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 출신 중견 시인 최정례씨(56)가 5년 만에 낸 새 시집 ‘캥거루는 캥거루고 나는 나인데’(문학과지성사刊)를 펴냈다.
1990년 ‘현대시학’으로 등단해 유머와 냉소를 오가는 독특한 시상을 전개해온 시인은 한층 넓어진 시적 세계 속에서 지리멸렬한 일상의 시간들을 깊숙이 탐색해 왔다.
4부에 걸쳐 모두 54편의 시가 담긴 이번 시집에서 최씨는 예전의 능청스러움이 줄어드는 대신 기억의 편린과 겹침의 ‘통증’을 전작보다 더욱 첨예하게 드러낸다. 기억을 통한 현실의 재구성과 거리두기에 관심을 보인다. 이 과정에서 특유의 유머와 냉소를 포갠 시상은 여전하다.
“하긴 나도 새끼를 들쳐 업고/ 이러저리 숨차게 뛰었지만/ 그렇다고 내 속에 캥거루가 있다고 말하면/ 안 되겠지요 …(중략)… 나는 가끔 쓸데없는 걱정을 많이 하는 편인데/ 캥거루 주머니에 빗물이 고이면 어쩌나 하는 식으로/ 우리 애들이 살아갈 앞날을 걱정하지요”(‘캥거루는 캥거루고 나는 나인데’ 부문)
최정례는 시력 20년 동안 꾸준히, 스스로와 싸워 변화해온 시인이다. 그리고 그의 다섯번째 시집인 ‘캥거루는 캥거루고 나는 나인데’는 그 치열함의 과정이다. 마치 첫 시집을 대하듯. 마치 처음 세계와 세계의 질서를 대하듯, 조심스럽게, 하지만 분명하게 발을 내딛는 시인의 행복를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함돈균 문학평론가는 “최정례의 다섯 번째 시집에는 특유의 시치미떼기와 능청스러움이 줄어드는 대신, 시간성의 뒤섞임과 교착 상태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자주 드러난다”며 “목소리의 간절함도 출현했다”고 지적했다. 값 8천원.
강현숙기자 mom1209@ekgib.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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