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정의 후손 사실 알면서 열망커져…생활형 문화예술 체험 넓혀갈 것"

‘연극인 출신 행정가’ 용인문화재단 김혁수 상임이사

“저는 사실 행정가보다는 연극인에 가까운 편이에요.”

지난 3월 새로 출범한 용인문화재단의 수장인 김혁수 상임이사(50)는 스스로를 이렇게 소개한다.

김 이사는 대학로와 경기·강원 지역 등지에서 잔뼈가 굵은 극작가이자 연출가이다. 극단을 여러번 운영하기도 했다.

강원도 춘천이 고향인 김 이사는 학창 시절부터 연극을 좋아했다. 또래세대가 한창 영화에 빠져있을 때에도 친구들에게 ‘라면을 사주겠다’고 꼬셔 서울로 연극을 보러 다닐 정도였다.

그러던 그가 연극인이 되기로 결심한 건 고등학교 2학년 때. 동국대에서 주최한 백일장에서 입상해 학교 운동장에서 전교생이 지켜보는 가운데 받은 영예로운 상이었지만, 집에서는 그리 환영받지 못했다. 공무원이었던 아버지는 “글쟁이, 딴따라가 되려느냐”며 아들을 모질게 책망했다. 그러던 중 아들의 꿈을 만류하려 던진 아버지의 한마디가 아들의 가슴에 불을 댕겼다. “집안 어른이 소설가 김유정”이란 말이었다.

근대문학을 대표하는 거장으로 손꼽히지만, 당시만 해도 김씨 가문에서는 글에 빠져 신세 망친 선조에 불과했던 것이다. 하지만 김 이사는 자신이 김유정의 후손이란 사실을 알면서부터 극작에 대한 열망이 더욱 강해졌다고 한다.

이후 1981년 동국대 연극영화과에 입학한 김 이사는 십수년간 연극에 빠져 지내다 소설가 김유정이 농촌계몽운동을 벌인 근거지였던 ‘금병의숙’의 이름을 따 극단을 창단하고 20여명의 단원과 함께 수도권·강원 지역을 다니며 순회공연을 했다. 또 50여편의 연극, 국악 등을 연출하고 30여편의 희곡을 창작·각색해 1994년 문화일보 신춘문예 당선, 1999년 문화관광부장관 표창, 2010년 한국문협 작가상 등을 수상했다.

이처럼 연극에 빠져살던 그가 문화행정에 발을 들인 건 1991년 문화부의 ‘연극의 해’ 행사를 기획하면서부터다. 당시만 해도 문화 기획이나 행정의 개념이 모호해 시행착오도 적지 않았다고 한다. 이후 월간 ‘한국연극’ 편집장과 한국연극협회 사무국장, 한국연극연출가협회 창립 업무 등을 맡으면서 커리어를 쌓았다.

특히 2002년 한일월드컵을 기점으로 출범한 서울국제공연예술제 사무국 신설에 참여한 경험과 서울문화재단 창작공간사업단장 등으로 일하면서 창동극장, 서울연극센터, 창작공간 개관 등을 주도한 것은 김 이사의 주요경력으로 꼽힌다.

용인문화재단의 첫번째 지휘봉을 잡은 김 이사는 향후 3년간 시험대에 오르게 된다. 오는 9월 ‘포은아트홀’로 개칭된 아르피아홀 개관 등 넘어야 할 산이 많다.

김 이사는 “시내 공연장을 공연 뿐 아니라 다양한 문화예술체험 및 교류 공간으로 활용할 계획”이라며 “시민을 위해서는 생활형 문화예술 체험을, 용인 예술인에게는 폭넓은 활동의 기회를 제공할 것”이라고 말했다.

용인=강한수·박성훈기자 pshoon@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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