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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원칼럼] 대중가요 선정성의 한계
오피니언 의원칼럼

[의원칼럼] 대중가요 선정성의 한계

요즘 K-pop의 열풍이 유럽을 휩쓸며 한류의 바람이 거세게 일고 있다. 언론은 한국의 대중가요가 세계시장에서도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며 칭찬 일색이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가사의 선정성과 청소년기의 정서를 지나치는 멜로디와 동작이 지상 공중파를 통해 여가 없이 보이고 있다고 우려하는 목소리가 있다. 특히, 주말 저녁에 공중파로 방송되는 음악순위 프로그램은 들려주기보다는 보여주려는 흐름에 편승한다는 것이 문제다.

퍼포먼스 즉, 보여주기에 강한 댄스그룹과 어린 아이돌그룹들이 가요계의 주류로 자리를 잡으면서 노래에만 주력하던 가수들은 점차 밀려나고 대중가요의 획일화, 선정성 문제가 꾸준히 제기된 것이다.

과거 우리는 어린 시절 가장 먼저 동요를 배우고 동요를 부르는 어린이의 모습에는 어린이다운 표정과 감정이 실려 있다. 그런데 요즈음에 와서는 어쩐지 어린이들이 부르는 동요가 예전만 못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한참 정서적으로 많은 느낌을 받으면서 자라야 할 나이에 성인들의 노래와 춤을 따라 한다면 정신세계에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어린이에게는 좋은 동요를 많이 만들어 주고 또 많이 부를 기회와 여건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

중·고등학교 시절의 노래는 어떤 것이 좋을까? 가곡이나 명곡이 좋을 듯싶다.

나만의 고루한 생각인지 모르지만, 기성 가수들이 부르는 노래를 따라 부르는 모습은 순수성이 모자란 듯해서 싱그럽지가 못하다는 느낌이 든다.

개인적인 생각인데 남학생이 부르는 ‘선구자’나 ‘가고파’에서 풍기는 멋스러움은 장중하면서 낭만적이며 여학생이 부르는 ‘이별의 노래’나 ‘동심초’는 애절하면서도 아름답다.

이렇게 학생 때는 학생신분에 맞는 노래를 불러야 맛과 멋이 날 것이다.

기성세대들의 구성진 가요 산책은 어떤가. 1·4 후퇴 때 가족을 버리고 월남한 노인네가 술 한잔 걸치면서 흥얼거리는 ‘꿈에 본 내 고향’이나 ‘굳세어라 금순아’의 긴 여운은 가슴을 후벼 놓는 아픔이 있다.

이외에 장르별로 좋은 음악이 많지만 느끼는 감흥은 대동소이하다 하겠다. 이렇게 음악은 인간에게 많은 이바지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노래에 웃고 노래에 울고 하는 것이다. 어려서부터 성인이 된 이후까지 노래를 흥얼거리며 사는 우리는 노래와 함께 시간의 파고를 건너간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중음악은 대중을 대상으로 하며, 대중이 음악을 듣는 동시에 소화하고 발산하는 대중문화의 한 부분이다. 대중음악을 듣고 보는 사람 중 학생들이 많다는 것을 고려한다면 대중가요 가사들을 쉽게 보아넘길 문제는 절대 아니다. 작가가 가사를 통해 표현한 생각은 대중들의 생각이 되고, 그것은 바로 사회의 가치관으로 연결되며, 또다시 대중들의 입을 통해 불리면서 무의식중에 사회 전반적인 가치관으로 자리잡게 된다.

누구나 쉽게 따라 부르는 대중가요 가사들을 유심히 살펴보면 선정성, 폭력성, 가치관에 대한 잘못된 인식들이 매우 많다고 생각된다. 지나치게 감각적인 문화에 길들어 있는 청소년들이 정체성을 찾고 진정 아름답고 건강한 문화예술의 삶의 즐거움을 즐길 수 있어야 한다.

대중음악의 건강한 언어사용을 위해서는 작사가들은 경제적 제약이나 상업적 논리에 우선 하지 말고 대중음악 언어의 영향력이 가지는 공공성을 인식하고 보다 책임 있는 자세로 가사창작에 매진해야 할 것이다.

장태환 경기도의원(민·의왕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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