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속 여성 퍼즐맞추기 이번엔 조선시대 발칙한 동성애
“……그저 사랑하고 보니 사내가 아니었을 뿐입니다, 제가 사랑하는 사람이 여인이었을뿐입니다! 다음 세상에 사내로 태어나리란 건 장담할 수 없지만, 한 가지만은 분명해요. 행여 그때도 사랑이 죄가 된다면, 나는 기꺼이 사랑으로 죽으리라는 것을.”
그 누구도 ‘기억’하지 않고 ‘기록’하지 않은 조선시대 한 여인이 띄엄띄엄 변명이자 항변이자 호소이자 고백인, 마지막 진실을 쏟아낸다.
사랑한 죄로 오빠의 칼에 죽임을 당하는 여인을 재해석해 새로운 인물로 만든 한 여인이 있다. 바로 작가 김별아(43)다. 김별아 작가의 일곱번째 역사소설 ‘채홍’(해냄 출판사)은 대식(對食)행위, 요즘 말로 동성애를 다루고 있다.
조선시대 동성애인지라 사실일까 허구일까 하는 의구심에 책을 단숨에 읽고 새해 첫 달인 1월 9일 용인시 동천동 작가가 살고 있는 동네로 찾아갔다. 김별아는 3시간 동안 여자 김별아의 20년과 작가 김별아의 20년을 조용조용하면서도 재미있게 풀어나갔다.
계집과 계집의 사랑이라니
“조선의 역사는 곧 여성의 수난사이기도 하다. 여성들은 ‘굶어죽는 것은 작은 일이요 절개를 잃는 것은 큰 일’이며 ‘인지상정보다 소중한 것이 명분이고 정절보다 소중한 것이 시부모님에 대한 도리’인 사회에서 수많은 금기에 시달리는 가운데 특히 사랑을 통제받았다.”
작가는 성군 세종의 적정자이자 조선의 다섯번째 왕인 문종의 두번째 부인이었던 순빈 봉씨를 통해 불집을 건드리는 것만큼이나 위험한 일인 사랑을 이야기 하고 있다.
그녀는 전작에서도 다양한 역사 인물을 조명했다. 그것도 유독 힘없는 여성에 집착(?)해 왔다. 2005년 장편 ‘미실’로 제1회 세계문학상을 수상한 이래 30대 접어들어 ‘영영 이별 영이별’, ‘논개’, ‘열애’ 등을 펴내 실존인물을 위주로 새로운 여성상을 제시해왔다.
“조선왕조실록에는 순빈 봉씨가 패륜적인 음란 스캔들의 주인공으로 묘사돼 있지만 행간을 읽다보면 굉장히 자유분방하고 자기 욕망에 솔직한 여성이었다. 이처럼 큰 역사에 가려진 여인들이나 패자의 이야기는 그 누구도 귀 기울이지 않는다. 현재의 이야기는 많은 작가들이 쓰지 않느냐?”
김별아의 순빈 봉씨는 ‘발칙한 여자’다.
“소쌍아! 정녕 네가 내 마음을 아느냐? 나를……알겠느냐?”며 봉빈은 자신의 감정에 솔직한 사람이다. 또 “계집이 사내가 아닌 다른 이를 사랑하면 무조건 음녀이고 탕녀입니까?
씻을 수 없는 죄악을 저지른 것이랍니까?”, “제가 처음부터 작심하고 계집을 사랑하려 했더랍니까? 그래서 치도곤 당할 것을 번연히 알면서도 무람없이 희롱하며 난질하였답니까?”라고 말하는 당당한 여자다.
현재 순빈 봉씨처럼 나인 소쌍을 사랑했다고 당당하게 동성애를 말할 수 있는 이가 얼마나 될까.
그 부분에 있어 작가의 생각이 너무 깊게 묻어난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일곱번째 역사소설 ‘채홍’조선왕조의 다섯번째 왕인 문종의
두번째 부인이었던 순빈 봉씨를 통해 위험한 사랑 이야기를 담아냈다
“나는 봉빈의 목소리를 빌려 역사와 사랑을 말하고 싶었다. 역사가 기록된다면 사랑은 기억된다. 그리고 어리석은 본능을 옹호하고 덧없는 욕망을 지지하는, 오직 인간의 편인 문학만이 그 기억을 기록할 수 있다. 나는 기어이 사랑하여 기꺼이 패배한 그들의 손을 끝내 놓지 않을 것이다. ‘채홍’이 야한가? 아닌데.(하하)”
작가는 역사에 가려진 숨은 여인을 더 발굴해 책을 낼 생각이라고 했다. 역사소설을 일곱권 냈으면 현대물로 전환도 해볼만한데 아직은 역사소설을 더 쓰고 싶다고 한다. 참 욕심 많다. 고집스럽다.
목매고 죽어도 좋을 나무
목매고 죽어도 좋을 나무맞다. 작가 김별아는 욕심이 많은 아이였다. 표면적으로 보면 부유한 집안에서 남부럽지 않게 자란 ‘공주과’에 속한다. 강릉에서 교사 생활하는 부모님 밑에서 굶주림도, 궁핍도 모르고 성장했고 공부도 제법 잘해 학창시절 반장노릇을 도맡아 했을 정도로 모범생이었다.
“부모님도, 선생님도 그 누구도 못말리는 아이, 감당하기 힘든 아이였다. 겉으론 모범생이었지만 집에서 문제아였다. ‘이중생활’을 한 거다. 일하는 엄마대신 어린 나를 키운 건 가정부 언니들이었는데, 그 어린 시절 ‘내상을 입은’ 경우였다. 가출도 하고 술 마시고 담배 피고, 고3 겨울방학 때는 버스 안내양 생활도 했고 연세대 국문과 시절엔 데모하러 다니느라 바빴다. 쌈닭이었다.(하하)”
아무 문제없을 것 같아 보이는 유년시절 작가는 ‘소아우울증’으로 곪아 있었고 “행복하지 않았다”고 회상했다. 남의 손에 자라야 했던 김별아의 일기장엔 “죽고 싶다”, “죽이고 싶다” 등의 무서운 문장이 빼곡했다.
굴곡이 많은 사춘기를 보내면서 그녀를 잡아 준 건 책이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작가의 길을 걷게 됐다.
“고등학교 때 우연히 한국 문학을 접하게 됐고 그 시절 문학이 ‘목매고 죽어도 좋을 나무’로 다가왔다. 스승이 없으면서도 많았던 것이 다 책 덕분이었다. 글 쓰는 것 말고는 달리 재능도 없었다.”
20대 초반 글을 쓰기 시작한 그녀는 20년 소설가로 살면서 절반을 무명으로 살았다. 만만치 않았을 테다. 자서전 대필도 하고 동화도 쓰고 무명작가로서 할 수 있는 일들은 닥치는대로 모조리 했다.
조선왕조실록에는 순빈 봉씨가 패륜적 음란 스캔들의 주인공이지만
행간을 읽다보면 굉장히 자유분방하고 자기 욕망에 솔직한 여성이었다
그녀를 일약 스타작가로 만든 작품이 바로 세계문학상 당선작인 장편소설 ‘미실’이었다.
‘화랑세기’에 기록된 신비의 여인, 미실을 천오백 년의 시공을 뛰어넘어 현대에 되살린 소설로 타고난 미색으로 진흥제, 진지제, 진평제와 사다함 등 당대 영웅호걸들을 녹여내고 신라왕실의 권력을 장악해 간 미실의 일대기를 통해 현대와 같은 성모럴이 확립되기 전의 여성성을 잘 표현해 인기와 명예를 한꺼번에 얻었다.
1억원의 상금도 거머쥐면서 무명작가 생활도 청산할 수 있었다.
적극적인 탐구 정신, 작가적 상상력, 호방한 서사 구조를 바탕으로 그간 우리 문학에서 만나지 못했던 전혀 새롭고 개성적인 여성상을 그려 냈다는 평가를 받았으면서 김별아 작가의 역사소설은 한국 문단의 새 장을 열었다.
조선시대 단종과 정순왕후의 사랑과 이별을 담은 역사소설 ‘영영 이별 영이별’, 스무 살의 짧은 생을 불꽃처럼 태우며 살고 간 논개의 일대기를 다룬 ‘논개’, 일본 천황가 폭탄 투척 사건의 주인공이었던 조선인 독립운동가 박열과 그의 일본인 아내 가네코 후미코의 사랑을 아슬아슬하고 관능적인 언어로 그려낸 ‘열애’ 등 김별아에게 찜당한 인물들은 하나같이 시대에 순응하지 않은 ‘문제적 인간’이었지만 하나같이 새로운 모습으로 태어났다.
김별아는 ‘삼국사기’, ‘삼국유사’, ‘화랑세기’ 등 정사에 근거해 김별아표 역사책을 만들어 낸다. 그만큼 공부도 많이 해야 하고 자료 수집도 힘든 작업의 연속이다.
“‘미실’만큼 대작은 못쓰고 있는거 아니냐?”는 민감한 질문에 김별아는 “글쓰는 일은 막노동이나 다름없다. 끊임없이 공부해야 하고 자기 자신과의 싸움이다. 힘들지만 문학 자체를 즐기고 있다. 굳이 평론가가 원하는, 독자가 원하는 맞춤형 글을 쓰고 싶지 않다. 불친절한 작가라는 거 나도 잘 안다.”
40년 넘게 평지형 인간으로 살았던 그녀는 2년에 걸쳐 봉화산, 월경산, 백운산, 덕유산, 지리산, 속리산 등 백두대간 종주기를 엮어 산행 에세이 ‘이 또한 지나가리라’를 내면서 역사소설가 김별아를 살짝 비켜가기도 했다. 나름 노력에도 불구하고 김별아 하면 역사소설가로서의 냄새가 짙다. 정형화되는 것이 두렵지 않을까.
“우리 역사서에 한 줄 이상 등장하는 여성이 22명 밖에 없다. 역사가 철저히 남성위주로 기록되고 있다는 것이다. 다 아는 역사 인물에 새로운 이름을 붙여주고 새로운 옷을 입혀주고 그들이 말하고 싶었던 진실이 무엇인지를 담아내는 것이 내가 해야 할 일인 것 같다.”
20년째 ‘욕망 다이어트’
문단, 평론가, 독자들 눈치 보지 않고 자신만의 작가세계를 구축하고 있는 김별아는 요즘 “문학과 아들이 있어 행복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세상에서 가장 무서우면서도 자신을 꼼짝 못하게 하는 존재가 바로 아들이라고 했다.
“과천에서 10년 정도 살다가 아들을 위해 용인으로 이사왔으니 현대판 ‘맹모삼천지교’를 실천하고 있는 평범한 엄마다. 아들은 나와 많이 다르다. 음악 좋아하고. 작가로 살아온 20년 동안 원고마감 시간을 단 한번도 어긴 적이 없을 만큼 나 자신에게 엄격한 스타일인데 아이한테는 그렇게 하지 않으려고 한다.”
굴곡 많은 유년시절을 거쳐 30대부터 행복해지기 시작했다는 김별아는 아들 이야기하는 동안만큼은 평범한 아줌마였다. 사교육없이 대안학교를 보내고 있는 아들의 장래를 걱정하고, 영국으로 여행간 아들의 빈자리가 생각보다 크다며 투정부리는 흔하디 흔한 대한민국의 ‘아들 바보’였다.
아들을 키우며 아웅다웅 살아가는 아줌마와 마이너리티 성향의 역사 인물을 조명하는 작가 사이에서 김별아는 행복한 외줄타기를 하고 있었다.
“대한민국에서 작가가 되기는 싶다. 그러나 작가로 살아가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지난 20년 동안 ‘욕망 다이어트’를 하면서 살아왔다. 남들처럼 누릴 것 다 누리고 살 수 없는 직업이 바로 소설가다.
생각해보면 작가가 된 이후 운동, 문학, 아들을 제외하면 아무 것도 없었다.
참 재미없는 인생을 살아왔다.(하하)”
재미없는 인생? 그래 어쩌면 김별아는 역사 속 문제적 인물을 통해 또 다른 자아를 찾고 있는 건 아닐까
글 _ 강현숙 기자 mom1209@kyeonggi.com 사진 _ 추상철 기자 scchoo@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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