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는 단지 숫자일뿐 ... 창작과 사랑은 아직 청춘

강기자의 문학동네 -시인 고은

“아이고. 강 기자 오랜만일세. 애기는 잘 크고? 내가 일정을 착각했네. 미안하지만 서울 가면서 얘기하면 좋겠는데 괜찮겠나. 차에서 하는 인터뷰는 나도 난생 처음이네.”(하하)

 

지난 9일 단국대 죽전캠퍼스에서 만난 고은(78·안성시 공도읍) 시인은 기자를 납치해 부랴부랴 서울 을지로로 향했다. 

 

차 안에서 1시간 30분 동안 진행된 인터뷰는 배가 고플 정도로 대화가 이어졌다. 

 

고은 시인이 작품활동 53년 만에 처음으로 사랑을 전면에 내세운 연시집 ‘상화시편:행성의 사랑’(창비 刊)을 발표했다. 시집 주인공인 상화. 시인의 부인 이상화 교수(64·중앙대 영문과)다. 민주화운동의 투사와 학자의 옷을 번갈아 입으며 우리 역사와 정서, 사회 문제를 넘나드는 방대한 작품 세계를 펼쳐온 시인에게 이번 시집은 확실한 외도(?)임은 분명하다.

 

팔순을 내다보는 어르신네가 무슨 사랑타령이냐고 물었다.

 

“책 나온 거 보고 의외래. 전혀 기획하지 않았던 시집이지. 작년에 연작시편 30권짜리‘만인보’를 완간하고 나서 내 머릿속에 있던 것을 정리하고 싶었어. 사랑이 갚아야 하는 것이라면 나는 아내한테 엄청 갚아야 해. 한마디로 빚쟁이지. 빚쟁이라 그런지 아직도 쓸 게 많아. 최소 한 권은 더 낼 예정이야.”

 

시인은 시작부터 거침없이 사랑을 이야기 한다. 그 연세에 그런 로맨스가 가능할까 싶었다.

 

“나는 태아였어. 상화라는 자궁 속의 태아였지. 이 사실은 내가 그 자궁 속에서 나와 이 누리의 갖가지 세파를 무릅쓰며 노쇠한 뒤에도 퇴화될 수 없는 태고의 기억에 잠겨 있을 원점의 태아인 것을 뜻해.”

시인이 이토록 부인을 그리워하는 이유는 ‘상화의 사랑 없이는, 상화와의 삶이 없이는 나는 두 가지가 불가능했을 것’이라는 고백에서 잘 드러나는데, 그 두 가지는 지금까지 시인의 삶과 문학적 결실이다. 곧 시인에게 부인은 절대적인 존재, 태아의 나를 태 밖에서 어루만지는 어머니와 같은 존재인 것이다.

 

시인의 아내자랑은 거의 수다 수준이었다.

 

“아내하고 다니면 다 좋아.(하하) 모든 장소가 다 잔치가 이뤄지는 장소 같아. 우리는 친해 아직도. 손잡고 다니는데. 우리는 우리에게 빠져 있으니깐. 1983년 결혼해서 30년 가까이 같이 사는 그 짧지 않은 일상의 사소한, 티끌 같은 시간들의 집적 자체가 감동이었지.”

 

시집에는 사랑에 행복해하고 애달파하고 깨달음을 얻는 고은 시인의 모습이 진솔하게 담겨 있다. 시인의 소소한 일상과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시인이 되기까지의 세월, 사유의 과정을 담은 시 118편을 담았다. 그의 시어는 때묻지 않았고, 늙지도 않았다. 팔순을 앞둔 어르신이 쓴 거라고 믿기기 않을 만큼 술술 읽힌다.

 

표지에 실린 그림 역시 시인이 직접 그린 그림. 몇 해 전 아내의 생일에 그린 그림이란다.

 

‘세상의 낮과 밤 배고프며 너를 사랑해야 겠다’, ‘너를 엉엉 사랑하리라 다짐한다’, ‘진실을 아늑자늑 가르쳐준 사람’, ‘아, 상화는 어디에 있나’, ‘나의 어머니인 아내’, ‘너는 내 어머니의 무한이다’, ‘그대 없는 나는 무이다’ 등 시인이 아내에게 보내는 사랑의 세레나데다.

 

이렇게 아내에게 푹 빠져 사는 시인에게 부부싸움이 성립될까 싶어 “그래도 간혹 싸우시죠?”물었더니.

“우린 둘다 싸우는 재능이 없어. 안 싸워. 싸울 것 같으면 어느 하나가 사라져버려. 내가 술이 코가 삐뚤어지게 먹고 들어와도 아내는 잔소리가 없어. 잔소리를 안 한다고 끝이 아니지. 언젠가는 꼭 들먹인단 말이야.(하하)”

 

술 좋아하기로 유명한 시인도 술 취해 집에 들어가면 아내 눈치를 본다는 거. 세상 남자 다 똑같다. 

이어 물었다. “선생님, 사랑이 뭡니까?”

“사랑은 지금이지. 사랑은 ‘하였다’도 ‘하리라’도 아니다. 언제나 사랑은 ‘한다’.”

 

팔순을 앞둔 시인은 아직도 청년이다. 아직도 해야 할 일이, 하고 싶은 일이 많아 쉬는 날 없이 365일, 24시간 풀가동이다.

 

“따로 날 정해서 쉬는 거 없어. 나는 일이 내 놀이야. 난 밥도 맛있고, 술도 맛있고, 일도 맛있어. 책 읽는 것도 놀이야. 즐거워. 나는 아직도 책을 보면 떨려.”

 

시인의 이런 근면함이 다작의 밑거름이 됐다. 그 증거가 바로 지난해 완간한 ‘만인보’ 30권이 아닐까.

 

1980년 육군교도소에 갇혀 구상을 시작해 만 30년 만에, 1986년 1권을 출간한 이래 25년 만에 대장정의 막을 내린 것. 경이롭다고밖에 할 수 없는 총 작품수 4001편. 세계 시단에서도 ‘오늘날의 문학에서 가장 비범한 기획’이라고 평가받은 ‘만인보’는 말 그대로 ‘시로 쓴 인물 백과사전’이다.

 

시인의 가장 절친이자 술친구인 백낙청 교수는 “‘만인보’는 이 자체로 충분히 경이로운 향연이니, 이제는 독자들이 자기 나름으로 즐길 일이 남았다. 대하소설 읽듯이 몇날 며칠 새워가며 내리닫이로 읽어낼 수도 있고, 공부삼아 꼼꼼히 읽을 수도 있다. 또 화장실 같은 데에 놓아두고 띄엄띄엄 읽어간다면 저자가 싫어할 텐가. 싫건 좋건 그런 독자가 있을 것이고 그도 또한 즐거울 것이다.”라고 말했다.

 

시인은 ‘만인보’ 완성 후 “막말로 말해 내가 이 세상에 와서 알게 된 사람들에 대한 노래의 집결로 제2의 고향인 안성에서 완성했다는 것”이라며 안성에 남다른 애정을 표현하기도 했다.

 

시인의 고향인 군산에서는 고은 시인의 문학적 가치와 위상을 새롭게 정립하기 위한 ‘만인의 물결 군산운동본부’가 7월 초 발족했다. 생가 복원, 문학관 건립 등의 사업을 추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그러나 정작 시인이 30년동안 살면서 창작활동에 전념해 온 안성시와 경기도는 무관심이다. 매년 가을, 노벨문학상 발표날만 시인이 사는 안성시 공도읍 대림동산이 떠들썩할뿐이다.

 

서운하지 않을까?

 

“서운하긴. 1983년 5월 5일 결혼 직후 고려대 이문영 교수가 소개해 안성에 정착했는데 안성 살기 좋아. 이사 계획도 없는데 뭘.”

 

시인은 말을 아꼈다. 

 

시인은 복잡한 서울 시내에 진입하자 옛날 이야기에 바빴다. 그러면서 9월 초 수원에서 강연이 있다며 꼭 오라 하신다. 연신 손을 흔들며 말이다.

 

고은 시인을 만났는데 어찌 노벨문학상 한마디 못 건네고 오냐 싶을텐데. 기자 맞아?

 

질문하지 않았다. 시인을 ‘광적인 노벨문학상 올가미’에 가두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듣기론 노벨재단은 수상 후보국의 주요 언론 보도까지 다 분석한다고 한다. 대중적으로 나서 행동하는 사람에게 우호적이지 않다고 하니 ‘시에 미쳐 사는’ 고은 시인을 조용히 응원하는 것이 최선일듯 했다.

 

노벨상이 뭔데. 올 가을만큼은 시인이 들려주는 삶과 사랑을 바라보는 광할한 시적 사유에 취해 보자.

정작 “왜 시를 쓰느냐”고 묻지 못했다. 서운해 그의 시집을 뒤지고 또 뒤졌다. 꼬박 3일 동안 말이다.

 

일찍이 1991년 시집 ‘해금강’을 내면서 고은은 ‘내가 죽고 나서 몇 년 뒤 누군가가 내 무덤을 파헤쳐본다면 거기에도 내 뼈 대신 내가 그 무덤의 어둠 속에서 쓴 시로 꽉 차 있을 것이다. 나에게는 내가 살지 않는 미래까지도 내 시의 현재이지 않으면 안 된다. 내가 너무 시에 집착하나? 하기야 시와의 결별 바로 옆에서 내 시는 실재하기 때문에 내 집착은 그것으로부터의 해탈에도 속한다.’ 라고 써 있었다.

 

글_강현숙기자 mom1209@ekgib.com

사진_하태황기자 hath@ekgib.com

<고은 프로필>

1933년 8월 1일 전북 군산시 미룡동 138번지에서 출생

본명 고은태(銀泰)

1952년 불교 승려가 됨. 법명 일초(一超). 12년 동안 수행

1958년 시 ‘폐결핵’으로 데뷔

1960년 첫 시집 ‘피안 감성’ 발표

1963~66년 제주도 금강고등공민학교 개교, 교장 겸 국어 미술 교사 재직

1974년 작가의 사회적·역사적 책무를 절감, ‘자유실천문인협의회’ 결성

            대학에 출강하기 시작한 이상화(李相華)와 만남

1980년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 연루 혐의로 투옥

1983년 5월 5일 이상화와 결혼. 풍운의 독거생활을 끝냄

2001년 세계한민족작가연합 회장

현재 ‘겨레말큰사전’ 남북공동편찬위원회 이사장

         서울대 초빙교수·단국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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