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가 있는 여행 - 중국의 세계문화유산을 가다
중국(中國), 중원대륙을 핏빛으로 물들인 영웅들의 이야기가 숨 쉬는 곳이자 천하를 제 손에 쥐락펴락 하던 ‘중화사상’의 근원지.
그러나 현재는 가짜 계란 파문 등으로 ‘중국산’ 자체가 ‘불량품’, ‘가짜’라는 오명을 벗기 위해 15억 인구가 매일같이 치열한 열기를 내뿜는 그 곳을 향해 가는 길은 40도가 오르내리는 폭염이 아니어도 충분히 뜨거웠다.
중국의 심장부인 남부내륙 ‘하남성’을 밟은 것은 지난 7월30일. 수원지역 민간학술단체로 올해 발족 10년을 맞은 (사)화성연구회(이사장 김동훈)가 6박7일간의 일정으로 진행한 ‘2010해외성곽비교답사’에 동행하게 됐다.
답사에 참여한 일행은 김동훈 이사장을 비롯 연구회 회원들과 가족 등 50명에 달했다. 초등 2년생부터 78세 고령자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모이다 보니 한 몸처럼 ‘이동’하는 것이 제일 큰 문제였다.
하지만 중국무역의 일인자로 정평이 나 있는 최태용 (사)경기도평택항소무역연합회장의 진두지휘로 일행은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며 일정을 소화할 수 있었다.
◇천암함 사태로 긴박해진 ‘韓·中’ 관계 실감
평택항을 출발해 꼬박 24시간 동안 물살을 갈라 배는 중국의 ‘핵’이라 불리는 중원(中原) 내륙에 닻을 내렸다. 버스편으로 갈아타기 위해 검역대를 지나치자 최근 천안함 사태 등으로 악화된 한·중관계 때문인지 한층 삼엄해진 중국 공무원들의 눈총이 일행의 뒤통수에 꽂혔다.
늦은 밤 여정을 풀고 8월1일 오전 7시, 중국의 대표적 문화브랜드로 자리를 잡은 ‘소림사’(少林寺)가 위치한 덩펑시(登封市) 쑹산(嵩山)을 향해 다섯 시간을 내달렸다.
여행의 노곤함도 잠시, 중국 제1의 선종사찰이자 소림사 역대 고승들의 사리탑 200여구가 성(城)처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세계문화유산 ‘탑림’(塔林)을 만날 수 있다는 기대에 뒤틀린 허리를 펴며 사찰내로 들어섰다.
매년 150만명이 관람한다는 소림사 무술공연은 1천명은 족히 돼 보이는 관광객들을 찜통같은 열기를 담은 공연장에 몰아넣고 1970년대 시장통에서나 볼 수 있었던 ‘차력쇼’를 선보였다.
연구회 일행들은 쇼 관람 후 입을 모아 “수원 화성행궁에서 매주 토요일에 펼쳐지는 정조대왕의 친위부대였던 무예24기 시연이 훨씬 박진감 넘친다”며 혀를 내둘렀다.
◇신(神)들의 통로, ‘용문’서 대국의 스케일 느껴
이날 오후 온통 기름으로 볶아낸 느끼한 점심을 먹고 일행은 3시간 여를 달려 삼국지의 주요무대이자 예술과 학문의 도시인 낙양(洛陽)에 여정을 풀었다.
그리고 이튿날인 8월2일 남쪽으로 14여km를 달려 ‘신(神)의 문’이라 불리는 ‘용문’의 ‘석굴’로 향했다. 이곳을 찾은 목적은 실크로드를 따라 건너 온 불교미술의 최종 종착점이자 국보인 ‘석굴암’의 전신을 보기 위한 것.
중국인들의 대담한 스케일을 가늠케하듯 서산(西山)과 동산(東山)으로 갈라져 이들을 연결하는 다리와 그 밑을 유유히 흐르는 이하강(江)의 모습이 마치 거대한 게이트(門)를 연상케한다.
그러나 돈황의 막고굴, 대동의 운강석굴과 함께 중국 3대 불교예술보물 중 하나로 유명한 이 곳은 도굴꾼에 의해 훼손된 얼굴없는 부처상들만 덩그러니 남아 관광객들을 맞았다. 그나마 보존이 온전한 것은 중국 유일의 여황제인 측천무후를 모델로 삼아 조각했다는 비로자나불(盧舍那佛)이 있는 ‘봉선사’(奉先寺). 높이 10m가 넘는 아홉 불상 중 높이 17m, 머리 4m, 귀가 1.9m의 대불은 은은하고 자애로운 미소를 짓고 대중들을 굽어봐 관람객들의 끝없는 탄성을 불러일으켰다.
◇중국의 그랜드캐년, ‘운대산’의 비경에 절로 감탄
이번 여정서 감명받은 장소를 꼽으라면, 8월3일 오후에 찾은 ‘운대산’이 제일이다. ‘미국에 그랜드캐년이 있다면, 중국엔 운대산이 있다’는 말이 전할 정도로 트레킹 최고의 코스로 꼽히는 운대산은 총 면적 55㎢의 방대한 부지에 깍아지른 봉우리가 36개에 달한다.
입장료뿐 아니라 산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여권번호가 찍힌 카드며 관람객의 지문까지 일일이 기록해야만 입장을 허락하는 이 곳은, 넓은 부지때문에 깍아지른듯 늘어서 있는 협곡인 ‘홍석협’ 초입까지 버스로 이동한다.
낙차 314m로 중국에서 제일 높은 폭포인 운대천폭이 있는 천폭협(泉瀑峽)은 천혜의 비경을 자랑하는 문화유산으로서, 거대한 낙폭에 빠져들고만 싶은 유혹을 참기 힘들 정도. 전 세계인뿐 아니라 중국인들조차도 생전에 한 번 찾기 힘들다는 운대산의 운무(雲霧)속에 신선들의 노랫소리가 들려오는 듯 했다.
‘3m 깊이의 땅을 파면 당나라 유물이, 5m를 파면 한나라 유물이, 9m를 파면 진나라 유물이 나온다’는 중국대륙은 그야말로 문화유산의 천국이다.
방대한 유산을 후손에게 물려주기 위해 찜통더위에도 에어컨 하나 없이 전기로 충전하는 오토바이를 타고 다닌다는 중국인들의 문화사랑이 무서울 정도. 곁에 두고도 방치하거나 경제논리에 의해 매몰돼 버린 후손들의 보물, 우리의 ‘문화유산’을 돌아보고 자성해야겠다는 생각이 절실한 여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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