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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버 포스와 의회 정치 그리고 우리 국회
오피니언 문용린 칼럼

월버 포스와 의회 정치 그리고 우리 국회

‘노예해방’ 하면 누구나 미국 대통령 에이브라함 링컨을 떠올린다. 그러나 사실 노예해방 즉, 노예제도 폐지의 인류사적 쾌거는 이미 1833년, 미국보다 30여년 앞서서 영국 국회에서 오랜 논란 끝에 이뤄진다. 윌버 포스(Wilber Force)라는 왜소한 체격의 한 국회의원이 제안한 ‘노예제도의 영원한 폐지에 관한 법안’이 통과된 덕분이다.

 

미국은 노예제 폐지를 둘러싼 논쟁과 갈등을 대표자들의 회의(국회)를 통해서 해결하지 못해서 미국 역사이래 최대의 비극으로 불리는 남북전쟁이라는 불행한 내전을 치렀지만, 영국은 국회 내에서 평화로운 법제정절차를 통해 노예제폐지를 공표하게 된다. 의회정치가 인류의 진보에 기여하는 성공적 장치임을 만천하에 실증해준 쾌거였다고 할 수 있다.

 

미국에서는 전쟁까지 치르게 한 이 복잡한 노예폐지문제가, 영국에서는 어떻게 의회내의 토론과 협상만으로 해결될 수 있었을까? 이 문제가 미국에서만큼 심각하지 않아서였을까? 천만에, 그렇지 않다. 1800년 초반 당시 노예제 폐지 문제는 강대국 영국의 위상을 크게 뒤흔드는 문제였다. 노예제의 폐지는 곧 대영제국 전체 예산의 3분의1을 포기해야할 정도의 경제적 손해를 각오해야하는 것이었다.

 

영국의 왕족과 귀족 등 상류층 유명 인사들은 거의 모두가 노예무역으로 큰 돈을 벌고 있었기 때문에, 노예제 페지법안이 의회를 통과할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 노예제의 폐지는 영국재정의 막대한 손실을 초래할 것이 분명했고, 그 여파로 영국은 최고 강대국의 자리를 빼앗길 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이런 중차대한 문제에 대해서 찬반의 극렬한 대립과 논쟁이 있었음은 물론이다.

 

노예제 폐지로 야기될 국가적 손해의 규모는 영국의 경우가 미국에 비해서 더 컸으면 컸지, 결코 작지는 않았다. 그런데도 영국은 전쟁과 같은 내부 갈등 없이 의회 민주주의를 통해서 해결했고, 미국은 의회 민주주의가 제대로 기능하지 못해서 결국 전쟁까지 치러 그 결과로 60만 명의 아까운 목숨을 버려야 했다.

 

윌버 포스의 노예제 폐지법안을 에워싼 영국의회의 토론과 타협의 민주주의는 ‘의회민주주의’의 핵심을 보여준다. “토론하고 또 토론하라. 설득하고 또 설득하라. 그리고 난 후에 모여서 찬반투표를 하라. 다수의 찬성을 받은 안이 나오면, 조건 없이 수용하라.”

 

이런 정신에 투철한 게 의회 민주주의다. 윌버 포스는 이런 의회 민주주의 신념이 몸에 밴 진정한 국회의원이었다. 노예제 폐지는 그가 27세 때 처음 국회의원이 되면서 맹세한 자기와의 약속이었다. 그가 처음 이 법안을 만들어 상정했을 때, 그에게 쏟아진 비난과 경멸 그리고 적대감은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그러나 그는 대화-토론-설득을 끊임없이 반복하면서 의회 내에 노예제 폐지론자의 수를 늘려가기 시작한다. 원래 말이 어눌했던 윌버 포스는 이런 대화, 토론, 설득의 반복을 통해서 영국 최고의 웅변가로 변신한다. 노예제 폐지의 당위성을 설득하고 확산시키기 위해서 그는 국회의원 재직 중에 무려 150여회에 걸친 명연설을 쏟아냈다.

 

27세(1787)에 국회의원이 되어 이 노예제 폐지에 진력한 윌버 포스는 마침내 46년 만에 그 법안을 통과(1833)시키는데 성공하고. 3일 후 숨을 거둔다. 그 긴 기간 동안에 그는 자신의 법안 통과를 위해서 꼼수도 쓰지 않았고, 폭력도 행사하지 않았고, 욕도 하지 않았으며, 돈도 받지 않았으며, 매수는 더 더욱 하지 않았다. 의회민주주의의 행위 규칙을 철저히 존중했고 준수한 것이다.

 

한미 간 FTA 협정의 비준문제를 다루는 요즘의 여의도 국회를 보면서, 의회 민주주의 정신의 가출(家出)을 보는 것 같아 씁쓸하다. 그간 그만큼 떠들고 싸우고 소리쳐댔으면(대화-토론-설득의 또 다른 표현이라고 해두자), 이제 한자리에 모여서 다수결 투표를 해야 할 것 아닌가? 그렇게 해서 양단간에 결정을 내려 주어야, 국가가 움직이는 것 아닌가? 찬반 논쟁을 멀리서 바라다보는 국민들은 답답하다. 윌버 포스같은 사람은 물론 보이질 않고, 다른 사람의 의견을 선입견없이 귀담아 들어 주려는 그의 동료 의원같은 사람도 하나 보이질 않는다. 20~40대의 반란이 일어난 이유를 알 것 같기도 하다.

 

문용린 서울대 교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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