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보훈처 ‘이달의 독립운동가’ 정암 이종훈 선생

광주시 실촌읍 유사리 출신으로 민족대표 33인 중의 한 명이었던 정암(正菴) 이종훈(李鍾勳) 선생이 국가보훈처의 ‘이달의 독립운동가’로 선정됐다.

 

정암 선생은 1855년(철종 6년) 광주이씨 십운과공파의 후손으로 출생, 25세 때 동학에 입교해 1894년(고종 31년) 동학혁명에 참여했다.

 

1898년 6월 천도교 2대 교조 최시형(崔時亨)이 서울 감옥에서 교수형을 당하자, 옥리를 매수해 시체를 빼내어 광주에서 장례를 치른 일화는 유명하다.

 

1902년에는 손병희(孫秉熙)와 함께 일본으로 망명, 권동진(權東鎭)·오세창(吳世昌) 등을 만나 구국의 방도를 논의하는 등 일제 강점기 조국의 광복을 위해 노력했다.

 

정암 선생은 1919년 3.1 운동 당시 민족대표 33명의 1명으로 참여했으며 당시 60대로 민족대표 중 최고령자였다.

 

2년간의 옥고를 치른 정안 선생은 1922년 7월 천도교 중심의 고려혁명위원회의 고문으로 추대돼 항일운동을 계속했으며 만주로 옮겨갔다가 그곳에서 운명을 달리했다.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됐다.

 

앞서 을사조약(1905년, 일본이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박탈한 조약) 때는 장남이자 손병희의 맏사위인 이관영이 이완용에 대한 테러를 기도했으며, 이후 의병에 참가 일본군과 교전 중 전사하는 등 가족 전체가 항일투쟁을 벌였다.

 

광주=허찬회기자 hurch@ekgib.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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