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서 실천 않는 다큐 영화는 죽어있는 거죠"
(서울=연합뉴스) 19일 개봉하는 독립 다큐멘터리 '할매꽃'은 이념간 갈등, 전쟁, 남북 분단 등 한국 현대사를 외할머니를 비롯한 가족들의 이야기로 풀어낸 영화다.
외할머니, 작은 외할아버지 등 전남의 한 시골 마을에서 외가 식구들의 행적을 뒤좇는 이야기는 지극히 개인적인 가족사이지만 동시에 피로 얼룩진 역사에 관한 기록이다.
이 다큐 영화를 찍은 문정현 감독은 카메라를 처음 잡을 때만 해도 이런 가족사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다고 했다. 어머니로부터 외할머니와 효행에 관한 다큐를 찍어보는 것이 어떠냐는 제안을 받았지만 별 관심이 없었다. 그러다가 작은 외할아버지의 일기를 보고, 외가의 좌익운동사에 대해 알게 됐다.
"충격이었죠. 내 가족 얘기지만 우리 근현대사를 살펴보는 다큐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국가의 폭력, 그로 인한 아픔을 가진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를 해보고 싶었어요."
문 감독이 외가가 있는 마을에서 마주친 것은 해방과 전쟁, 독재정권을 거치면서 좌ㆍ우익으로 나뉘어 끊임없이 이웃의 피로 손을 적신 사람들과 여전히 수렁에서 벗어나지 못한 후손들의 슬픈 모습이었다.
가족의 상처는 생각보다 깊었고 다큐가 대상에 어느 정도 접근할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도 컸던 문 감독은 중간에 몇 차례나 촬영을 '엎으려고' 했다.
"가족 다큐가 시작은 쉽습니다. 낯선 대상을 찍을 때 가까워지는 데만 1∼2년이 걸리지만, 가족은 이미 친하니까 바로 찍을 수 있죠. 하지만, 하다 보니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게 힘들더군요. 가족의 슬픔을 이미 내 아픔으로 받아들였으니까요. 좋은 가족 다큐멘터리를 만들기란 어렵구나, 알게 됐죠."
촬영이 한창일 때, 문 감독은 가족사 자체보다는 현재까지 이어지는 비극적인 역사에 좀 더 집중하려 했다. 제목도 빨치산을 가리키는 '밤손님'이었다. 그러나 역사의 수렁에 빠진 가족들을 돌보면서도 남들에게 베푸는 법을 잊지 않았던 외할머니의 별세를 계기로 그는 다시 역사에서 멀지 않은 집으로 되돌아왔다. 영화는 외할머니를 중심으로 외가의 이야기로 확장해 나가는 '할매꽃'이 됐다.
"외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가장 힘들었어요. 그분께 바치려고 한 영화니까요. 영화를 완성하고 외할머니의 1주기 추도식 때 가족들에게 가편집본을 보여 드렸어요. 별다른 말씀은 없으셨어요. 어머니가 '고생했다'고만 하시더군요."
그가 '할매꽃'을 통해 관객에게 보여주려 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답은 문 감독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거실에 나란히 앉아 사회 갖가지 현안에 대한 전혀 다른 생각들을 이야기하는 장면에 들어 있다.
"사람들은 생각이 다르다는 거죠. 한이불 덮고 자는 부부가 이렇게 생각이 다를 수도 있다는 겁니다. 또 부모님과 나, 셋만 봐도 이념의 스펙트럼이 굉장히 다르거든요. 그런데 생각이 다르다는 것 때문에 사람이 죽기도 합니다. 과거뿐 아니라 용산 참사를 보면 현재도 계속되고 있어요."
그의 차기작은 시민사회운동에 관한 다큐멘터리다. 서울YMCA의 여성회원 참정권 문제를 중심으로 현재의 한국 시민사회 운동을 성찰하는 영화다. 그는 다큐멘터리는 과거만이 아닌 현재의 기록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독립 다큐멘터리는 과거에만 제한돼서는 안 되고 현재의 이야기를 해야 합니다. 현장에서 실천하지 않는 다큐멘터리 영화란 죽어 있는 것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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