뜬금없는 회초리 왜? 김수철 사건, 경찰의 미스터리 대응

강희락 경찰청장, 범인 검거 공 세운 영등포경찰서 질책 배경은?

지난 9일 오후 서울 영등포경찰서를 강희락 경찰청장이 불시 방문했다.

 

강 청장은 이 자리에서 이날 아침 도하 언론이 주요 기사로 취급한 "초등학생 납치 성폭행사건에 대해 경찰서장에게 화를 냈다"고 이 경찰서 관계자가 CBS 기자에게 귀띔했다.

 

경찰청은 부인했지만 강 청장은 이번 사건이 비공개 사건이었는데 보도된 경위에 대해 질책한 것으로 전해졌다.

 

"사후 조치를 잘했다. 다만 예방 조치가 좀 더 잘됐어야 하는데, 아쉽다"는 등 사건 전반에 대한 지적도 있었지만 언론보도 경위 역시 강청장의 주요 관심사였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경찰이 질책을 받기에는 이번 사건 자체에 대한 경찰의 대응은 신속했다.

 

사건 발생 7시간 만에 용의자인 김수철을 검거했다. 김수철은 당시 막 사건 현장을 뜨려 했고 검거 당시에는 흉기를 휘두르며 격렬히 저항했다.

 

때문에 조현오 서울경찰청장은 14일 "검거한 경찰관이 몸을 아끼지 않고 잘 대처해 줬다"고 치하했다.

 

흉악범을 조기에 검거한 이번 사건은 경찰로서는 '보도자료'까지 내고 대대적으로 알려도 될 만한 사안이다.

 

그런데도 강희락 청장은 질책했다.

 

왜 그랬을까?

 

사건의 발단은 영등포경찰서 형사과장의 입에서 비롯됐다.

 

사고가 발생한지 하루만인 지난 8일 영등포경찰서 형사과장은 이번 사건을 취재하던 기자들에게 전화해 보도를 하지 말아달라고 요청했다.

 

보도를 통해 사건이 알려지면 피해자인 8살 된 소녀가 2차 피해를 보게 돼 피해자 부모가 보도를 원치 않기 때문이라고 했다.

 

만약 보도를 하게 되면 피해자 부모가 사후에 소송을 제기하겠다고 말했다며 엄포를 놓기도 했다.

 

그래서 다수의 언론이 그의 요청을 받아들여 보도를 하지 않았거나 보도를 내보낸 뒤 해당 기사를 삭제하기도 했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형사과장의 언급은 거짓이었다.

 

피해자 부모가 보도를 하지 말아달라고 먼저 요청하지도, 보도가 될 경우 언론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겠다는 이야기도 하지 않았다.

 

피해자 부모의 이야기는 모두 형사과장 자신의 생각이었던 것이다

 

물론 피해자 부모로서는 형사과장이 우려한대로 사건이 공개되는 걸 원치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그런 부모의 마음을 팔아서 언론사들의 입을 막으려 한 경찰관의 행위는 국민의 목소리를 대표하는 언론사를 기만한 행위다.

 

그 경찰관이 선의에서 보도 자체를 요청했을 것이라고 믿고도 싶지만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으로 우리 사회의 병폐를 그냥 덮으려 했다는 것에서는 지극히 위험스런 행위로 보인다.

 

경찰서 주요 업무에 대한 판단은 상급 기관인 지방경찰청에 맡기는 경찰 조직의 관행과도 벗어난 일이다.

 

경찰 관계자는 "형사과장의 의도가 아무리 선의에서 비롯됐다 하더라도 보도 자제를 요청하는 행위는 그가 할 일이 아니었다"고 잘라 말했다.

 

이 같은 경찰간부의 일탈에 대해 서울지방경찰청 고위 관계자는 김길태 사건과 연관 지었다.

 

그는 14일 "김길태 사건 때문에 경찰이 비난받고 욕먹었으니까 이 번사건도 자칫하면 그런 식으로 보도될까 싶어서 자꾸 감추려고 했던 게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보도자제에 윗선의 지시가 있었지 않았겠냐는 의문이 함께 제기되는 대목이다.

 

이 때문에 서울지방경찰청은 영등포경찰서에서 왜 거짓보고를 했는지와 함께 혹시 (언론보도 건과 관련된) 윗선의 지시가 있었는지 여부에 대해 감찰조사를 벌이고 있다.

 

윗선의 지시 없이 영등포경찰서 형사과장의 과잉 충성에서 비롯됐을 것이라는 관측도 제기된다.

 

사실 이번 사안은 경찰이 잘한 부분도 있지만 잘 못한 부분도 있다.

 

김길태 사건을 통해 경찰이 재발 방지를 다짐하고도 3달을 못 넘기고 비슷한 사건이 터졌기 때문에 경찰의 동종 범죄 예방 부분에 대한 비난을 피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경찰청도 다음날 곧바로 90년 이전에 복역한 성범죄들을 특별 관리하겠다는 대책을 제시한 것만 봐도, 또 경찰청장이 곧바로 현장을 방문한 것만 봐도 이번 사안을 얼마나 중시하는지 엿볼 수 있다.

 

이렇게 이번 사건에 대한 경찰 내부의 미심쩍은 행태를 놓고 일각에서는 강희락 청장의 임기와 결부지어 해석하기도 한다.

 

최근 경찰청 안팎에서는 경찰 수뇌부에 대한 인사가 7월 말이나 8월초 쯤 있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심심찮게 나오고 있다.

 

7.28 재보궐 선거에서 다시 여당이 참패하면 청와대로서는 더 이상의 개각을 미룰 수 없고, 그렇게 되면 차장급인 경찰청장의 교체도 자연스럽게 되지 않겠냐는 것이다.

 

특히 최근 이명박 대통령이 검·경 개혁을 주문한 상황에서 김수철 사건 같은 경찰발(發) 또 다른 악재는 곧 임명권자에 대한 실망으로 되돌아 올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요는 경찰 수뇌부 인사를 앞두고 경찰 내부적으로 불미스런 사건이 외부로 새는 것을 막기 위해 무리수를 두지 않았냐는 해석이다.

 

경찰의 한 관계자는 "이번 김수철 사건에 대한 경찰 대응의 미스터리는 앞으로 경찰 수뇌부의 동향을 관찰하면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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