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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의 날’을 맞는 苦言
오피니언 임양은칼럼

‘스승의 날’을 맞는 苦言

초·중·고등학교가 5천개소면 교원 수는 얼마나 될까, 교장이야 5천명이겠지만 교원은 학교당 줄잡아 30명이어도 모두 15만명이다. 이만한 교원을 학생 성적 부진을 들어 집단 해고하면 한국에선 야단 법석이 아니라 난리가 날 것이다.

그러나 미국에선 끄떡없다. 오바마 행정부의 이런 결정을 당연한 걸로 받아 들인다. 성적 부진학교의 교장, 교원의 무더기 추방은 곧 폐교다. 일단 폐교한 뒤 학생들을 위한 학교 문을 다시 연다는 것이 오바마의 결연한 계획이다. 미국이 세계적인 초강대국으로 버틸 수 있는 것은 지식산업 각계의 고른 발달과 함께 분포된 인재들이 국가사회의 저력으로 떠받치고 있기 때문이다. 오바마가 성적이 나쁜 학교를 폐교하는 결단은 이런 아메리카 합중국의 미래를 위한 것이다.

미국만도 아니다. 영국도, 프랑스도, 이웃 일본도 성적 부진 학교에 대한 조치가 강경하다. 재정 지원을 중단하기도 하고, 교장, 교원을 해임하거나 부분적인 폐교도 더러는 불사한다. 선진국들마다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학업 성적 향상을 위한 긴장이 대단하다.

이에 비해 한국은 유별나게 한가롭다. 학업 성적을 말하면 학생을 기계로 만든다고 하고, 학업 평가를 말하면 서열화를 부추긴다고들 한다. 전인교육을 말한다. 맞다. 교육의 지표다. 하지만 공부를 게을리해도 되는 전인교육은 없다. 정서 배양도, 인격 도야도 공부를 해야 가능하다.

‘스승의 날’이 내일이다. 스승은 제2의 어버이다. 스승의 교권은 부모의 친권과 같다. 마땅히 존중돼야 한다. 그리고 은혜를 기리는 것이 ‘스승의 날’이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여기서 선생님들에게 허울 좋은 단소리를 들려 드리긴 싫다. 그보단 오히려 쓴소리를 하고 싶다. 학생들을 위해 무슨 노력을 과연 얼마나 했는지 묻고자 한다. 물론 이에 상응한 선생님들에겐 죄송한 말이지만, 대체로 이런 의문을 지우기가 어려운 게 현실이다.

스승과 선생님, 제자와 학생은 같은 말이다. 같은 말이지만 분명한 것은 정서의 차이점이다. 차이점은 일체감 유무의 구분이다. ‘선생님은 있어도 스승은 없고, 학생은 있어도 제자는 없다’는 건 진부한 말로, 진부하도록 전부터 있어온 개탄의 소리다. 이의 원인이 뭔가, ‘스승이 없인 제자도 없다’는 말로 표현된다. 제자를 둘 수 있는 것은 스승되는 이의 자질에 달렸다. 먼저 스승이 돼야 제자가 나온다. ‘스승의 날’을 앞두고 과연 스승이 얼마나 되는가를 생각해보는 것이다.

사교육이 갈수록 기승을 부리는 덴 선생님들의 책임이 많다. 공교육의 질이 사교육에 비해 낮은데서 기인하기 때문이다. 학원 강사는 치열한 경쟁속에서 강의실에 선다. 같은 강사라도 실력이 모자라면 언제 도태될지 모르므로 학습 연구를 부단히 지속한다. 그러나 선생님들은 무경쟁속에서 지낸다. 안일하다. 학습 연구는 고사하고 교과 단원을 짜는 것도 해마다 같은 날짜의 것을 베끼는 복사판이기가 일쑤다.

일부의 교원들이 학생들에 대한 공부를 게을리하는 것은 자신이 공부를 게을리하기 때문이다. 일부의 교원들이 성적 평가를 거부하는 것은 자신에 대한 지도 평가를 거부하고자 하기 때문이다. 고교 평준화는 교원들의 무책임 평준화로 전락되고, 이는 학업 성적의 하향평준화를 유발했다.

만약 오바마식 공식의 교육정책을 우리에게 대입한다면 폐교될 학교가 얼마가 되고, 해고당할 교장, 교원이 얼마나 될 것인가를 상상해 본다. 예삿 일이 아니다. 지금의 공교육이 우리 아이들을 이렇게 가르쳐서 앞으로의 사회가 잘 되고 나라의 장래에 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고는 믿기 어렵다. 시대적 유물의 편견을 버려야 된다. 오바마 또한 진보주의자다. 가진 사람보단 없이 사는 사람들을 위한 배려를 더 많이 하는 미국의 좌파지만 생각이 다르다.

교육의 이념화는 사회와 나라의 미래를 해친다. 교직의 본분에 충실하지 못하는 나태함을 이념화로 합리화하려고 드는 일부의 교원들은 ‘스승의 날’이 과연 자신의 날인지를 돌아보는 깊은 반성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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