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진단] 휘청이는 과수농가 ‘최악의 여름’
“태풍 피해까지 입으면 한 해 농사 다 망치는 셈입니다.”
19일 오전 11시께 여주의 한 사과농장. 먹구름이 잔뜩 껴 흐린 가운데 바람까지 불어 새파란 사과가 나뭇잎과 가지에 부대끼고 있었다.
이달 말부터 수확해야 하는 사과는 제대로 여물지 않아 탁구공보다 약간 큰 정도였고, 상당수가 군데군데 흠집이 나 있었다.
농장주 L씨(53)는 사과를 하나씩 짚어가며 “쓸만한 게 없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제7호 태풍 카눈이 비켜 지나면서 피해가 예상외로 크진 않았지만, L씨의 표정은 밝지 않았다.
가뭄과 우박, 집중호우 등 올 들어 쉴새 없이 이어진 이상기온 여파로 이미 피해를 크게 입은 데다 8~9월 중 또 다른 태풍 피해가 예상되기 때문이다.
예상밖‘카눈’피해적었지만 설익은사과곳곳에흠집
가뭄·우박·집중호우 등 연이은자연재해에‘긴한숨’
L씨의 농장은 지난 5월 말 내린 우박으로 보유한 나무 7천500주 가운데 4천주 가까이 손상됐고, 지난달까지 두 달 간 지속된 가뭄으로 과실 크기가 정상치의 절반 정도에 그치면서 수확시기가 늦춰진 형편이다. 또 이달 말 예정이었던 풋사과 수확이 이미 2주 이상 지연돼 농장에서 재배하는 8종의 사과 수확시기가 줄줄이 늦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L씨는 “사과농사 지은 지 30년이 다 돼가는데 이렇게 힘든 적은 처음”이라며 “이번에는 무사히 지나갔지만 여기에 태풍피해가 있으면 일 년 내내 헛수고한 셈”이라고 한탄했다.
인근 배농가도 상황은 마찬가지로 농장주 C씨(49)는 태풍 피해가 걱정돼 지난 이틀간 방조망 정비를 하느라 제대로 잠을 자지 못했다. C씨는 “태풍이 발생하면 낙과 발생 뿐 아니라 가지에 매달린 배까지 여기저기 부딪혀 멍들면서 피해가 이만저만이 아니다”라며 “이미 배농사가 반토막난 가운데 태풍까지 일어나면 인건비도 못 건진다”고 우려했다.
이처럼 이상기온에 이어 태풍피해까지 우려되면서 과수농가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19일 한국농촌경제연구원에 따르면 7월 이후 과일 생산량이 평년보다 감소, 사과는 평년대비 -12.4%, 배는 -26.7%, 포도는 -13.6% 등 수확량이 현저히 떨어질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사과의 경우 5~6월 고온건조한 날씨로 해충 발생이 증가하면서 생육상황이 평년보다 좋지 않은 실정이며 배는 고온 탓에 꼬마배나무이, 진딧물 등 해충 발생이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 경기지회 관계자는 “이상기온으로 인한 농가 피해가 갈수록 증가하는 만큼 농산물재해보험 등 농가마다 나름 대비하는 한편 기관 차원의 지원도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성보경기자 boccum@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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