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성공스토리-김풍호 신명산업(주) 대표
봄바람과 햇살이 가득한 광주시 퇴촌면의 한 마을. 한갓진 시골길과 개울, 정겨운 풀과 나무속에서 묘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는 현대적인 건물이 눈 안에 들어온다. ‘나폴디자인센터’다.
고급목재인 부빙가 나무로 만들어진 원목테이블과 멋스러운 벽면 장식, 수십여개의 상패와 표창장, 임명장이 한쪽 벽을 장식한 사무실에서 만난 김풍호 신명산업㈜ 대표(52)는 새빨간 작업복을 입고 있었다.
첫인상은 소박함 그 자체였다. 그러나 호리호리한 외모에 일명 ‘바람머리’ 헤어스타일과 뿔테 안경테로 포인트를 준 그는 디자인 가구회사를 이끄는 ‘젊은 감각’을 자연스럽게 드러내고 있었다.
그는 종업원 300여명을 먹여 살리는 기업체를 이끌어 나가며 경기도중소기업CEO연합회장 등의 직책을 맡아 한층 분주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김 대표는 충남 서산 사람이다. 25년간 가구업종에서 한우물을 파게 된 가구와의 ‘인연’은 지난 1983년 취업을 위해 인천으로 올라오면서부터 시작된다. 당시 입사를 원하던 기업에 취업할 기회를 얻었지만, 문턱에서 건강문제로 좌절을 맛봐야 했던 그는 한 가구회사에 들어가 능력을 인정받으며 열심히 일했다.
그러나 직장생활은 오래가지 못했다. 상사로부터의 총애를 받아 주위의 시기와 질투 속에 소외감을 느낀데다 폐렴이 악화돼 결핵으로 이어지며 독한 약에 근무 중 각혈까지 발생했던 그는 더 이상 직장생활을 지속할 수 없다는 판단에 이른다.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면서 가정형편이 어려워 가장으로서의 책임을 다할 수밖에 없던 그는 주변의 도움을 얻어 회사를 차리기로 결심한다. 그 때가 그의 나이 스물 일곱이었다.
“지금 같으면 아마 시작도 하지 못했을 겁니다. 젊은 혈기에 남들이 사업 하는 걸 보면서 ‘사업이 뭐 별건가, 나라고 못할 건 뭔가’ 싶어 겁도 없이 뛰어들었죠.”
그는 이전 회사 사장의 도움으로 가구점을 운영하면서 가족들의 도움과 여기저기서 빌린 자금으로 건물을 임대하고 자재를 사서 당시 하남지역에서 진성산업이라는 회사로 ‘스매트’라는 브랜드를 출시한다. 양계장, 돈사와 나란히 건물을 나눠 쓰는 등 어려움 속에서 집주인에게 홀대를 받고 차마 눈물로도 설명하지 못할 시절을 보낸다.
“새벽에는 일하고 낮에는 물건을 팔고 밤이면 경리일까지 도맡아 했어요. 회사가 차분히 조금씩 성장하는 것을 보며 힘이 났죠. 혼수용 옥돌장으로 시작해 아동용 가구까지 품목에 변화를 주며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고 남이 만들지 않는 특별한 가구를 만들기 위해 밤낮 없이 발로 뛰었습니다.”
그러던 그에게도 ‘1997년 IMF사태’라는 거대한 위기가 다가왔다. 부도사태에 휩쓸려 수십 억원대 빚을 지게 된 그는 자살을 결심하고 두 번이나 한강을 찾았을 정도로 심한 좌절을 겪었다.
“나폴레옹이 ‘식량은 떨어졌지만 실탄은 남았으니 한 번 더 해보자’고 독려하는 장면이 머릿속에서 떠올라 발이 안 떨어졌어요. 한번만 더 해보고 안 되면 죽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를 계기로 김 대표는 신명나는 회사를 운영한다는 방침을 세우고 사명을 ‘신명산업’으로 바꾼다. 브랜드 이름은 나폴레옹의 이름을 따 ‘나폴(napol)’이라고 변경했다.
이후 남이 가는 길은 절대 가지 않는다는 원칙으로 친환경 핸드메이드 가구로 시장에서 수입업체들 속에서 선전하고 있다.
연간 매출목표를 세우지 않는 것은 그만의 독특한 방식이다. 소비자가 원하는 제품, 구매를 통해 만족을 얻을 수 있는 제품, 고객이 감동받을 수 있는 제품과 서비스를 만드는 것을 목표로 ‘앞·뒤 없는 가구’를 만들다 보면 매출은 자연적으로 따를 수 밖에 없다는 게 그의 철학이다.
그는 직원들이 믿고 일할 수 있는 회사를 만들고 지금보다 나은 미래를 만들 수 있다는 비전을 제시하기 위해 항상 고민하며, 한계를 넘어서 새로운 것을 찾기 위해 해외 출장도 자주 다니고 있다. 뿐만 아니라 사회적 활동에도 많은 관심과 시간을 할애하고 있다.
한국청년회의소 경기지부 기획실장 및 경기도장애인체육회 부회장 등을 역임하기도 했으며, 현재 경기도중소기업CEO연합회장을 맡아 활발한 네트워크를 형성, 중소기업의 발전에도 헌신하고 있다.
또 지역사회에 기여하기 위해 광주에 외국인다문화교육센터를 설립, 10여 년 전부터 다문화가정의 자녀들에게 언어교육을 실시하며 매주 교육에 참여하고 있다.
혹자는 기업은 몇 년을 지속하느냐에 성공이 달려있다고 한다. 그 만큼 우리나라에서 중소기업을 경영하기가 어렵다는 뜻이다.
수차례의 어려움 속에서도 한 분야에서 25년간 한 기업을 지속하는 ‘성공’을 일궈낸 김 대표는 그 원동력을 가난에서 찾는다.
“공무원이셨던 할아버지와 군장교로 근무하신 아버지, 금전적으로 넉넉지 못한 형편 속에서 ‘살아야 한다’는 절박함이 있었어요. 제가 열심히 일하게 한 원동력이 됐죠. 그리고 열심히 일해 번 돈을 나 아닌 다른 사람을 위해서도 써야 한다는 생각을 갖게 했어요. ”
돈을 벌어 혼자 호의호식하지 않겠다는 다짐은 오늘의 그를 있게 했다.
지금도 그는 꿈을 꾼다. 김 대표는 “새로운 아이템을 개발해 수출 시장을 확대하고 돈을 벌어 아픈 사람들이 마음껏 치료받을 수 있는 병원을 만들고 싶다”며 “시작은 있지만 끝은 없는게 바로 사업이고 꿈”이라며 밝게 웃었다.
글 이지현기자 jhlee@ekgib.com
사진 전형민기자 hmjeon@ekgib.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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