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창피 당한 사연

지난 8월에 3주간 미국을 방문할 좋은 기회가 있었다.

미국 국무부가 주관하는 ‘국제 방문자 리더십 프로그램’(IVLP·Internationl Visiter Leadership Program)에 초청을 받아 워싱턴 DC, 뉴욕, 미니애폴리스·세인트폴, 시애틀 등지를 다녀왔다.

미국은 세계 각국의 미래 지도자들을 대상으로 미국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함께 친밀감을 형성하고 국가 이미지를 높이기 위해 매년 4천여명을 초청, 국제 방문자 리더십 프로그램을 실시하고 있다. 물론 모든 경비는 미 국무부에서 부담한다.

이번 프로그램의 주제는 ‘여성과 정치적 리더십 쌓기’(Women & Political Leadership Building). 6명의 여성들이 초청을 받아 국무부, 법무부, 노동부 여성국, 유엔 여성지위원회, 대학의 여성연구소, 여성단체 등 ‘여성과 정치’ 관련 기관·단체를 수십여곳 방문했다.

방문기관 여러 곳에서 미국 정치를 얘기하면서 미국인들은 한국정치에 대해 많은 궁금증을 나타냈다.

그중에서도 한미FTA 비준안 통과와 미디어법 처리과정에서의 국회 폭력 사태를 언급하며 민주주의 국가에서 있을 수 있는 일인지 의아스러워 했다. 일행은 “더 발전된 민주주의로 나아가는 과정 아니겠냐”며 궁색한 변명을 했지만 ‘해외 언론을 장식한 토픽’에 낯이 뜨거워지는 것을 어쩌진 못했다.

대한민국의 ‘지성’을 대표하는 국회의원들의 폭력사태는 아직도 우리 정치가 후진성을 면치 못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국회에서의 폭력은 지극히 비정상적이며 국민에 대한 심각한 모독이다. 대립과 투쟁을 일삼는 정치, 정치인에 대한 국민의 불신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정치인들의 폭력은 정당 간에 조직적으로 이뤄지기도 하지만 개인들의 폭행과 폭언, 저질스런 행태 또한 꼴불견이다. 이는 개개인의 품성과 자질 문제이기도 하지만 모든 행동이 자유로울 수 없는 정치인들이기에 더욱 구설을 타기 마련이다.

실제로 경기도의회에서는 최근 몇달간 의원들의 폭행 사건이 지역정가 및 언론의 화제가 됐다.

지난 5월 안산에선 A도의원이 행사장에서 대낮에 만취해 동장의 얼굴에 술을 끼얹고 의자로 폭행한 사례가 있었다. 이어 7월에는 예결특위 소속 B도의원이 역시 만취상태에서 예산심의를 하다 욕설을 퍼붓는 추태를 보였다. 또 지난 8월 김대중 전 대통령 국장 기간에 C도의원이 연천에서 호프집 여주인에게 주먹을 휘두른 사건도 있었다.

이들 도의원의 몰지각한 행태는 전체 도의원의 명예를 실추시키고 경기도의회 이미지에 먹칠을 했다.

그런데 문제는 국회나 지방의회가 폭력의원에 대해 관대하다는 것이다. 현 제도는 의원들이 징계받을 만한 행위를 하면 경고, 사과, 출석정지, 제명 등의 징계를 할 수 있다. 징계 절차는 윤리특별위원회의 심사를 거쳐 본회의에서 의결을 하는데 윤리위 위원 자체가 의원들로 구성돼 있어 엄정한 징계가 어렵다는 것이다.

이에 징계의 실효성을 위해서는 당적이 없는 외부인들로 징계위원회를 구성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다. 상당수 국민 사이에는 ‘폭력 의원 퇴출’(징역형)이 가장 효과적이라는 지적도 있다.

국회의원이나 지방의원들이 갖춰야 할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윤리성과 도덕성이 꼽힌다.

의원들 스스로의 자정노력이 우선돼야 하겠지만 그것이 안 된다면 부적격자는 더 이상 민의의 전당에 발을 붙이지 못하도록 제도적 뒷받침이 마련돼야 한다. 또한 자질과 품격을 갖춘 반듯한 일꾼, 옥석을 가릴 수 있는 국민들의 혜안도 필요하다.  /이연섭 편집부국장·정치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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