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소환제도 소환사유 규정없어 정략적 악용 우려

청구인 자격 명문화 등 현실성 없는 법 조항 개정 시급 여론

여인국 과천시장이 보금자리 주택문제로 주민소환 논란에 휩싸이면서 지방자치제에 대한 주민 직접참여를 확대하고, 지방행정의 민주성과 책임성을 높이기 위해 제정된 주민소환제도가 현실성 없는 법 조항으로 인해 주민 갈등만 양산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면서 현실에 맞게 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여론이 일고 있다.

 

특히, 주민소환법에는 주민소환 사유를 규정하지 않아 지자체장의 소환이 정략적으로 이용될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주민소환에 관한 법률에는 주민소환에 대한 투표권 청구와 주민소환 투표 실시, 주민소환투표의 효력과 소송 등에 대한 규정은 있어도 소환의 사유에 대해선 아무런 규정이 없다.

 

미국의 경우, 주민소환의 사유를 법률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지자체장의 배임, 직권남용, 임무태만, 중죄의 자행, 공무상 불법행위, 공직선거위반 등으로 이 사유에 해당되어야만 주민소환이 가능하다.

 

투표결과 상관없이 업무정지·모든 경비 지자체 부담도 불합리

 

과천시장 경우 고소·고발 10여건 갈등 심화…소환 실효성 의문

 

그러나 우리나라는 청구취지와 사유에 대해 검증하고 검토하는 기관이 없기 때문에 허위사실 여부에 대한 판단없이 주민소환이 이뤄지고 있다.

 

또 주민소환 청구인의 자격에 대한 규정이 없어 자칫 정당과 정당, 지자체장과 개인간의 갈등으로 확대될 우려가 높으며, 특히 소환사유에 대한 제한을 두지 않아 무분별한 소환이 이뤄지는 것도 문제점으로 드러나고 있다.

 

이와 함께 투표결과와 상관없이 지자체장의 업무가 정지돼 행정공백의 기간이 발생할 뿐만 아니라 모든 경비를 지자체에서 부담해야 하기 때문에 수억원이 드는 비용문제도 보완돼야 할 문제점으로 꼽고 있다.

 

이러면서 과천보금자리주택 문제로 촉발된 과천시장에 대한 주민소환도 현재 찬·반 공방이 치열하다.

 

이번 주민소환은 과천시장의 개인적인 비리나 부정에 의한 것이 아니라 정부의 보금자리주택 정책에 반대해 소환이 이뤄졌기 때문이다.

 

과천시장 주민소환은 지난 5월 과천지식정보타운 부지가 보금자리주택지구로 지정되자, 인근 아파트 주민들이 아파트 가격이 하락한다는 이유로 보금자리주택지정을 취소해 달라는 민원에서 시작됐다.

 

이들 주민들은 과천지역에 영세민들이 입주하는 보금자리주택이 들어설 경우, 기존 아파트 가격 하락은 물론 재건축사업에도 악영향을 끼친다며 보금자리주택을 반대했으며, 과천청사 이전대책 소홀과 재건축문제 등 과천시장의 실정을 문제삼아 주민소환에 돌입한 것이다.

 

이러면서 주민투표율도 비현실적이라는 여론이 일고 있다. 현재까지 진행된 지자체장의 주민소환과 주민투표가 모두 불발로 끝났다. 지난달 치러진 서울시 무상급식 투표에서는 전체유권자 중 3분의 1에 못미친 25.7%만이 투표해 투표함을 개봉하지도 못했다.

 

또 지난 2007년과 2009년 화장장 유치와 해군기지 건설문제로 하남시장과 제주도지사에 대한 주민소환투표가 실시됐지만 투표율이 33.3%에 미달, 모두 무산된 바 있다.

 

이처럼 주민소환을 위한 주민투표율이 전체 유권자의 1/3로 규정해 주민소환이 현실적으로 어려운 실정이다.

 

과천시장 주민소환도 투표율 때문에 어려울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과천시장 주민소환은 전체 유권자 5만4천707명중 33.3%인 1만8천217명이 투표를 해야 하고, 투표자 중 과반수 이상이 찬성을 해야 주민소환이 이뤄진다.

 

그러나 과천시장 주민소환운동본부가 지난 7월부터 60여일 동안 과천시민을 대상으로 받은 서명자는 1만2천144명으로 전체 유권자 33.3%인 1만8천217명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주민소환 투표율이 저조한 관행을 감안하면 주민소환 성립이 어려울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특히, 주민소환은 주민간의 갈등과 마찰을 양산하는 문제점을 나타내고 있다.

 

과천시의 경우, 과천시장 주민소환본부와 주민비상대책위가 보금자리주택 반대 목소리를 높이며 과천시장을 소환하자, 보금자리주택 토지소유주들이 집단 반발하고 나서 민·민 갈등이 발생했다.

 

또 지난 5월부터 9월까지 4개월 동안 허위사실 유포와 공무원 개입문제, 편법서명운동 등으로 10여건에 가까운 고소, 고발건이 수사기관에 접수됐다.

 

특히, 주민소환운동본부의 수임권자가 주민서명을 받는 과정에서 주민들에게 폭행을 당해 서명운동이 중단되는 사태까지 발생하는 등 주민들의 갈등은 막장 드라마를 연상케할 정도다. 단순한 지자체장의 심판을 넘어서 적과의 전쟁을 치르고 있는 수준이다.

 

이처럼 주민소환 과정에서 여러가지 법률적인 문제가 드러나면서 현실성이 있게 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여론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정재훈 변호사(법무법인 소명)는 “헌법재판소는 주민소환법은 문제는 있지만 위헌이 아니라고 판시를 내렸다”며 “하지만 현행 주민소환법은 지자체장을 견제하는 수단보다는 정책적인 반대 수단이나 정략적으로 이용되는 소지가 많기 때문에 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과천=김형표기자 hpkim@ekgib.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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