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방온도 제한에 '쪄 죽는 고객들'

개별냉방하는 소규모 점포는 규제방법 없어

이번 주부터 서비스업종 영업장의 냉방온도가 26도 이상으로 강제 제한되면서 개별점포주나 고객들이 무더운 실내온도 탓에 곤욕을 치르고 있다.

 

여기에 자체적으로 26도 이하로 냉방온도를 맞추는 점포를 막을 방법도 사실상 없어, 제도보완이 필요한 실정이다.

 

◈ '찜질방에서 식사하는 기분이랍니다'

27일 오후 서울 삼성동 코엑스 내의 한 한식점. 뜨거운 음식이 많은 한식의 특성 때문인지 손님들은 연신 손으로 부채질을 해가며 식사를 하고 있었다.

 

측정결과 이 곳의 온도는 섭씨 28도. 지식경제부가 제시한 냉방기준인 26도보다 2도나 높았다.

 

음식점 주인 A씨는 "'왜 이렇게 더우냐'는 고객들의 불만이 많다"면서 "손님들이 '찜질방에서 밥을 먹는 것 같다'고 말씀하신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A씨는 이어 "지금 선풍기가 몇 개 달려있는지 보라"면서 "원래 에어컨 있는 곳에서는 선풍기를 달지 않는 게 원칙인데, 정부가 좀 사정을 고려해서 온도를 조절해줬으면 좋겠다"고 하소연했다.

 

◈ '돌아다니면 좀 시원해야 하는데…' 고객도 불만

정부가 이번 주부터 본격적으로 대형 영업장의 실내온도를 26도로 규제하면서 이용고객들과 입점 점포주들의 불만이 고개를 들고 있다.

 

올해 냉방온도 제한을 받는 매장에서는 부채를 들고 다니며 더위를 참아내는 고객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냉방온도 제한이 없던 과거에는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낯선 장면이다.

 

코엑스 푸드코트에서 만난 B(23)씨와 B씨의 여자친구는 밥을 먹으면서도 연신 들고 있는 부채를 흔들며 더위와 싸우고 있었다.

 

B씨는 "영화를 보러 왔는데, 돌아다니면 좀 시원해야 하는데도 옛날보다 더 더워진 것 같다"면서 "작년에는 이런 느낌이 아니었는데 유난히 올해는 실내가 덥다"고 말했다.

 

B씨 일행이 있던 푸드코트의 실내 온도는 27.3도에 달했으며, 코엑스에서도 특히 사람이 많이 몰리는 지점의 온도는 28도에 육박할 정도였다.

 

인근 롯데월드의 한 매장에서 만난 C(30)씨는 "사실 가만히 있으면 덥지는 않은데, 매장을 항상 돌아다녀야 하니 당연히 더울 수밖에 없다"면서 "실내 피서는 옛말"이라고 겸연쩍어했다.

 

역시 냉방온도 제한을 받는 백화점도 사정은 마찬가지여서 매장을 찾는 고객들은 뜻밖에 더운 실내온도에 크게 당황하는 모습이다.

 

삼성동 현대백화점에서 만난 D(26)씨는 "냉방온도 제한이 있는 줄 아직 몰랐다"면서 "못 참을 정도로 더운건 아니지만 백화점이라면 그래도 시원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되물었다.

 

코엑스 홍보실 관계자는 "한 여름에 고객들이 피서를 위해 오시는 분들이 많은데, 실내 온도를 접한 뒤에 '왜 이렇게 더우냐'고 말씀하시는 분들의 불만이 (하루에) 10여 건 정도 된다"고 말했다.

 

◈ '내 돈내고 냉방하련다' 점포까지 등장

이 때문에 건물 중앙냉방을 무시하고 자체적으로 냉방을 실시하는 점포까지 나올 정도다.

 

이날 코엑스 메가박스 영화관의 실내온도는 27.2도였지만, 바로 옆에 붙어 있는 T 커피숍의 실내온도는 23.4도에 불과했다. 중앙냉방 대신 자체적으로 에어컨을 가동했기 때문이다.

 

이날 자체적으로 에어컨을 켜 놓고 영업하던 코엑스의 한 음식점의 실내온도는 24.8도로 역시 권장온도보다 낮았지만, 음식점 주인 E씨는 작심한 듯 불만을 쏟아냈다.

 

E씨는 "덥다는 손님들이 '어디 시원한 곳 없느냐'고 계속 찾는다"면서 "'왜 이렇게 더우냐'는 손님들이 하도 많아서 좀 전에 에어컨을 틀었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는 돌솥밥에다 뜨거운 된장찌개를 내놓으니 당연히 더 더울 수밖에 없다"면서 "우리 사정도 좀 봐주면서 온도를 낮췄으면 한다"고 털어놨다.

 

코엑스 관계자는 "음식점 가운데 뜨거운 주방을 '오픈'한 곳에서 특히 불만이 많이 들어온다"면서 "중앙 냉방이다보니 불만이 들어온 곳의 온도를 낮추면 근처 점포의 온도가 오히려 내려가기 때문에 난감하다"고 말했다.

 

◈ '냉방온도 나몰라라' 점포, 규제도 불가능

문제는 정부의 방침을 무시하고 소규모 입점 업체들이 자체 냉방을 강행해도 이를 제제할 뾰족한 수단이 없다는 점이다.

 

냉방온도를 지키지 않을 경우, 처음에는 건물주에 경고가 내려지고 다시 한 번 어겼을 경우 최대 300만 원의 과태료가 부과되며 과태료를 내는 주체도 개별 점포주가 아닌 건물주가 된다.

 

그런데 실내온도를 점검하는 방식은 한 건물에서 45차례 온도를 측정해 평균온도가 26도를 넘었는 지 여부만을 따지기 때문에 개별 점포들의 냉방이 전체 평균온도에 영향을 주는 경우는 거의 없다.

 

게다가 이번 냉방제한은 에너지소비량이 연간 2천 TOE(석유환산톤) 이상의 대형건물에만 적용되는데, 개별 점포들이 아무리 온도를 낮춰도 개별 점포의 에너지소비량이 2천 TOE를 절대 넘을 수 없으므로 과태료 부과 대상조차 되지 않는다.

 

이 때문에 건물주가 아무리 계도활동을 펼치고 구두로 주의를 줘도 고객들이 떨어지는 것을 우려한 소규모 입점 점포들은 '나몰라라'식으로 자체 냉방을 강행하는 것이다.

 

지경부 관계자는 "소규모 점포들이 자체 냉방을 하더라도 현실적으로 규제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면서 "앞으로 법제도를 정비해 개별 냉방을 실시하는 점포도 권장 온도를 지킬 수 있도록 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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