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회 정조대왕 능행차길 체험순례

조선 22대 왕 정조는 아버지인 사도세자의 묘소를 참배하기 위해 서울에서 수원까지 직접 발걸음을 했다. 그리고 200여년이 지난 29일 오전 8시 청소년들이 옛 정조대왕의 능행차 길을 직접 순례하며 효 사상을 되새기기 위해 창덕궁 돈화문(敦化門) 앞에 도열했다.

이날 전국 각지에서 모인 254명의 청소년들은 수원문화재단(대표이사 유완식) 주최, 수원문화원(원장 염상덕) 주관으로 마련된 ‘제9회 정조대왕 능행차길 체험순례’에 참여하는 효 체험 순례단이다.

“힘들거 같아요. 그래도 문화재도 익힐 수 있고, 또 정조대왕이 걸었던 길을 직접 걸을 수 있다는 게 재밌을 것 같아요. 꼭 완주해서 정조대왕처럼 부모님께 큰 절을 올릴 겁니다.”

오랜만에 부모님의 그늘에서 벗어나 강행군을 앞둔 이형기군(13·수원 명인중)의 표정이 무거워 보이기는 했지만 순례에 임하는 각오만큼은 자못 비장했다.

정조는 아버지인 사도세자의 묘를 양주에서 수원 화선의 융건릉으로 옮긴 뒤, 11년 동안 모두 12차례나 부친 묘소를 참배하러 직접 서울에서 수원까지 찾는 ‘능행’으로 효를 실천했다.

순례단은 이러한 정조대왕의 효심을 배우기 위해 8월1일까지 3박4일간 정조가 걸었던 그길 그대로 창덕궁을 출발해 화성 융릉(사도세자의 능)을 거쳐 수원 화성까지 모두 62.2㎞ 구간을 걸을 예정이다.

 

오전 9시, 힘찬 화이팅과 함께 행진이 시작됐다. 발걸음은 가벼웠다. 순례단은 보신각을 거쳐 숭례문을 지나 점심때가 되서야 정조가 다리를 놓아 한강을 건넜다는 노량진 배다리에 도착했다. 짙누르는 뙤약볕에 단원들의 얼굴은 벌겋게 달아 올라 있었고, 발걸음은 상당히 무거워졌다.

“작년에는 비와 와서 진짜 힘들었는데요, 올해는 너무 덥네요. 그래도 정조대왕이 수원까지 왔을 때도 날씨가 안좋았을 때도 있었을 텐데, 정조대왕도 효심 하나로 이 길을 걸었잖아요? 저도 그렇게 생각하고 꾹 참고 갈거예요.”

마른 목을 축이며 말을 건내는 오영진군(15·수원 산남중)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순례에 참여하고 있다”고 했다.

순례단은 첫날 한강 배다리터를 지나 노량행궁, 남태령고개까지 가며, 둘째날 과천 온온사와 과천행궁, 지지대고개를 지나 수원 만석공원에 도착할 예정이다. 이어 셋째날 장안문, 팔달문을 지나 융릉을 순례한 뒤 넷째날 화성행궁 및 수원화성 성곽순례를 마지막으로 대장정의 막을 내리게 된다.

염상덕 수원문화원장은 “순례길은 창덕궁에서 융릉에 이르는 정조대왕의 능행길 속에 녹아 있는 효심을 따라 걸으며, 효의 진정한 의미를 되새기고, 능행의 역사적 의미를 이해하는 데 의의가 있다”며 “이번 순례를 통해 부모에 대한 효는 물론 (아이들) 자신의 체력증진에도 많은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순례 중 숙영지에서는 부모님께 효의 편지쓰기, 역사강의, 캠프화이어, 레크레이션 등 다채로운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이날 기상청은 순례기간 내내 계속되는 찜통 더위와 함께 곳곳마다 소나기가 내릴 것으로 예상했다. 몸은 비와 땀으로 흠뻑 젖었지만 스스로 부쩍 자란 아이들이 화성행궁에 입성하는 모습을 보며 정조대왕과 혜경궁 홍씨는 흐뭇한 미소를 짓지 않을까.

윤철원기자 ycw@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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