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멍뚫린 ‘대북정보’ 나사풀린 ‘안보의식’

김정일 사망 몰랐던 국정원 ‘굴욕의 역사’

국회 외통위, 정부 대북정보력 부재 질타

이희호 여사·현정은 회장 등 민간 조문단 방북

김정일 사망 몰랐던 국정원 ‘굴욕의 역사’국회 외통위, 정부 대북정보력 부재 질타이희호 여사·현정은 회장 등 민간 조문단 방북

 

북한의 최고실력자 김정일 국방위원장(69)이 사망했다.

 

북한 당국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사망 사실을 지난해 12월 19일 정오 공식 발표하면서 사망 시각을 17일 오전 8시30분이라고 밝혔다. 사망에서 공식발표까지 51시간 30분의 차이가 생긴다.

 

국가정보원·국방부·외교통상부·청와대 외교안보수석실·국가위기관리실 등 외교안보 라인 전체가 북한이 김정일 사망 시각으로 밝힌 17일 오전 8시30분부터 공식 발표한 19일 정오까지 51시간30분 동안 김정일 유고를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국회에서는 대북 정보력 부재에 대한 질타가 이어졌고, 정치권은 김정일 장례 조문 문제로 대립하는 등 갈팡질팡했다. 야당 국회의원들이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 조문을 주장하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부인 이희호 여사와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이 김 위원장을 조문하자 논란이 일었다.

 

“청와대와 국정원, 아무도 몰랐다”

 

“국가정보원의 대북정보수집망이 완전히 무너졌다.”

 

김진표 민주당 원내대표(수원 영통)는 지난해 12월 22일 국회 고위정책회의에서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급사를 계기로 드러난 국정원의 대북 정보수집 능력에 개탄했다.

 

국정원의 ‘먹통’ 대북 정보력은 비단 김 원내대표 뿐만 아니라 국민을 경악케 했다. 반세기 이상 대치하고 있는 남북관계에서 북한과 다양한 접촉 루트를 갖고 대북 정보를 장악한 국정원과 국방부가 김 위원장의 사망소식을 언론을 통해 알았다는 사실은 충격 그 자체였다. 더욱이 연평도, 천안함 사건 등 북한의 무력 도발로 분노와 함께 불안감에 시달려야 했던 국민들에겐 정부에 대한 배신감마저 갖게했다.

 

국회 국방위와 외교통상통일위 소속 여야 의원들은 긴급 현안보고 및 전체회의를 통해 국가정보원장, 국방부장관, 외교부장관의 ‘먹통’ 대북정보망을 질타했다.

 

이같은 결과에 대해 현 정부들어 남북 관계의 경색으로 남북 사이의 비상 라인이 모두 끊기는 등 북한에 대한 인적 정보를 거의 확보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군과 국정원은 크게 인적정보(Humint)와 신호정보(Sigint), 영상정보(Imint)를 총동원해 대북정보를 수집하고 있다. 이 세 가지 채널 중 어느 한 곳에서 첩보가 수집되면 나머지 두 채널로 수집된 첩보를 조합해 하나의 정보가 탄생한다.

 

그러나 현 정부는 인적정보망 보다 신호·영상정보를 통한 대북 정보수집에 주력, ‘반쪽정보’에 의존해 북한을 들여다봐야 하는 대북 정보력의 한계가 여실히 드러냈다.

 

원세훈 원장의 잦은 인사이동도 한 원인으로 지적된다.

 

원 원장이 지난 2009년 2월 취임한 뒤 간부급 직원 수십 명이 대거 대기발령받은데다 팀제를 도입,  조직원들의 서열을 바꿔 불만이 쌓이고 손발이 맞지 않는 부작용도 발생했었다.

 

또 기존 1·2·3차장의 역할을 바꾸는 조직개편도 단행해 업무영역이 일부 겹치는 등 오히려 혼선을 야기했다.

 

한나라당 정두언 의원은 “인사가 너무 원칙 없이 자의적으로, 시도 때도 없이 이뤄져 국정원이 지금 마비 상태에 와 있다”고 꼬집었다.

 

이휘호·현정은 방북 “조문이 도리?”

 

민주통합당 원혜영 전 공동대표는 지난해 12월 23일 이명박 대통령에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 사망과 관련, 민간인 조문단 파견 ‘결단’을 거듭 촉구했다.

 

원 전 공동대표는 최고위원회의에서 “마침 오랫동안 남북 간 교류·협력에 중심적인 역할을 해 왔고 여야, 보수·진보 세력이 망라된 민화협이라는 단체가 있다. 이 단체를 민간 조문단 대표로 보내면 남북 평화 회복에 좋은 계기를 만들 수 있다”며 “대통령의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결단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대북 긴장완화를 위해 ‘조문외교’를 주문한 것이다.

 

이와관련 정부는 조문 불허방침을 분명히 했으며 이 여사와 현 회장 일가에 대해서만 방문을 허용했다. 고 김대중 대통령과 고 정몽헌 회장의 조문에 따른 답례차원이다.

 

그러나 연평도 포격으로 아들을 잃은 부모를 비롯해 보수우파단체들은 반대의 목소리를 높였다.

 

연평도에서 근무중인 아들 서정우 하사를 잃은 어머니 김오복씨는 “조문이란 말이 나올 때부터 마음이 불편했다”며 “외국 정상이 사망하면 당연히 예의상 조문해야겠지만 김정일은 우리에게 온갖 만행을 저지른 장본인이다. 유가족을 떠나 국민 입장에서 조문을 반대한다”고 말했다.

 

김씨는 12월 20~21일 퇴근한 뒤 두꺼운 (아들 빈소) 조문 방명록 8권을 일일이 뒤졌다. 일부 야당 정치인 중 작년 연평도 포격 후 조문이나 애도를 표하지 않았던 사람들이 유독 “김정일 조문이 도리”라고 주장한 게 화가 나서다.

 

김씨는 “자식 같은 병사들이 무참히 희생당할 땐 무관심하게 침묵으로 일관했던 사람들이 그 ‘악당’의 죽음엔 안타까워하는 게 사람 도리인지 묻고 싶다”고 말했다.

 

천안함 폭침으로 숨진 민평기 상사의 어머니 윤청자씨는 “내 자식을 죽인 김정일은 내겐 원수”라며 “저 원수가 언제 죽나 했는데 드디어 죽어서 속이 조금 후련해지나 했더니 많이 배우고 높은 자리에 있는 분들이 조문을 간다고 하네요”라며 억장이 무너지는 심정을 표출했다.

 

이와 함께 한국자유총연맹,  라이트코리아, 고엽제전우회, 대한민국재향군인회 등 보수우파단체들도 37년 간 무자비한 폭정으로 수백만 북한 동포를 죽음으로 몰고 갔던 독재자 김정일에 대한 조문은 어불성설이라며 단호한 입장을 밝혔다.

 

글_김창학기자 chkim@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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