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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의 기술, 그것이 더 문제다.
오피니언 문용린 칼럼

소통의 기술, 그것이 더 문제다.

서울의 어느 대사관에 근무하는 외국인 친구와 이야길 나눈 적이 있다. 신임 장관 청문회 문제로 국회가 한창 시끄러울 때여서 그랬는지, 내가 그에게 “한국사회엔 문제도 참 많지요?”라고 물어 본 적이 있다. 그냥 지나가는 말로 한번 던져 본 질문인데, 그가 정색을 하며 대답을 한다.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한국의 오늘날의 어려움은 문제가 많아서가 아니라, 문제를 풀어가는 기술이 모자라서 그렇습니다.”

 

그의 말인 즉, 선진국을 포함한 다른 나라들이 가지고 있는 문제점에 비하면, 한국의 문제는 문제거리도 안된다는 것이다. 다른 나라의 고질적 국내 문제는 주로 인종과 종교 그리고 지역과 이념 차이에서 오는데 한국의 경우 그 네 가지 문제의 심각성은 다른 나라에 비해서 훨씬 낮다는 것이다. 심각하다면 가장 심각한 것이 이념갈등인데, 그것마저도 다른 나라들이 겪은 갈등에 비하면 여전히 그 강도는 낮은 편이라는 것이다.

예컨대 미국의 인종갈등, 영국의 종교갈등, 러시아와 독일의 이념갈등, 일본과 중국의 지역갈등 등은 현재 한국이 겪고 있는 문제점에 비하면 훨씬 더 복잡하고, 심각하고, 어려운 것이지만, 이들 나라는 이 문제들을 합리적으로 풀어 가는 기술을 발휘하고 있기 때문에 심각한 갈등으로 비치기보다는 그 나라 국민들이 머리를 맞대고 문제들을 잘 풀어 가고 있는 것으로 비춰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 말은 내겐 충격이었다. 나는 우리나라가 북한과의 체제우열 다툼으로, 진보와 보수 간의 사사건건 대립으로, 뿌리 깊은 지역감정으로, 해이된 도덕적 정신적 기강으로 대단히 문제가 많은 나라로 생각하면서 살아 왔는데, 그렇지 않다는 설명을 들은 셈이니 충격을 받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문제를 푸는 슬기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그는 대화 즉 소통의 기술을 이야기한다.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산적한, 그리고 끊임없이 발생하는 사회적, 정치적 문제를 풀어 가는 유일한 방법은 대화와 소통을 통한 합의와 동의 뿐인데 한국사회에는 이런 대화와 소통을 가로막는 문화적 장벽이 높다는 것이다.

 

그가 열거하는 문화적 장벽이란 무엇인가? 나이와 신분과 지위의 격차 그리고 소속집단의 성격 차이가 클수록 진위를 밝히거나 다른 의견을 밝히거나 권리주장을 펼치는 대화가 점점 더 어려워지는데, 이를 지적하는 것이다. 대화 외적인 문화요소가 개입되어 대화의 진행 자체를 방해하기 때문이다. “건방지다, 예의가 없다, 위아래도 모른다, 은혜도 모르고 대든다. 젊은 사람이 까분다” 등은 대화의 합리적 진행과 전개를 방해하는 한국적 문화다.

 

이런 문화는 한국의 모든 조직 속에 보편적으로 배어 있다. 가정 내에도 존재한다. 아들과 딸이 아버지 면전에서 다른 의견과 주장을 적극적으로 개진할 수 있는 가정이 얼마나 될까? 크건 작건 많은 조직에도 이런 문화가 가득하다. 아랫사람들이 상사의 면전에서 다른 의견이나 비판적 주장을 마음 편하게 대화하고 소통할 수 있는 회사나 조직이 얼마나 되겠는가?

 

한국인들은 소속집단 애착감이 강한 대신 타집단에 대한 배척감도 강해서 집단 간의 대화와 소통은 지극히 어렵다. 집단을 대표하는 개인이 집단의 뜻을 고수하지 못하고 타협과 양보를 하면 배신자 소리를 들을 각오를 해야한다. 그게 우리나라의 일반적 문화이고 전통이다.

 

국회와 지방의회에서 여야가 대화와 소통을 하기보다는 언제나 고함과 퇴장과 난투극을 벌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여야 간에는 당연이 서로 의견차이가 있게 마련이다. 그것은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다. 다른 나라에서는 여야의 대표가 모여서 대화와 소통을 통해서 타협의 접점을 마련한다. 서로가 양보하고 희생하고 인내심을 발휘한다. 그래서 합의와 동의를 이루어 낸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선 기대하기 힘들다. 여야의 대표가 양보와 인내로 타협의 접점을 찾아 낼 만큼, 집단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이 부자유가 대화와 소통을 굳건히 가로막고 있다. 한미 FTA의 국회인준이 참으로 험난해 보인다.

문용린 서울대 교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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