 느낌이다. 단단한 암벽으로 이뤄진 섬이 있는가 하면, 깍아지른 듯한 모습이 보기에도 아찔한 느낌을 주는 섬도 나타난다.
하롱베이의 섬 중에는 석회암 동굴도 있다. 바로 티엔 충(Tien Chun)이라고 불리는 동굴로 1993년 발견됐다. 한 주민이 원숭이를 잡으려고 하다가 우연히 발견한 동굴인데 입구는 좁지만 내부는 상당히 큰 편이다. 기기묘묘한 석순들이 천장과 바닥에 달려 있다.
조명을 받아 한결 신비스런 느낌을 주는데 이곳 역시 석순의 모습을 보고 붙여진 이름이 제각각이다. 사자, 표범, 말 같은 동물 이름은 물론 베트남 전설에서 유래된 인물 이름도 있다.
베트남에는 외국인의 이름을 딴 지명이 거의 없다. 그만큼 민족의 주체성이 강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하롱베이에는 단 하나의 섬이 러시아 우주 비행사의 이름으로 되어 있다. 현지에서 ‘티톱섬’으로 불리는 곳으로 베트남 사람들의 절대적인 존경을 받고 있는 호치민의 명령에 의해 정해진 섬 이름이라고 한다. 러시아의 우주 비행사인 티톱이 하롱베이에서 머물다 떠난 적이 있는데 그 후 하롱베이를 방문한 호치민이 적어도 섬 하나는 존경받는 외국인 이름으로 하라고 지시를 내렸다고 한다.
‘티톱섬’ 정상의 전망대까지 걸어 올라가는데는 약 20분 정도 걸린다. 경사가 급해 노인들은 숨을 헉헉거리면서 올라간다. 가파르긴 하지만 계단이 잘 다듬어져 있어 오르는데 어려움은 없다. 산 위 전망대에서는 주변 하롱베이의 섬들이 한 눈에 잘 들어온다. 바다 위에 겹겹으로 이루어진 섬들의 모습을 보노라면 마치 설악산에 올라 산 밑 연봉들을 바라보는 것과 비슷하다.
독특한 자연풍광과 이상적인 동식물의 생태환경을 갖고 있어 세계자연유산으로 선정된 하롱베이를 찾는 사람들은 나날이 늘고 있다. 바다 위에 점점이 떠있는 기암괴석도 볼거리지만 바다와 더불어 살아가는 수상족의 끈끈한 삶도 엿볼 수 있어 흥미롭다.
베트남의 숨은 진주…호이안(Hoi An)
호이안은 16~17세기 무역항구로 크게 번창했던 곳으로 17~19세기에 걸쳐서는 남아시아에서 가장 중요한 항구 중 하나였다. 고색창연한 호이안의 구시가지인 찬푸 거리와 투본강에 접해 있는 바크당 거리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으며 800여 곳의 역사적 유적들이 잘 관리되고 있다.
2~15세기 중부 베트남에 자리잡았던 참파왕국의 중심지였던 호이안은 당시에도 중국과 인도, 중동지역을 연결하는 중계 무역도시로 번성했다. 그러다가 16~17세기 일본인 상인들이 정착하여 그들의 거리를 만들기 시작했다.
시내를 흐르는 투먼강과 함께 좁은 길을 따라 옛날 가옥들이 많은 호이안의 좁은 구시가지를 돌아보는데에는 2시간이면 충분하다.
‘바다의 실크로드’로 불린 ‘아시아의 베네치아’
호이안 구시가지에 있는 내원교(일본교)는 일본인들이 세운 목조다리다. 이 다리를 경계로 일본인 거리와 중국인 거리가 구분됐다고 한다. 개와 원숭이 조각상이 다리 양쪽을 지키고 있는데 다리 위에는 항해의 안전을 기원하는 작은 절이 있다. 복건회관은 중국 교포들의 향우회 장소다. 중국 푸젠성 출신들을 위한 곳이지만 중국의 다른 성 출신자들을 위한 중화회관 등도 있다.
‘바다의 실크로드 박물관’(무역 도자기 박물관)은 2층 구조의 전통 민가를 개조한 박물관이다. 동쪽은 중국과 일본, 서쪽은 인도와 이슬람 여러 나라에서 바닷길을 건너온 많은 도자기들이 전시돼 있다. 대다수는 무역항이었던 호이안 주변에서 발굴된 것과 침몰선에서 인양된 것들이다. 도자기에 남은 상흔에서 역사의 단편을 읽을 수 있다.
꾸안꽁 사원은 시장 근처에 있는 중국 양식의 도교 사원으로 1653년에 건립됐다. 중앙 제단에는 삼국지의 영웅인 관우 상을 모셨다. 용의 화신인 잉어 모양을 본 뜬 빗물 홈통 등 세밀한 장식이 보는 이의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호이안 역사문화박물관에서는 참파왕조(2∼17세기) 때부터 발전해온 호이안의 역사를 살펴볼 수 있다.
호이안에서 30㎞쯤 떨어져 있는 미손유적은 참파 왕국 유적지 중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한다.
호이안의 가장 대표적인 베트남 음식은 ‘까오라우’이다. 가루반죽을 한 편편한 면인데 크루통(Crouton), 숙주나물과 돼지고기 조각이 얹어져서 나온다.
오직 호이안에서만 맛 볼 수 있는 것이어서 더 유명하다. 강가 앞에는 인터넷 카페, 바, 식당들이 문을 연다.
글·사진 _ 허용선 여행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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