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언호 한길사 대표
35년간 출판사 ‘한길사’를 이끌며 출판 외길을 걸어온 김언호 대표의 사무실은 도서관을 연상케 한다.
부모님의 사진이 쌓인 책 위에 놓인 공간과 창을 제외하곤 사방이 책이다. 1975년 신문사에서 해직되고 이듬해 출판사를 차리고부터 그가 책 생각을 하지 않은 순간이 있었을까 싶을 정도다.
그는 출판 통제가 심하던 권위주의 정부 시절부터 한길사를 운영하며 ‘우상고 이성’, ‘해방전후사의 인식’, ‘민족경제론’ 등 내는 책마다 ‘판금’되는 상황을 겪었다.
출판뿐만 아니라 한길역사강좌, 한길역사기행을 비롯한 역사·사회과학강좌와 토론회 등을 이끌어낸 출판문화운동가로 왕성한 활동을 벌였다. 그 긴 세월 지칠 법도 한데 인터뷰 직전까지도 출판 기획 회의가 한창이다.
최근에는 파주출판도시를 동아시아 출판문화와 인문운동의 허브로 만들자는 기획을 맡아 더 바쁜 모습이다. 활자와 인문학, 출판계 위기설이 제기되는 가운데 인문학 서적 출간 대표 출판사인 김 대표로부터 위기 진단과 극복 방안 등을 들어봤다.
-75년 동아일보 해직기자로 알고 있다. 우리나라 대표 출판사를 이끌고 있지만 학창시절부터 기자를 꿈꿨던 만큼 아쉬움이 있을 것 같다.
▶물론 아쉽다. 하지만 출판일도 기자 활동과 크게 다른 것 같지 않다. 유독 언론에 대해 관심이 많은 관심을 갖는 것으로 그 아쉬움을 달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작은 신문인 지역지가 더 재미있지 않나.
사실 불만도 많은데 언론이 기본적으로 공공성과 사회도덕성이 있는 것에 대해서는 관심을 갖고 자기의 세계를 계속 확장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것 같다.
예를 들어 파주출판도시는 출판기업이 있는 상업적인 곳이지만 근본적으로는 문화와 교육이 이뤄지는 공공의 공간이다. 중앙지든 경기도권 지역지들이 관심을 가져야 하는 곳인데 기존의 자기 취재 영역만 편하게 움직이고 무시한다.
경기일보가 추구하는 공공적 역할과 연관지어 파주출판도시를 비롯해 작은 문화 현화적 현상을 존중하며 깊이있게 조명해야 한다.
- 파주출판도시와 헤이리마을 조성에 이사장과 입주기업협의회장을 역임하면서 적극적으로 활동했다. 이런 공간을 구상한 이유는 무엇인가.
▶1994년에 영국의 책마을 ‘헤이온와이’를 다녀와서다. 1961년 옥스퍼드대 리처드 부스가 헌챙방을 내면서 조성된 마을인데 우리나라에도 이런 공간이 필요하다가 느꼈다.
한국에 돌아와서 토지공사에 ‘땅 팔아 돈버는 시대는 갔으니 문화적인 것을 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그렇게 통일동산의 한 지점을 책마을로 꾸미기로 결정했는데 아무도 나서질 않다보니 내가 10년 이상 하게 됐다.
- 헤이리는 예술가들의 내부 갈등도 있고 당초 취지와 좀 다른 느낌으로 쇠락한 분위기다. 예상했던 문화예술 공간이 가능하겠는가.
▶헤이리는 지금 160개 세대가 있고 100세대가 더 들어올 예정이다. 개인이 모여 이런 마을을 만든 것은 전 세계 어디에도 없다. 외국인들이 와서 다 보고 신기해한다.
물론 당초 마을 조성 취지와 다르게 약속을 지키지 않는 사람도 있고 내부 갈등도 있지만, 갈등이야 한국의 공통적 현상아닌가.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는 말이 있지만, 반대로 양화가 악화를 구축할 수도 있다.
내부적으로 좋은 뜻을 가진 개인들이 모여 많은 고민을 하고 있고 실제로 괜찮은 프로그램이나 전시도 이뤄진다.
문화 프로그램을 만들고 진행할 수 있도록 지원해주고, 언론도 헤이리에서 열리는 좋은 전시나 프로그램에 관심을 갖고 크게 보도해서 알려야 한다. 기사를 보고 찾아온 사람들이 예술품을 구경하면서 실제 작품 구매도 이뤄지는 분위기가 조성돼야 한다.
- 출판도시는 책이 만들어지는 공간으로 기업들만 있어서인지 폐쇄적인 분위기다. 이 공간에 대한 활성화 방안은 있나.
▶헤이리처럼 출판도시 또한 세계적으로 그 유례를 찾을 수 없는 공간이다. 한국 사람들이 참 독특한 것이 갈등을 겪고 불가능한 것도 다 이뤄낸다는 것이다.
현재 이 도시에는 출판사 150여개와 인쇄소 50여개가 있는데 책의 유토피아를 만들자는 도약의 움직임이 본격화되고 있다. 올해 10월쯤 파주북엑스포를 개최하고 책방 100여개가 있는 거리를 만드는 등 ‘책을 위한 해방구’를 구상하고 있다. 책을 만들고 사람들이 읽는 풍경이 출판도시의 미래가 될 것이다.
최근까지 도시 건설에 주력했다면 지금부터는 콘텐츠나 소프트웨어를 채우는 작업을 시작하는 것이다. 현재 파주시도 적극적으로 지원해서 지방도시의 새로운 문화 도시 모델을 만들겠다고 한다.
특히 출판도시는 북한과의 경계에 위치했다는 점에서 더 큰 의미가 있다. 헤이리나 출판도시가 평화운동과 깊은 연관을 맺고 언젠가 남북 화해의 중심이 될 수 있다고 본다.
-파주북엑스포는 처음 듣는데 어떻게 진행할 계획인가.
▶파주출판도시를 아시아의 출판 허브 북시티로 이끄는 축제다. 현재 중국과 일본의 네트워크가 구축돼 있고 동아시아는 한자국이기 때문에 이 나라들 중 앞서간다는 목표로 추진하는 것이다.
한국사회를 문화적으로 변화시키는 운동의 출발점으로 보고 ‘아시아 출판 문화상’도 제정할 계획이다. 이런 기회에 중국, 일본, 대만, 홍콩 등의 출판사들이 어깨동무하고 동아시아의 가치를 찾아내고 독서대학을 운영하는 등 한국의 출판은 물론 함께 성장하는 방법을 모색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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