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지사 후보 스토리>기호 7번 진보신당 심상정 그는 누구인가…
‘심상정은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답하기는 그리 쉽지 않다. 그만큼 그는 매우 상반된 이미지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대중에게 알려진 심 후보는 항상 당당하며 똑 부러지고 소신과 강단이 있는 정치인이다. 많은 사람들은 그를 운동권의 맹장, 단호한 목소리로 고위 관료들을 꼼짝 못 하게 하는 국정감사의 스타로 기억한다.
반면에 심 후보를 가까이에서 접해본 사람들은 그를 따뜻하고 감수성 풍부하며 수수한 ‘편안한 이웃집 아줌마’라고 이야기한다. 그는 멜로영화에 가슴 설레하고 소주보다는 커피를 좋아하며 아들이 초등학교 때 쓴 크리스마스카드를 아직도 소중히 간직하고 있다. 이렇게 강인한 전사의 면모와 더불어 여린 소녀의 감수성이 절묘하게 공존하고 있는 모습에 대해 혹자는 ‘싸우는 소녀’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교사를 꿈꾸던 아이
심 후보는 1959년 파주 광탄의 작은 시골마을에서 2남2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유난히 하얀 얼굴에 단발머리를 한 깜찍한 아이였지만, 아들을 최고로 생각하는 집안 분위기에서 매사에 오빠들에게 지지 않으려고 기를 쓰는 ‘악바리’이기도 했다.
돼지를 키우고 개구리를 잡으러 다니던 시골소녀는 초등학교 4학년 때 가족과 함께 서울로 이사를 하게 된다.
하지만 교직에서 물러나 사업을 시작한 아버지가 연달아 사업에 실패하고, 형편이 어려워지자 교육에 대한 부모님의 투자는 더욱 아들 위주가 됐다.
심 후보는 형제들이 다 자는 한밤중이나 새벽에 혼자 일어나 이불 속에서 손전등을 비춰가며 ‘혼자 알아서’ 공부를 했고 상위권을 놓치지 않았다.
명지여고 재학시절에는 공부 뿐 아니라 학생기자, 영어회화클럽 등 다양한 외부활동으로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어갔다.
학교대표로 ‘여고생 퀴즈’라는 방송프로그램에 출연해 집안의 화젯거리가 되기도 했다.
그 시절 심 후보의 꿈은 역사선생님이었고 꿈을 이루기 위해 1979년 서울대학교 역사교육과에 입학하게 된다.
지금도 심 후보는 “아이들한테 선생님 소리 듣는 것이 가슴 설레도록 좋았다”며 “다시 태어나도 교육자가 되려 할 것”이라고 말한다.
하이힐 신은 운동권
심 후보의 대학생활은 여느 신입생과 다름없이 평범하게 출발했다.
예쁜 옷을 입고 멋진 연애를 하면서 좋아하는 책을 마음껏 읽으며 철마다 여행을 떠나는 낭만적인 대학생활을 꿈꿨던 심 후보.
하지만 운명의 장난이었을까. 그토록 바라던 연애를 하기 위해 마음에 드는 남학생을 골라 졸졸 따라다니다 보면 그들은 매번 영락없는 운동권이었다고 한다.
심 후보는 자연스럽게 운동권에 뛰어들게 됐지만 초기에는 7㎝ 하이힐이 아니면 신지 않을 정도로 멋내기를 포기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하이힐에 블라우스, 스커트 차림으로 시위를 하던 그를 발견한 학생처장이 ‘운동권답지 않은’ 옷차림새를 보고 “자네는 운동권 애인이라도 뒀느냐”며 의아해했다는 일화도 있다.
25년의 노동운동 외길인생
대학교 2학년 겨울방학 ‘공활’을 하기 위해 구로공단의 한 봉제공장에 취직한 심 후보는 노동현장의 열악함에 충격을 받고 노동자들과 함께하기로 결심한다.
세번째 직장이었던 대우어패럴에서 해고된 상태에서도 맹렬한 노동운동을 펼치던 중, 1985년 6월 구로동맹파업의 주동자로 지목돼 전국에 지명수배된다.
김문수·유시민 후보와의 인연도 이 시기에 시작됐다.
특히 김 후보는 심 후보가 경찰을 피해 담벼락을 타고 기와지붕을 넘어다닐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심 후보의 행방을 묻는 경찰 앞에 고문을 당하면서도 끝까지 입을 열지 않았다.
심 후보는 “이들의 고통이 내 노동 운동의 삶 저 깊은 곳에 천근의 무게로 차곡차곡 쌓여 갔다”고 회상한다.
심 후보는 이후 9년간의 수배 생활 중에서도 서울노동운동연합 중앙위원장, 전국노동조합협의회 쟁의국장, 전국금속노조 사무처장 등 25년의 노동운동 외길을 걸으며 조직적 리더십과 합리성을 겸비한 ‘철의 여인’으로 단련됐다.
화려한 의정활동
심 후보는 긴 노동운동 생활을 접고 지난 2004년 진보정당의 비례대표 1번으로 17대 국회에 입성한다.
이 시기에 그는 ‘성실하고 유능한 정치인’, ‘공부하는 정치인’이라는 이미지를 강하게 심으며 맹활약을 펼쳤다.
2004년 국정감사에서는 정부가 파생상품 시장을 통한 외환 개입으로 1조8천억원대의 대규모 손실을 초래했음을 밝혀내 이헌재 경제부총리가 이를 공식 시인, ‘백기항복’하는 사건도 있었다.
이와 함께 심 후보는 삼성의 변칙증여와 편법상속, 노동 탄압 등을 비판하며 3년 동안 삼성 이건희 회장을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채택하려 해 ‘삼성 저격수’로 불렸으며 참여정부 시절 한미FTA의 문제점을 논리적으로 지적해 ‘한미FTA 킬러’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이에 ‘국정감사 NGO모니터단 3년 연속 국정감사 우수의원’, ‘여야 의원이 뽑은 2004년 최고 국회의원’, ‘국회 선정 2006년 입법 정책개발 최우수의원’ 등에 잇따라 선정되며 누구나 인정하는 17대 최고의 의정활동 의원으로 이름을 날렸다.
극복과제
심 후보가 가장 많이 듣는 이야기는 ‘사람은 똑똑한데 진보신당 갖고 이길 수가 있겠어?’라는 우려다.
운동권 알레르기나 진보 콤플렉스를 갖고 있는 일부 사람들을 제외한다면 심 후보는 어떤 정치인보다 특별한 거부감 없이 신뢰를 주는 인물이다.
다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인물로는 심상정을 찍고 싶어도 거대 정당을 이길 수 있을까라는 갈등 때문에 막상 투표 때는 다른 선택을 한다.
이 때문에 그는 17대 국회의원 임기에서 가장 성실하게 의정활동을 했다며 국민적 지지를 받았음에도 18대 총선에서 낙선을 했다.
따라서 실질적인 표를 얻기 위해서는 소수정당의 한계를 뛰어넘어야 하는 것, ‘원칙적이고 전문적인 정치인’보다는 ‘대중과 호흡하는 리더’로 각인돼야 한다는 것이 그의 가장 큰 과제라 할 수 있다.
가부장적 가정의 막내딸, 농촌 출신, 언더그라운드의 노동운동가, 소수 진보정당의 정치인…….
심 후보를 설명하는 단어들은 이처럼 대부분이 ‘비주류’적이다.
하지만 심 후보는 말한다. 비주류의 소외감이 자신을 키운 원동력이 됐다고, 우리 사회가 건강하게 발전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비주류의 전복이라고 말이다.
그리고 그는 이제 주류와 비주류의 벽이 다른 어디보다도 경기도에서 무너지기를 꿈꾸며 도민들의 선택을 기다리고 있다. /구예리기자 yell@ekgib.com
■ 든든한 지원군 ‘가족’
“영원한 멘토 친정어머니, 남편의 성실한 뒷바라지, 오늘날의 나를 만들어…”
만일 심상정 후보의 인생에 가족의 이해와 희생이 없었더라면?
심 후보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오늘날의 나도 없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심 후보는 당시로는 늦은 나이인 서른넷에 결혼을 했다.
결혼이 늦어졌던 것은 노동운동가의 삶과 결혼 생활을 접목시킬 용기를 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런 심 후보에게 남편은 ‘일생일대의 행운’ 같은 사람이라 할 수 있다.
서노련 활동 당시 김문수 후보의 소개로 만난 남편 이승배씨는 서울대 동양사학과 출신으로 학내 시위로 무기정학을 당한 뒤 노동운동을 하고 있었다.
그 당시 심 후보는 남편이 아저씨 같은 인상에 너무 점잖고 무덤덤해 연애하는 재미를 느끼지 못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별했을 때야 심 후보는 그의 빈자리를 절실히 느꼈고, ‘이 사람이야말로 내가 노동운동을 포기하지 않아도 될 유일한 파트너구나’라고 생각했다.
결혼 후 남편은 ‘노동운동만큼은 나보다 당신이 더 적임자’라며 노동운동을 접고 생업 전선에 나섰다.
며칠씩 집을 비워도 불평 한마디 하지 않고 국회의원에 당선된 이후에도 성실한 뒷바라지를 통해 의정활동에 전념할 수 있게 해줬다.
아들 우균이는 심 후보에게 항상 애틋하고 가슴 아픈 존재다.
노동운동에 눈코 뜰 새 없던 엄마 탓에 태어나면서부터 외할머니에게 맡겨져 초등학교 2학년까지 거의 떨어져 지냈다.
초등학교 4학년 때는 넉넉지 않은 집안살림에 생일파티를 열어주겠다는 엄마의 제안을 한사코 거절할 정도로 착하고 조숙했다.
훌쩍 커 고등학교 2학년이 된 아들은 누구보다 엄마를 걱정하고 또 자랑스러워하는 든든한 지원군이다.
심 후보는 친정어머니를 ‘영원한 멘토’라고 소개한다.
어머니는 심 후보가 지명 수배로 4년쯤 식구를 만나지 못했을 때도 ‘엄마에겐 무소식이 희소식이다. 절대 나타나지 말고 꼭꼭 숨어 있어라’라는 편지를 보낼 정도로 강인한 모습을 보였다.
심 후보가 수배됐을 때 가슴앓이를 하다 심장병을 얻고 외손주를 도맡아 키워주며 몸고생, 마음고생을 한 어머니에게 심 후보의 국회의원 당선은 크나큰 효도였다.
당시 어머니는 “가슴의 응어리가 풀리는 것 같다”며 활짝 웃었다고 한다.
시어머니도 아들보다 며느리를 먼저 챙기고, 자식들은 물론 사위, 손주까지 정당에 가입하도록 권유한 열혈 후원자다. /구예리기자 yell@ekgib.com
프로필
▲1959년 파주시 광탄면 출생
▲명지여고·서울대 역사교육과 졸업
▲1980년 구로공단 위장취업을 계기로 노동운동 시작
▲1985년 서울노동운동연합 중앙위원장
▲2001년 전국금속노조 사무처장
▲제17대 국회의원
▲2008년 진보신당 상임공동대표
▲현)사단법인 마을학교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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