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 "세계가 경제 위기로 어두운 시기를 보내고 있지만 이 영화제를 통해 세계 곳곳에 웃는 얼굴과 마음의 평화가 널리 퍼져 나가길 기원합니다. 나흘동안 실컷 웃어봅시다."
예술 영화의 독무대이던 국제 영화제에서 코미디 영화가 이렇게 호강을 누려본 적이 있었던가? 코미디 영화로 특화된 국제 영화제인 제1회 오키나와 국제영화제가 지난 19일 개막해 나흘간의 일정으로 일본 남단 오키나와(沖繩)현의 아메리칸 빌리지에서 열렸다.
영화제의 슬로건은 '웃음과 평화'(Laugh & Peace). 부실행위원장(한국의 부집행위원장)인 에노모토 요시노리씨가 개막식에서 말한 대로 '실컷 웃어보자'가 영화제의 콘셉트인 셈이다.
콘셉트 그대로 상영작은 대부분 코미디 영화로 가득 차 있다.
짐 캐리 주연의 '예스맨'과 코엔 형제의 '번 애프터 리딩', 일본 영화 '크로우즈 제로2' 등 코미디 영화들이 상영작 목록에 대거 포진했으며 찰리 채프린의 '황금광시대'나 청룽(成龍)의 '취권' 등 코미디의 고전들도 선보였다.
한국 영화로는 2007년 개봉했던 김수미ㆍ임채무 주연의 '못말리는 결혼'(감독 김성욱, 제작 컬처캡 미디어)이 유일하게 초청돼 경쟁부문에서 상영됐다.
코미디와 웃음을 전면에 내세운 만큼 영화제는 분위기에서부터 다른 점잖은 영화제들과 전혀 다르다.
'수호천사'라는 제목의 일본 영화에 출연한 한 뚱뚱한 남자 배우는 영화의 콘셉트대로 천사의 날개를 양 어깨에 달고 레드카펫에 등장해 웃음과 함께 박수를 이끌어냈으며 개막식 사회자들은 서로 칭찬도 하고 구박도 해가며 만담(漫談)을 펼쳤다.
인기 코미디언들이 출연하는 만담 토크쇼가 부대 행사로 열려 흥을 돋웠으며 코미디언들이 직접 연출한 무성영화들이 일본 국내외 영화팬들을 만나기도 했다.
격식을 벗어던지고 나니 관객과 스타들 사이의 관계는 한층 좁아졌다. 스타들이 익살스러운 몸짓과 표정을 지으며 팬들과 안수를 나누고 사진을 찍는 드문 풍경도 이곳에서는 흔한 일로 보였다.
마음을 열고 잔뜩 웃을 준비가 돼 있는 관객들은 영화제의 또다른 무기다.
스타들을 보려고 레드카펫 주변에 몰려든 팬들도, 극장에 입장하기 위해 길게 줄을 선 관객들도 얼굴에는 웃음이 사라지질 않았다.
영화팬인 오시로 사유리(22ㆍ여)씨는 "코미디 영화의 팬인데 코미디 영화들이 대거 상영된다는 소식을 듣고 영화제에 왔다"며 "실컷 웃으면서 스트레스를 날려버리고 싶다"고 말했다.
오키나와 영화제처럼 코미디를 전면에 내세운 영화제는 세계적으로 전례를 찾기 힘들다. 여성이나 환경, 노동, 동성애 등 주제의 측면에서 특화된 영화제는 많지만 장르로 세부화된 경우는 판타스틱 영화제 정도가 있을 뿐이다.
이 같은 독특한 콘셉트의 영화제가 탄생한 배경에는 바로 영화제를 주최하는 일본 최대 예능 매니지먼트사 '요시모토 흥업'(吉本興業)이 있다.
요시모토 흥업은 일본 TV의 예능 프로그램을 독점하다시피 할 정도로 영향력이 큰 회사다. 소속 연예인들의 수만 해도 800명에 이르며 연습생만 1천명이 넘을 정도다. 연간 2천700여편의 TV 프로그램을 만들고 있으며 최근 들어서는 영화 제작 사업에도 본격적으로 뛰어들고 있다.
이 회사의 관계자는 "사람들에게 웃음과 행복을 준다는 회사의 목표에 맞게 영화제를 기획한 것"이라며 "전에 없던 새로운 형태의 영화제이지만 장기적으로 세계적인 영화제로 성장시킬 목표를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첫해 행사를 열며 이제 막 돛을 올렸지만 영화제는 곳곳에서 개선해야 할 과제들을 안고 있다.
상영작들의 수준을 업그레이드시키는 것이 필수적이며 여기에 '웃음'이라는 작은 주제를 '평화'라는 거대한 담론으로 어떻게 끌어올려야 하는지도 고민해야 할 문제다.
프레스센터에서 만난 한 일본 기자는 "영화를 보며 실컷 웃는 관객들의 모습을 보니 영화제가 어느 정도의 성과는 거둔 것으로 보인다"며 "하지만 홍보를 강화해 일본 국내외에서 낮은 인지도를 높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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