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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용린 칼럼] 희망에 가슴 뛰게 할 대선주자, 어디 없나요
오피니언 문용린 칼럼

[문용린 칼럼] 희망에 가슴 뛰게 할 대선주자, 어디 없나요

그리스 신화에 희망이 신의 선물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인간의 호기심이라는 약점을 이용하여 제우스 신은 인간에게 벌을 주려고 아름다운 보물 상자를 만들고, 신들에게 인간을 위한 귀한 선물을 하나씩 넣으라고 요청한다. 그리고 그 상자를 한 여인에게 맡긴다. 그 상자를 열지 않는 한 그것들은 인간의 보물로 남아 있지만, 궁금해서 열어 제치면 연기처럼 사라진다. 제우스는 바로 그것을 노린 것이다.

역시 제우스는 옳았다. 인간의 호기심은 치명적 약점이었다. 그의 생각대로 호기심 많은 여인, 판도라는 궁금증에 못이겨 그 상자를 연다. 여는 순간 그 좋은 신(神)의 선물들이 새 나가기 시작한다. 용기와 절제, 정의와 배려, 용서와 인내, 신뢰와 성실, 신앙과 경건 등등의 황금같은 보물들이 눈 앞에서 연기처럼 사라져 버리는 것이다. 그래서 그녀는 황급히 상자를 도로 닫았다. 그 덕분에 오로지 한가지 보물만 남았는데, 그게 바로 희망(希望)이다.

우리가 이룩한 경제발전도 ‘나도 한번 잘 살아 보자’는 국민들의 희망을 성공적으로 관리한 덕분이다. ‘공부를 잘하면, 잘 살 수 있다’는 희망을 교육으로, ‘열심히 일하면, 승진 할 수 있다’는 희망을 기업으로, ‘알뜰하게 저축하면 돈을 모을 수 있다’는 희망을 금융으로, ‘질 좋고 값이 싼 물건을 만들면, 돈을 벌 수 있다’는 희망을 정부정책으로 관리했다. 이런 식의 희망관리가 사회 각 분야에서 그런대로 성공적으로 이루어진 덕분에 오늘의 한국이 가능했다.

신의 보물중 마지막 남은 ‘희망’

이러한 건강한 희망의 관리는 앞으로도 여전히 필요하다. 우리가 이룬 발전이 대단한 것이긴 하지만, 아직 갈 길은 멀다. 우리보다 앞선 나라는 일본을 포함해서 10개 국가가 넘는다. 현재 수준의 경제발전으로 만족하고, 더 이상 성장하고 발전하지 말자는 국민들은 아마 많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발전의 원동력이 되어온 희망의 관리를 계속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즉, 국민들이 성장과 발전에 대한 건강한 희망을 갖고, 그 희망의 실현을 위해서 열정적으로 몰입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러나 작금의 돌아가는 정치적 상황은 이런 희망관리에 어두운 먹구름을 드리운다. 국민들에게 희망을 주기는커녕, 오히려 위기감을 느끼게 한다. 진보 혹은 보수라는 관념의 시나리오에 사로잡혀, 눈앞에서 전개되는 생생한 현실은 외면한 채 공허한 대사집만 외워대고 있기 때문이다.

희망대신 절망감을 느끼게 한다.

북한을 돕는다는 진보는 관념의 편향 때문에, 세계최악의 인권현실과 탈북자들의 생지옥 상황 그리고 3대세습이라는 시대착오적 독재권력을 애써 외면하고 있다. 북한 주민들의 인도주의적 삶의 개선에 대한 희망을, 관념으로 존재하는 사회주의적 가치가 억압하고 있는 것이다. 북한문제 해결에 대한 국민들의 희망을 정치권은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고 있다.

희망을 발전·실현할 수 있도록

자유와 성장을 내세우는 보수도 관념의 편향 때문에, 강자에 의해서 자행되는 약자에 대한 악습과 폐해 그리고 정경관(政經官)의 유착과 부패의 카르텔 그리고 그 결과로 심각해진 빈부간 양극화, 도농간 양극화 및 교육 양극화라는 자본주의적 해악을 강건너 불을 보듯 해왔다. 건강한 자유시장경제에 대한 국민들의 희망을 유지발전 시키기보다는 보수들 스스로가 약화시키고, 파괴해 온 것이다.

진보와 보수로 나뉘어 관념의 싸움에 취해있는 정치권은, 삶의 실질적 개선에 대한 국민과 북한주민들의 희망을 언제까지 이렇게 계속 외면하고 있을 것인가?

공허한 관념의 역겨운 싸움을 중지하고, 모든 국민들이 삶의 실질적(인도주의적) 개선에 몰입할 수 있도록, 그들의 희망을 유지시키고, 발전시키고, 실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5천만을 희망에 취하고 가슴 뛰게할 대선 주자가 나오길 기대한다.

문용린 서울대교수·前 교육부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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