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향 입성’ 거창한 타이틀 무색 소리부문 빠진 공연 너무 평범

과천은 예로부터 민속예능의 고장이었다. 일제강점기 뛰어난 예인이었던 임종원, 임상문 부자로 대표되는 과천의 임씨 집안은 특히 민속예능과 민속음악의 명인들이었으며, 그 후손이 오늘날 경기민요 지방문화재인 임정란이다. 임상문은 줄타기의 전설적인 명인으로 김영철과 김대균으로 이어지는 줄타기 계보의 중심적 인물이기도 하다. 그의 부친 임종원은 1935년 대동가극단을 만들어 임방울, 강남중, 신영채, 이화중선, 이중선, 박초선, 박초홍 등과 함께 판소리, 창극으로 짜여진 토막극, 남도민요와 줄타기 등을 연행하면서 전국을 순회했다. 오늘날 판소리의 대모라고 할 수 있는 1933년생의 성우향은 1942년 처음으로 소리에 입문하고 승무도 배웠는데, 그 당시 화순에서 대동가극단 공연 중 임상문의 줄타기 공연을 본 적이 있다고 진술한 적이 있다.

이와 같은 과천의 예능은 도시발달과 주거환경 개선으로 잊혀진 기억이 되어버렸지만, 민속예능의 중심지였던 과천 ‘찬우물’(갈현동 주변)이 줄타기의 성지처럼 이해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줄타기 본향인 과천에 입성하다’라는 타이틀이 가능한 이유 역시 이 때문인데, 줄타기는 지금과 달리 과거에는 더 풍성하고 화려한 예능과 음악을 갖추었다고 알려져 있다. 이른바 ‘판줄’을 타게 되면 삼현육각을 갖춘 줄타기 기예뿐 아니라 소리와 춤, 기타 연희들이 어우러져 큰 ‘판’을 이루었다고 하는데, 이런 이유 때문에 줄타기보존회의 줄타기 공연도 갈수록 ‘판’이 커지고 있다. 풍물과 탈춤, 그리고 판소리가 빠지지 않고 삽입되고 있어서 보는 이의 이목을 집중시킨다. 원래 줄타기는 줄을 타는 기예만을 보여주는 것은 아니었다. 줄을 타는 것이 핵심이지만, 줄을 타면서 마치 판소리를 하듯이 줄아니리와 줄소리가 있었고, 다양한 재담이 함께 해서 재미를 주었는데, 이제는 풍물과 탈춤이 공연의 상당부분을 차지하는 모습으로 변했다.

이번 공연 역시 마찬가지였는데, 공연의 중심인 줄타기가 시간의 절반밖에 할애되지 않은 점은 아쉬웠다. 시간이 제약 때문에 소리부분이 빠졌고, 풍물과 탈춤도 지나치게 길어서 균형이 잡히지 않은 느낌이었다. 풍물과 탈춤이 줄타기에 앞서서 분위기를 잡는 것은 당연하겠지만, 풍물은 열두발상모나 설장고 같은 개인기까지 보여주었고 탈춤 역시 여러 지방 탈이 혼합된 것이어서 예술적 완성도보다는 흥미에 치중하는 인상이었다. 중요무형문화재 예능보유자의 줄타기이기 때문에 줄타기 자체의 기예는 두말할 나위가 없지만, 소리 부분이 시간이 없어서 넘어가면서도 예정 시간의 절반을 풍물과 탈춤에 할애한 것은 좀 지나친 면이 없지 않았다.

또한 이 공연은 과천 한마당축제의 프로그램 속에 포함된 것이었는데, 소위 ‘줄타기 본향인 과천에 입성하다’라는 ‘근사한’ 타이틀을 달고 경기문화재단의 지원금이 지원된 공연이라면, 과천시 축제의 한 부분이 아니라 독자적인 간판을 내걸고 공연을 했어야 했다는 생각이다. 줄타기 공연도 이날만 한 것이 아니라 축제기간 내내 한 것이었기 때문에, 이날만의 특별한 의미를 보여주었다는 생각도 들지 않는다. 또한 줄타기보존회는 전국을 돌아다니며 매우 많은 행사를 연중 펼쳐왔는데, 타이틀이 ‘줄타기 본향인 과천에 입성하다’라고 한다면 뭔가 더 특별한 의미부여를 했어야 했다는 생각이지만, 이날 공연은 늘상 하는 일상적인 줄타기 공연과 다름이 없었던 것 같다. 물론 처음에 고사를 지낼 때나 중간에 재담에서 임상문과 김영철 명인의 이야기를 하긴 했지만, 그것으로 한마당축제의 과천시민들이 과천과 줄타기의 특별한 인연을 의미 있게 새기지는 않았을 것 같다.

사실 줄타기는 언제나 재미있는 재담과 아슬아슬한 묘기로 사람들의 시선을 집중시켜왔고, 그런 점 때문에 민속예능 중에서도 끊임없이 박수와 환호를 받고 많은 공연도 하고 있다. 거의 단절될 뻔 했던 전승의 문제 때문에 이른 나이에 인간문화재로 지정받기도 했는데, 이 때문에 기대가 큰만큼 약간의 아쉬움도 남는 것이 사실인 것이다. 어차피 줄타기보존회가 과천에 자리를 잡고 있기 때문에 과천을 중심으로 한 경기도내에서 좀 더 의욕적이고 내실 있는 줄타기 공연을 더 많이 선보여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전지영 국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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