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풍광 + 학문·예술의 보고
아일랜드를 두고 ‘대서양의 에메랄드’라고 부르는 건 비단 풍광이 보석처럼 빼어나서만은 아니다. 인구 500만 명의 작은섬이 뜨겁게 잉태해서 키워낸 걸출한 작가들이 별처럼 늘어서 있기에 아일랜드가 비로소 세계의 보석으로 빛나는 것이다.
인류의 상상력과 지혜가 응집된 세계문학이라는 산맥에서 아일랜드는 거봉임에 틀림없다. 윌리엄 버틀러 에이츠, 조지버나드 쇼, 사무엘 베케트, 세무스 히니 같은 노벨문학상 수상자들이 모두 아일랜드 태생이라서 하는 얘기는 아니다. 그들이 태어나기 훨씬 이전인 6~7세기경부터 아일랜드의 수도원은 학문과 예술의 길드였고, 그런 유구한 전통을 딛고 수많은 거장들이 각자의 성지를 일구었다.
살아있는 ‘작가 박물관’
살아있는 ‘작가 박물관’어찌보면 아일랜드는 하나의 거대한 작가 박물관 같다. 더블린 작가박물관, 제임스 조이스 박물관, 트리니티 대학 등 문향이 감도는 곳을 일일이 거명하기 벅찰 정도로 위대한 정신유산을 남긴 작가들의 흔적이 도처에 산재해 있다.
먼저 수도 더블린 중심부에 자리한 트리니티 대학은 작가의 산실,그 자체다. 세계 문학 전집에서 만났던 에이츠와 오스카 와일드, 버나드 쇼, 조나단 스위프트가 모두 이 학교의 동문이다. 해마다 50만 명이 넘는 관광객들이 이들의 흔적을 찾아온다고 한다.
이 대학의 도서관은 웅장하고 경건한 수도원 같은 모습으로 아이리시 켈트족의 역사와 신화 연구의 보물이라 할 필사본 ‘켈스의 서’를 품고 있다.
지난 1991년 아일랜드 출신 작가들을 기리기 위해 개관한 더블린 작가 박물관 역시 문학의 샘물로 목을 축이려는 사람들이 꼭 방문해야 할코스다.
18세기에 지었다는 이 2층짜리 붉은 벽돌집은 겉보기엔 수수
하기 짝이 없지만, 아일랜드 사람들에겐 유럽 문화의 수도이자 세계 문학의 심장이다.
1층 전시실에 들어서면 버나드 쇼, 오스카 와일드, 윌리암 버틀러, 예이츠, 조나단 스위프트, 사무엘 베케트 등 기라성 같은 작가들의 초상화와 작품, 그리고 친필 원고와 그들의 손때가 묻은 타자기같은 유품을 만날 수 있다.
‘세계 문학의 심장’ 자부하는 더블리너들
전시실 한복판에는 더블린의 자부심인 제임스 조이스의 두상이 있고,그 아래에는 ‘세계 문학의 지도 중심에 더블린을 위치시킨 가장 유명한 더블리너’라는 글귀가 적혀 있다. ‘율리시즈’, ‘더블린 사람들’, ‘젊은 예술가의 초상’ 같은 걸작을 남긴 제임스 조이스는 더블리너들에게 우상 그 자체이다.
조이스의 동상은 그렇다손 치고 그의 작품에 등장했던 인물들의 조각상까지 더블린 곳곳에 즐비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오코넬 거리에 있는 여행 안내소에 가면, 율리시즈의 무대를 따라 더블린 시내를 돌아볼 수 있는 안내 지도를 판매하고 있을 정도이다.
지금은 아일랜드 문학의 정수이자, 20세기 문학사에 길이 남을 인물로 추앙받고 있지만, 제임스 조이스가 등단 초기부터 주목받았던 건 아니다. 18세 때 입센에 대한 평론을 발표했던 그는 켈트 신화나 아일랜
드 민간설화에 의존하는 아일랜드 문단의 편협성에 반발했다. 단테, 입센, 플로베르 등의 작가에 심취했고, 아일랜드 문예 부흥 운동을 주도한 예이츠 싱 등과도 활발하게 교류했다.
그러던 그가 세계 단편 문학의 고전으로 남은 ‘더블린의 사람들’을 들고 출판사를 찾았을 때 그를 반긴 이는 아무도 없었던 모양이다. 하지만 그는 이후 세계 현대 문학의 기념비라 일컫는 ‘율리시즈’를 통해 문
체의 마법사라는 격찬을 듣게 됐고, 이 작품의 배경이 된 더블린의 거리와 주점, 상점, 교회, 다리 등은 모두 관광객의 순례코스가 되었다
더블린 남서쪽 샌디코브 해변의 험준한 언덕 위에 솟아있는 마텔로 탑,이곳이 바로 더블리너의 우상 제임스 조이스 박물관이다. 병사들의 침실과 탄약고를 개조한 2개의 전시실은 소설의 희귀본과 지팡이, 지갑 등 조이스의 유품으로 가득하다.
모든 장르를 섭렵한 아일랜드
제임스 조이스가 아일랜드 산문을 대표한다면, 시의 영역엔 윌리엄 버틀러예이츠가 우뚝 서 있다. 그는 현대 영문학사에서 가장 위대한 시인 중 한 사람으로 손꼽힌다.
러셀의 영향으로 초기에는 탐미적이고 신비주의 적인 작품을 쓰기도 했던 그는 이후 민족주의에 경도되었고, 1939년 1월 세상을 뜨기 직전까지 50여 년에 걸친 오랜 시작 기간 동안 끊임없는 모색과 굽히지 않는 투쟁 정신을 보여주었다. 전통 민족 정신의 자각을 통해 아일랜드의 문화 복권을 목표로 삼았던 아일랜드 문예 부흥 운동의 중심 인물 예이츠,
그의 석회석 묘비에는 다음과 같은 자작 비명이 새겨져 있다. ‘삶과 죽음을 차가운 눈으로 바라보라. 그대. 지나가게!’ 아일랜드인의 기질을 잘 보여주는 작가가 바로 조지 버나드 쇼가 아닐까.
그는 일찌감치 문재를 뽐냈던 다른 작가들과 달리 36세란 늦은 나이에 극작가로 변신한 독특한 이력을 지니고 있다. 초기작인 ‘홀아비의 집들’과 ‘워렌 부인의 직업’을 통해 당시의 사회악을 신랄하게 비판했고, ‘무기와 인간’에서는 전쟁에 대한 낭만적이고 영웅주의적인 태도를 조소하기도 했다.
1885년에 일어난 불가리아와 세르비아 간의 전쟁을 소재로 한 이 작품으로 1925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
또 한 사람의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사무엘 베케트에 이르러서는 아일랜드 문학의 다양성이 비로소 완성된다. 시를 시작으로 에세이, 소설 등 전방위 창작을 했던 그는 2차 세계대전 기간 동안 프랑스에서 레지스탕스 활동을 했으며, 전후에도 적십자 요원으로 프랑스의 복구 활동을 도왔던 인물이다.
자신보다 먼저 파리에 정착했던 제임스 조이스와도 깊이 교류했다. 베케트는 1952년, 그의 대표작이자 현대 연극사와 문학사에 길이 남을 작품 ‘고도를 기다리며’를 완성한다.
베케트가 부조리극 ‘고도를 기다리며’를 통해 인생은 끊임없는 기다림의 연속이라고 설파했다면, 같은 더블린 출신의 조나단 스위프트는 ‘걸리버 여행기’에서 가상의 공간을 통해 인간의 어리석음을 날카롭게 풍자하는 데 성공한다.
가장 최근에 조국 아일랜드에 노벨문학상을 선사한 시인 셰무스 히니의 작가 정신이 더블리너의 우상이자 선배 작가인 제임스 조이스와 이어지는건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그 두 문인이 가톨릭의 감성을 토대로 일상과 주변을 사실적으로 그렸다는 공통점을 가진 건 사실이지만,그보다 중요한 건 자신의 종교나 공동체에서 떠나 보편적 작가로서 세계화를 모색했다는 점일 것이다.
울스웨터를 가장 먼저 떠올리게 하는 초록의 섬, 아일랜드. 전 세계에 수 천만 명의 이민자들을 떠나보낸 아일랜드인들의 바람같은 기질 때문일까.유독 아일랜드 출신 작가들은 외국에서 그 진가를 발휘했다. 조지 버나드쇼와 오스카 와일드가 그랬고, 제임스 조이스와 사무엘 베케트도 그랬다.
아일랜드 문학이 세계인들에게 추앙받고 있는 것도 혹시 아일랜드인들의 그러한 정신 덕분은 아닐까.
[Interview] 에이먼 맥키 주한 아일랜드 대사
식민과 투쟁의 역사 문학·경제 ‘밑거름’
지난 2009년 7월 가족과 함께 한국에 부임한 에이먼 맥키(Dr. Eamonn Mckee) 주한 아일랜드 대사에게 한국의 첫 인상은 매우 역동적이고 현대적인 나라였다. 한국인 역시 매우 집중력이 강하고 활동적이며 적극적으로 보였다고 회상했다.
노벨문학상을 4명이나 받은 아일랜드의 문학적 저력은 어디에 있다고 보는가
아일랜드의 문학적 저력은 아일랜드의 식민지 역사 그리고 외국 정부와 문화의 압력에 대한 아일랜드 고유의 정체성 간의 고난의 역사로부터 기인한다고 여겨집니다.
이와 같은 고난의 역사가 모국어인 갤릭어와 영국 식민지 이주민의 언어인 영어 사이에서, 우리만의 언어로 표현 되어졌습니다. 물론 영어는 우리의 문학뿐 아니라 경제 발전을 가능케 선물이기도 합니다.
자랑스럽게 여기는 아일랜드의 역사나 문화는 무엇인가요
저는 아일랜드인들이 지닌 정체성, 인간애 그리고 유머를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어떤 어려움이 닥쳐도 우리는 항상 웃을 여유를 찾으며 긴 안목으로 생각하려고 합니다. 우리는 인생을 즐기고 가족을 중시하며 쉽게 친구를 만듭니다.
유럽의 문화 및 경제 강국인 아일랜드에 대해 소개한다면
한국과 같이, 아일랜드 사람들은 사업성공의 관건인 대인 관계를 형성하는 재능이 있습니다.
우리가 발전하게 된 요인은 융통성 있고 창의적이며 젊은 고학력의 노동 인구가 있다는 사실에 기인합니다. 아일랜드는 세계에서 가장 큰 유럽 공동시장인 EU에 속해 있습니다.
미국 내에서도 최대 민족집단을 형성하고 있으며 미국과도 긴밀한 관계에 있습니다. 1960년대 이래로 외국 직접투자가 아일랜드의 주요 경제 발전의동력이 되어 왔습니다.
한국사람들에게 아일랜드의 가볼만한 여행지를 추천한다면
아일랜드의 아름다운 풍광과 도시, 풍부한 역사와 더불어 특히 친근한 아일랜드 사람들을 만나보기를 추천하고 싶습니다. 아일랜드에는 세계에서 최고라 할 수 있는 하이킹 코스와 세계적 수준의 골프 코스 등을 즐길 수 있습니다.
낚시와 사냥이 유명하며 두말할 필요없이 승마와 모험스포츠가 유명합니다. 아일랜드는 멀리 있지 않습니다. 런던이나 파리 도착 후 더블린까지 셔틀비행기를 이용하시면 아주 쉽게 오실 수 있습니다. 적정 가격의 식음료 및 숙박제공이 가능하며 영어를 배우기에도 좋은 곳입니다.
한국인에 대해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아일랜드 사람들과 한국사람들은 여러 면에서 많은 공통점을 지니고 있습니다. 양국은 비슷한 식민과 투쟁의 역사를 가졌습니다. 두 나라는 모두 난관을 극복하여 주체
성과 삶에 대한 사랑을 지켰습니다. 이러한 공통점에 대한 탐구가 한국에서 지속적으로 이어지길 기대합니다.
중앙대와 고려대 대학원을 졸업했다.
1977년 전국대학미전 문교부장관상과 1988년 서울 올림픽 보도 관련 공로 체육부장관상, 2004년 출판문화상을 수상했다.
그 동안 9회에 걸친 개인전을 열었으며, 지금까지 세계 90개국, 1천여 곳 이상을 취재했다.
사진작가가 겸 여행 칼럼니스트, 한국사진작가협회 자문위원으로 활동하면서 출간한 책만도 20권에 이른다.
글·사진 _ 여행 칼럼니스트 허용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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