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에서 가장 권위있는 맨부커상의 지난해 수상작인 줄리언 반스의 소설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다산책방 刊)가 번역돼 나왔다.
소설은 시간과 기억의 문제를 파고든다. 시간이 마모시키고 왜곡시키는 기억, 그리고 그로 인해 빚어지는 파국적 결과를 다룬다.
주인공 ‘토니 웹스터’가 40여 년 전 동맥을 그어 자살한 친구 ‘에이드리언’에 얽힌 비밀을 풀고자 젊은 시절로 기억을 거슬러 올라간다. 친구가 자신에게 남긴 편지 한 통과 자신을 떠나 친구의 애인이 된 ‘베로니카’의 만남을 통해 토니는 은폐됐던 거대한 비극을 마주하게 된다.
소설의 결말부는 제아무리 명민한 독자라도 ‘예감’하기 어려웠을 충격적인 반전을 마련해 놓는다. 그리고 그 반전이 철없던 시절 토니가 보내 놓고 까맣게 잊어버린 저주의 편지와 닿아 있는 지점을 확인하면서 독자는 말을 잃은 채 토니와 함께 먹먹한 가슴을 쓸어내리게 된다.
그러나 독자는 비극의 전모에 대해 온전한 진실을 전달받지 못한다. 마음에 스친 불쾌감이나 의심으로 화자인 토니가 상황을 오해한 채 말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불안한 서술을 통해 저자는 역사란 “부정확한 기억과 불충분한 문서가 만나는 지점에서 빚어지는 확신”이라는 주제의식을 드러낸다.
번역본으로 250쪽 남짓한 짧은 분량의 소설이지만, 압축적이고 밀도 높은 문장이 풍부한 생각 거리를 주는 작품이다.
책의 저자는 영국의 대표 작가 중 1명으로 손꼽힌다. ‘옥스퍼드 영어 사전’ 증보판을 편찬한 뒤 문학 편집자와 TV 평론가로 활약하다 1980년 첫 장편소설 ‘메트로랜드’로 서머싯 몸 상을 받으며 화려하게 등단했다.
프랑스 메디치 상, 미국 E M 포스터 상, 독일 구텐베르크 상, 이탈리아 그린차네 카부르 상 등 유럽 대부분의 문학상을 석권했다. 슈발리에 문예 훈장, 오피시에 문예 훈장, 코망되르 문예 훈장 등 이례적으로 프랑스 정부로부터 3차례나 훈장을 받았다. 최세희 옮김. 값 1만2천800원
윤철원기자 ycw@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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