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제역 전쟁’ 116일의 사투… “가축 유전자원 지키기 방심은 없다”

장원경 국립축산과학원장

지난 겨울이 유난히 추웠던 사람들이 있다. 대대적으로 발생한 구제역에 막대한 피해를 입은 축산농가와 구제역을 빨리 종식시키기 위해 개인적인 생활까지 포기한 관련 공무원들이 바로 그들이다.

 

구제역은 경기도를 비롯한 전국 11개 시·도에서 150건이 발생, 347만9천여마리의 가축을 살처분하는 엄청난 기록과 피해를 남기고 지난 24일 위기 경보단계가 ‘심각’에서 ‘경계’로 낮춰졌다.

 

지난해 11월 말 경북 안동에서 처음 발생한 지 116일 만에 드디어 ‘종식’된 것이다. 이에 장원경 국립축산과학원장을 만나 구제역과 종식 이후 축산정책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 구제역, 그 혹독했던 겨울

 

장원경 국립축산과학원장은 구제역이 한창 확산되던 지난 1월7일 부임했다.

 

그는 “악성 전염병이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상황에서 누군가 해결을 위해 나서야 한다는 것을 하나의 운명으로 받아들였다”며 “심각성을 깨닫는 와중에 원장으로 발령이 났기 때문에 개인적인 능력에 대한 부분을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장 원장은 “누구나 마찬가지겠지만 선뜻 마음먹기가 쉽지 않았다”며 “피하고 싶을 정도로 책임이 막중한 자리이지만 국가 공무원의 기본자세로 누군가는 해야 했다”고 말했다.

 

특히 “개인적인 안위만 생각했다면 중간에 취소하거나 빠져나가거나 고사할 수도 있었지만 봉사와 희생의 마음에 자리를 나섰다”고 설명했다.

 

실상 지난해에만 세차례나 구제역이 발생, 앞의 두건은 큰 피해 없이 마무리됐지만 11월 안동에서 시작된 구제역은 전국을 휩쓸었다. 그만큼 심각한 상황이었다.

 

그는 임명장을 받자마자 정문 앞 컨테이너 박스에서 근무를 시작했다. 두달 간 사무실에서 잠도 자고 근무도 하는 등 생활이 분리되지 않아 주야의 리듬이 바뀌면서 사무와 일상의 감각을 잃어버린 축산원 직원들의 고충은 엄청났다.

 

새로운 아침을 맞아 출근을 하는 재미도 없이 자고 일어난 자리에서 이불을 개고 앉아 업무를 봐야 하는 생활이 지속되자 감각에 문제가 생겼을 뿐만 아니라 피부병을 호소하는 직원들도 많았다.

 

방이 없어 사무실에서 스티로폼을 깔고 맨바닥에서 자는 것은 물론 식사와 화장실 청소까지 모든 일을 당번을 정해 스스로 해결해야 했다고 한다.

 

직원들의 가족들도 고통이 심했다.

 

한번은 초등학생인 어린 자녀가 엄마를 보러 왔는데도 접촉이 금지돼 손도 한번 못잡는 상황에서 맛있는것 사먹으라고 5천원짜리를 넣어주고 가는 사례도 있어 직원들 모두 눈시울을 붉혔다.

 

이렇게 고통스러운 시간이 길어지자 장 원장은 직접 집으로 서신을 보냈다.

 

그는 “하루이틀도 아니고 오래 있어야 하는데 집에서는 궁금하기도 하고 건강도 걱정이 됐을 것”이라며 “그럼에도 갈등 한번 없이 잘 지내준 직원과 가족들에게 미안함과 고마움을 동시에 느낀다”고 전했다.

 

국내에서 유일한 축산관련 국립기관으로서의 자부심과 책임감이 이들의 수고와 희생을 가능하게 했다.

한번 소실되면 영원히 복구가 불가능한 유전자원을 관리하고 한우, 돼지, 토종닭 등 육질이 좋은 품종을 인공수정센터 통해 보급하기 위한 자원이 많아 이를 지켜내기 위한 막대한 임무에 총력을 쏟은 것이다.

 

특히 수원에는 바이오 신약과 장기를 생산하기 위한 동물들이 있어 가치로 환산할 수 없는 자원을 구제역으로 잃을까 두려움이 앞서기도 했다.

 

장 원장은 “다행스럽게도 직원들의 일심단결로 사고 없이 유전자원 보존한 것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그러나 성환에 위치한 축산자원개발부(자개부)에서 발생한 구제역에 대해서는 아직도 의문을 가지고 있다.

 

역설적이게도 자개부에서 부장으로 근무하던 당시에도 한 번도 들어가 볼 수 없을 정도로 가장 철저하게 분리돼 있던 곳에서 발생했기 때문에 “어떻게 뚫린건지 도저히 이해를 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492만㎡의 넓은 단지에서 사이트별로 접근이 안될 뿐만 아니라 구제역 당시 완벽하게 차단했는데 일이 발생했다”며 “방역분야에서 최고라고 생각했던 곳들이 이번 구제역 발생지에 상당수 포함된 것은 충격이었다”고 강조했다.

 

다른 곳도 아닌 철저한 방역으로 이름 높던 자개부 2단지에서 발생한 것이어서 “솔직히 앞이 안 보일 정도로 답답한 심경”이었지만 기관장으로서 원인을 찾아내고 해결에 초점을 맞추기 위해 노력했다고 당시 심정을 밝혔다.

 

이에 그는 대내외 전문가 모여 원인을 찾아내고 국가적 차원에서 방역 프로그램을 다시 만들 계획을 밝혔다.

 

■ 우리나라 축산 연구와 정책의 방향

장원경 원장은 “국립축산과학원은 국가기관으로서 크게 두 가지 역할을 수행하는 목적을 두고 있다”고 설명한다.

 

즉 현재 당면한 문제와 미래를 준비하는 문제가 바로 그것이다.

 

우선 당면 문제로는 수요자가 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파악하고 이에 맞는 연구와 정책을 추진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농민과 소비자, 중간자가 각자 요구하는 것들을 모두 해결하기 위해 단순히 계란이나 돼지고기, 소고기 등을 생산하는 것을 넘어 이제는 테이블에서의 안전성 부분까지 책임져야 한다는 것.

 

장 원장은 “품질이 좋은 생산물을 만들 수 있는 가축 육종, 개량 시스템, 가축이 새끼를 잘 낳도록 하는 문제, 품질문제, 안전성 문제, 사료가격 폭등으로 인한 조사료 생산 등 당면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기관”이라고 소개했다.

 

여기에 오메가3를 함유한 축산물 등 다양한 기능성 물질 포함된 식품 생산하면서 소비자가 원하는 상품을 만들어 내는 것도 중요하다고 한다.

 

이와 함께 미래를 준비하기 위해서는 바이오신약·장기에 대한 연구를 수행할 계획이다.

 

그는 “가축을 이용해 사람에게 이식할 수 있는 장기와 신약을 만드는 일은 고부가가치 산업으로서 우리가 앞으로 나갈 방향”이라며 “이런 분야에서 축산분야와 국립축산원이 차지하는 역할이 크다”고 자부심을 내비쳤다.

 

또 이상기후 역시 축산 분야의 새로운 연구 과제로 떠오르고 있으며, 메탄을 저감하거나 탄소를 줄이는 문제, 기온 상승에 따른 축산 적지대 변화 등 미래를 대비한 연구까지 축산연구원의 역할이 주목된다.

 

특히 그는 “축산이 농업의 반을 책임져야 하기 때문에 임무가 크다”고 말한다. 순수 축산물 생산액이 농업의 33.8%를 차지하고 있으며 앞으로 더욱 확대될 것으로 기대를 모으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또 “농업 전체가 양에서 질로 빠르게 이동할 것”이라고 예상하면서 “이에 맞는 연구 방향을 설정해 소비자가 원하는 질 좋은 생산물 만들기에 주력하겠다”고 말했다.

대담 이용성 경제부장 leeys@ekgib.com  

정리 이지현 기자 jhlee@ekgib.com

사진 전형민 기자 hmjeon@ekgib.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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