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삶'에 손들어준 베를린영화제>

(서울=연합뉴스) 베를린 국제영화제가 가혹한 사회에 내던져진 여성의 삶을 다룬 영화들의 손을 들어줬다.

5~15일 열린 제59회 베를린 영화제는 페루 영화 '슬픈 모유(The Milk of Sorrow)'에 최우수 작품상인 금곰상을 안겼고, 심사위원대상은 아르헨티나 아드리안 비니츠 감독의 '거인(Gigante)'과 독일 감독 마렌 아데의 '다른 모든 사람들(Everyone Else)'에 나눠줬다.

지역적으로는 예술영화의 본산지인 유럽에서는 주요 부문에 수상작을 많이 내지 못했고 최근 몇 년간 세계 영화계에서 두드러졌던 남미 등 제3세계 영화의 강세가 다시 한번 확인됐다.

◇사회영화ㆍ여성영화 강세 = 영국 여배우 틸다 스윈턴을 수장으로 한 7인의 심사위원단은 사회가 개인의 삶에 미치는 영향을 살펴본 영화들을 선택해 사회ㆍ정치영화에 대한 베를린 영화제의 기호를 다시 한번 확인시켰다.

동시에 심사위원단은 '여성'에 관심을 쏟았다. 전쟁, 성폭력, 납치 등 가혹한 사회 현실 속에 내던져진 여성의 상처를 다룬 영화들이 수상 목록에 이름을 올렸다.

금곰상 수상작인 '슬픈 모유'는 임신 중 강간이나 학대를 당한 여성의 모유를 통해 아이에게 전염되는 괴질환에 관한 이야기를 통해 페루에 게릴라 전쟁과 테러, 정치 폭력이 난무하던 1980~1990년대 20년간 강간으로 고통받은 페루 여성들을 조명했다.

클라우디아 요사 감독의 두 번째 장편인 이 영화에서 여주인공 파우스타(마갈리 솔리에 분)는 '슬픈 모유'라는 질병으로 고통을 받다가 어머니가 사망한 후 삼촌이 살고 있는 리마로 떠나면서 공포에서 탈출해 자유를 얻게 된다.

'슬픈 모유'는 금곰상을 놓고 경쟁한 18편 가운데 언론의 주목을 많이 받지는 못했지만 작품성이 뛰어나 수상 후보 중 하나로 점쳐졌다. '슬픈 모유'는 페루 영화로서는 사상 처음으로 베를린 영화제 주 경쟁부문에 올라 수상까지 한 동시에 남미 영화의 현재를 보여줬다.

"이 상은 나의 조국, 페루를 위한 것"이라는 로사 감독의 소감은 지난해 금곰상을 받은 브라질 '엘리트 스쿼드'의 조제 파딜라 감독이 "이 상은 브라질 영화가 받는 것"이라고 말한 소감과 일맥상통한다.

이란의 아스가르 파르하디 감독에게 감독상을 안긴 '엘리에 관하여(About Elly)'는 친구들과 주말에 해변으로 소풍 갔다가 실종된 여성에 관한 이야기로, 전통적ㆍ사회적 가치가 혼란스럽게 뒤섞인 이슬람 사회에서의 남녀 관계를 살펴보는 영화다.

심사위원대상을 받은 아드리안 비니츠 감독의 '거인'은 슈퍼마켓에서 일하는 경비원이 한 여성에게 강한 집착을 보이며 따라다니는 이야기이며, 독일 여성감독 마렌 아데의 '다른 모든 사람들' 역시 지중해로 휴가를 떠난 여주인공이 관계에서 오는 갈등과 위기를 맞는다는 내용이다.

◇언론 주목 못받은 조용한 진행 = 스타들을 적극 초청해 떠들썩하게 언론의 주목을 모으고 있는 칸 국제영화제와 달리 베를린은 스타 대신 저예산 독립ㆍ예술 영화들을 선택해 조용하게 행사를 치렀다.

주요 부문에서 수상한 미국 영화는 우디 해럴슨, 벤 포스터 주연의 '더 메신저(The Messenger)'가 유일하다. 이 영화는 오렌 무버먼 감독과 알레산드로 케이먼에게 각본상을 안겼다.

남녀 주연상을 받은 배우들 모두 국내 대중들에게는 생소한 이름이다.

남우주연상은 2005년 영국 런던에서 52명의 사망자를 냈던 지하철 테러 사건을 영화화한 '런던 리버(London River)'에 출연한 말리 출신 배우 소티귀 쿠야테에게 돌아갔으며 여우주연상은 '다른 모든 사람들'의 오스트리아 배우 비르기트 미니흐마이어가 받았다.

그 밖에 2007년 박찬욱 감독이 받았던 특별상인 알프레드 바우어상은 올해 '거인'과 폴란드 거장 안제이 바이다 감독의 신작인 '스위트 러시(Sweet Rush)'가 받았다.

일반인들에게 낯선 이름들이 수상작 목록에 이름을 올린 것은 이미 영화제 조직위가 초청작 명단을 발표하고 영화제가 진행되면서 예상된 일이었다.

AFP통신에 따르면 토미 리 존스가 주연한 '인 디 일렉트릭 미스트(In The Electric Mist)' 등 올해 베를린이 선택한 여러 영화들이 언론과 평단으로부터 혹평을 받았고 영화제 집행위원장 디터 코슬릭은 "영화제의 주요 임무는 감독들의 작업을 조용히 뒤따르는 것이며 그들이 항상 걸작만 만들어내는 것은 아니다"라고 해명해야 했다.

◇경쟁부문 진출 못한 한국영화 = 한국은 이번 영화제에서 경쟁부문에는 초청받지 못해 영화 팬들에게 실망감을 안겼지만 젊은 감독들의 실험성을 높이 사는 포럼 부문에는 다수 작품이 진출해 미래의 가능성에 대한 기대를 남겼다.

포럼 섹션에 이윤기 감독의 '멋진 하루', 노경태 감독의 '허수아비들의 땅', 백승빈 감독의 '장례식의 멤버', 이숙경 감독의 '어떤 개인 날', 재미교포 김소영 감독의 '나무없는 산' 등 5편이 포럼부문에서 상영됐다. 이 가운데 '어떤 개인 날'과 '장례식의 멤버'는 신인 감독들의 장편 데뷔작이다.

또 청소년 영화 부문인 '제너레이션 14플러스(Generation 14PLUS)' 섹션에 정지연 감독의 단편 '봄에 피어나다', '컬리너리 시네마(부엌 영화)' 섹션에 민규동 감독의 '서양골동양과자점 앤티크'가 초청됐다.

그러나 3대 영화제로 꼽히는 칸ㆍ베를린ㆍ베니스 영화제에서 경쟁 부문에 진출하거나 수상해 국제무대에서 한국영화의 위상을 높이는 일은 언제나 국내 관객들이 바라고 기다리는 소식이다.

앞서 한국 영화는 1961년 강대진 감독의 '마부'가 은곰상을 수상한 이래 베를린 영화제에 8편의 본선 경쟁작을 배출했다.

1994년에는 장선우 감독의 '화엄경'이 알프레드 바우어상을 수상했고 김기덕 감독은 2004년 '사마리아'로 감독상을 받았으며 임권택 감독은 2005년 세계적으로 영화 인생을 인정받는 영화인에게 주어지는 명예 금곰상을 받고 특별 회고전이 개최되는 영광을 안았다.

2007년에는 박찬욱 감독의 `싸이보그지만 괜찮아'가 알프레드 바우어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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