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평군립미술관 기획전 ‘맛의 나라’

6번국도를 타고 남한강이 흐르는 양평에 들어서면 우선 눈부터 호강한다. 풍광이 예사롭지 않기 때문이다. 잔설이 희끗희끗 남아 있는 채로 준엄한 표정을 짓고 있는 용문산을 올려다 보면 가슴도 맑아진다. 공기도 남다르다. 잘 익은 사과를 한입 가득 배어 물었을 때 느껴지는 상큼함…

 

따뜻한 햇살을 받고 움트고 있는 이름 모를 풀들에서도 비슷한 내음이 풍긴다. 발품을 들여 들녘을 거닐다 활짝 핀 산수유를 혀끝에 대면 쌉싸름한 맛이 유별나다. 가만히 귀릴 기울이면 정지용 시인의 ‘고향’에 나오는 귀절처럼, 다정하게 지즐대며 흘러가는 강물 소리도 들린다.

 

회색빛 콘크리트 빌딩들 사이에서만 생활하다, 이 고장을 찾으면 오감이 행복해지는 까닭이기도 하다. 한마디로 양평은 맛의 나라다. 사시사철 맛이 틀리다. 그래서일까. 지난해 말 문을 연 양평군립미술관이 지난달 2일부터 오는 22일까지 열고 있는 두번째 기획전 주제도 ‘맛의 나라’다.

 

■예술품 그 자체인 갤러리

“What a wonderful museum it is!(참으로 훌륭한 미술관이군요)”

양평군 양평읍 양근리 543 마유산로 사거리 한켠에 위치한 양평군립미술관을 찾은 파란눈의 외국인들이 탄성을 내질렀다.

온통 군청색 통유리로 구성된 현대식 건축양식도 이들에겐 정겨울만하다.

 

미국 플로리다 보니타 스프링스에서 왔다는 낸시 엘렌 레이드(Nanci Eleen Reid)씨(70·여)는 “에머랄드빛 하늘도 아름답지만, 반듯한 미술관 건축물도 아름답다”고 말했다.

주한미군으로 서울 용산에서 근무했었다는 제이크 스팬버거(Jake Spanberger) 변호사(34)는 “한국의 여러곳들을 다녀봤지만, 아름다운 강이 흐르는 풍광을 끼고 현대미술작품들을 이처럼 질서정연하게 전시하는 공간이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고 말했다.

 

양평군립미술관은 대지면적 8천61㎡, 연면적 4천184㎡, 지하 1층과 지상 3층 규모로 지난해 11월 완공됐다. 1층과 2층을 잇는 슬로프 전시장은 국내에선 최초로 설계된 가변성의 전시공간으로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편안하게 오르 내리며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다. 천정도 높이가 3m 안팎으로 안정적인데다, 현대식 공법으로 건립돼 평면과 영상, 설치작품 전시가 가능하다.

 

미술관 주변 조경에서도 미학적인 개념이 엿보인다. 양평군이 의욕적으로 조성한 남한강 자전거도로가 미술관 앞을 지나가고, 그 옆으로 팬지 등 서양꽃들을 심은 화단과 지작나무 등이 이방인들을 물끄러미 쳐다 보고 있다. 양평군립미술관은 서울 등 대도시의 갤러리처럼 마니아들만을 위한 전시공간은 단호하게 거부한다. 그냥 편하게 나들이 삼아 발길을 옮기며 있는 그대로의 볼거리들을 즐길 수 있다는 점이 양평군립미술관의 최대 강점이다.

 

■생활과 자연과의 절묘한 앙상블

‘맛의 나라’ 기획전은 ‘신선 맛’, ‘달콤한 맛’, ‘고향의 맛’, ‘신비의 맛’, ‘싱싱한 맛’, ‘미디어 맛’, ‘자연의 맛’ 등 7개 소주제로 나눠 펼쳐지고 있다.

먼저 ‘신선 맛’ 코너에선 최근 한국 화단에서 극 사실주의 작가로 과일을 가장 많이 다루는 작가들의 분신들이 선보이고 있다.

 

이목을, 박영근, 윤병락, 박종경, 김대연, 윤은정, 민경숙, 최정혁 등 8명의 작가들은 보기만 해도 입안에 새콤하게 군침이 도는 작품들을 보여주고 있다.

어린이들이 가장 많이 찾는 ‘달콤한 맛’ 코너에서는 코흘리개들이 가장 좋아하는 박하사탕과 캔디, 아이스크림, 초코렛 등이 극사실적으로 표현돼 있다.

그래서 어른들도 동심의 세계로 돌아가 마냥 행복해진다.

 

녹아 내리는 아이스크림을 그린 김들내, 대파와 파줄기 등으로 만들어진 드레스를 선보인 성연주, 컵으로 형상화된 케익을 그린 송지연, 도너츠와 딸기가 정겨운 윤현정, 케익 파티를 묘사한 이흠, 사탕으로 가족을 만든 진효선, 캔디와 사탕 및 초코렛 등을 담은 황현승 등 6명이 참가하고 있다.

우리 음식문화를 중심으로 활동해온 작가들을 만나려면 ‘고향의 맛’ 코너를 찾으면 된다.

 

고소한 콩으로 작품을 형상화한 고희경, 속이 꽉 찬 먹음직스러운 김장배추를 선사하고 있는 김진아, 한국의 음식에서 지구촌 음식으로 부상하고 있는 비빔밥을 담은 김진욱, 잘 만들어진 포도 쥬스를 이미지화한 유용상, 파란 물통을 형상화한 이종구, 빈 그릇 속의 돼지가 눈길을 끄는 최석운, 김장김치와 양평해장국, 글라스에 따른 딸기쥬스 등을 담은 하영희, 황새로봄, 황학만 등의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다.

 

‘신비의 맛’ 코너는 좀 어렵다.

오이를 이용한 산맥, 고추바다를 연상케 하는 붉은 방 이미지, 사과와 인체와의 하모니, 색채로 이어지는 과일나라 데자뷰, 조개껍질로 표현되는 드레스와 왕관….

차용과 패러디, 그리고 과감하게 시도된 추상 등을 통해 현대 비구상 미술의 현주소를 느낄 수 있다.

윤현선, 이지영, 정가은, 정경심, 정해진, 정효영, 최종식, 최찬미, 한재철 등 9명의 작가들을 만날 수 있다.

입체 조형작품들을 감상하려면 ‘싱싱한 맛’ 코너가 제격이다.

 

이길래는 병 뚜껑들로 붉은 사과를 이미지화했고, 김명희는 봄의 전령사인 나비와 자연에서 성장하는 오곡백과를 형상화했고, 김병진은 붉은 사과를 통해 양평을 표현했다.

김연순은 실타래로 사과를 빚었고, 김인태는 사과와 사랑을 접목시켰고, 노준은 꼬마 곰두리들의 케익 파티를 표현했다.

 

서동옥은 컴퓨터 기판으로 작품을 제작했고, 조성묵은 빵으로 의자를 만들었다.

어린이들이 음식문화의 발달과정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음식 변천과정과 절기에 따라 먹는 음식들을 소개한 ‘미디어 맛’도 눈길을 끈다.

김일태, 한수진, 권경영 등 3명의 작가들이 참여하고 있다.

 

양평=허행윤기자 heohy@kyeonggi.com

 


 < 김선교 양평군수 인터뷰 >

 

양평군립미술관은 수도권에서 가장 가고 싶은 대표적인 문화 명소로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비록 건립된 지는 1년이 채 지나지 않았지만, 지역은 물론 국내외 작가들에게 새로운 미술문화의 장을 마련해드렸다는 점에서 나름대로 보람을 느낍니다. 이미 10년 전 부터 양평군립미술관 건너편 강하면 일대 남한강변에는 닥터박갤러리나 바탕골미술관 등 민간 차원의 갤러리 거리가 조성돼 있었고, 많은 작가들이 양평에서 작품활동을 하고 있어 민간차원의 미술 인프라는 그 어느 고장보다 풍부한 편입니다. 특히 지난해 문을 연 양평군립미술관은 서울 인사동에 즐비한 갤러리들과는 달리 신개념의 기획에 상상력과 파격적인 경영방식으로 토털 개념의 문화공간으로 문턱도 낮춰 일반 대중도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장점을 갖고 있어 양평의 또 다른 매력을 느낄 수 있는 곳이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문화 선진국들을 계속 벤치마킹해 수도권의 최고 갤러리가 아니라 대한민국 최고의 미술관으로 도약, 한국을 찾으면 반드시 찾아야 할 문화 명소로 가꿔나갈 생각입니다. 양평을 찾는 관광객분들에게 꼭 한번 들러보시길 추천합니다.

 

양평=허행윤기자 heohy@kyeonggi.com


 

이철순 양평군립미술관장 인터뷰

 

개관을 기념해 열린 첫번째 기획전 ‘마법의 나라 양평전’에는 1만여명이 넘는 관람객들이 다녀갔습니다. 이를 통해 양평군립미술관의 성공을 예감할 수 있었습니다. 그 첫번째 기획전의 성공을 바탕으로 두번째 기획전인 ‘맛의 나라’를 준비한 셈입니다. 물론 서울에 비해서는 문화토양이 아직은 척박할 수 있지만, 수도권의 예향(藝鄕)으로서의 가능성은 높습니다. 그 어느 고장보다 아름다운 풍광도 한몫 한다고 봅니다.

 

양평군립미술관은 다른 갤러리와는 달리 문화 소비자들인 관람객들과의 끊임 없는 소통을 통해 운영할 생각입니다. 일반미술관처럼 보고 느끼는 관람에서 벗어나 관람객들의 의견과 비평을 작가들의 향후 창작작업에 반영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지난 17일 120회를 맞은 우리동네 음악회도 미술문화에 청각적인 개념을 도입하고 싶은 의지가 반영돼 있습니다. 10년 넘게 양평에 머물며 느낀 감정들을 지역예술가들과 나누고 교감해 편하게 찾을 수 있는 미술관을 만들어 나가겠습니다.

 

양평=허행윤기자 heohy@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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