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거리 빈약한 김빠진 블록버스터
(서울=연합뉴스) 참 이상한 환경주의 영화다. 그러나 일단 맞는 얘기이긴 하다. 인류가 지구에서 없어지면 지구가 신음하는 환경 문제는 아마도 대부분 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사람이 없는 지구에는 더 이상의 화석연료 소비가 없어지니 온난화 문제도 해결될 것이고, 대기를 뒤덮는 스모그도 사라질 것이며, 차가 없어지니 도로에서 동물들이 차에 치여 죽는 로드킬(Road Kill)도 더는 발생하지 않을 것이 자명하다.
'지구를 살리기 위해 인류를 없애자'는 임무를 가진 외계인이 등장하는 영화 '지구가 멈추는 날'이 갖는 상상력은 이처럼 빈약한데다 위험하기까지 하다.
'인류가 살지 않는데도 지구가 그렇게 중요할까'하는 식의 의문까지도 필요 없다. 인류의 멸망을 주장하며 환경보호를 역설하는 이 영화의 주장은 애초에 실현 가능성이 없는 설정에서 출발하는 만큼 현실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구호'에 불과하다.
이 영화의 빈약한 상상력은 특히 문명과 자연을 별개의 것으로 보려는 서구의 편견에서 오는 것 같다. 생태계의 일원으로서 인류가 자연과 공생하는 사례는 얼마든지 있지만 영화는 아무런 대안도 제시하지 않은 채 '파괴적인 인류의 본성'만 구호처럼 비판한다.
전남편의 아들 제이콥과 단둘이 살아가는 우주 생물학자 헬렌(제니퍼 코넬리)은 갑자기 들이닥친 정부 기관 요원들에 의해 어딘가로 끌려가고 그곳에서 다른 과학자들과 함께 지구에 닥친 위험을 해결하는 임무를 부여받는다.
지구에 닥친 위험 요소는 외계로부터 지구를 향해 돌진하는 미확인 물체다. 뉴욕 센트럴파크에 착륙한 이 물체에서는 사람의 외모를 가진 '클라투'(키애누 리브스)라는 외계인이 걸어 나온다.
클라투는 각국의 정상들과 회담을 요청하지만 무시당하자 탈출한다. 헬렌은 자신을 찾아온 클라투가 행성 지구를 살리고자 인류를 멸망시키려는 계획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클라투를 설득하려고 필사적으로 노력한다.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에 깊이 있는 주제의식을 바라는 게 애초에 무리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영화는 그렇다고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에 흔히 바라는 화려한 볼거리라든지 짜임새 있는 줄거리를 갖춘 것도 아니다.
지구가 하나씩 망가지는 장면이나 신비한 외계 물체가 등장하지만 이 영화의 스펙터클은 다른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들에 비해 빈약한 편이다.
1951년에 제작된 동명 영화를 리메이크한 이 영화는 50여 년 전의 허술한 상상력에서 한걸음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 것처럼 보인다. 더구나 '지구가 멈추는' 위기를 극복하고 외계인이 마음을 고쳐먹는 계기가 되는 사건도 지나치게 억지스러워서 실소를 낳게 한다.
지구가 '멈춤'을 풀고 다시 '돌아가게' 되는 결말을 준비하는 이 영화는 거창한 시작과 달리 인간 행동 자체의 변화 가능성에 대한 어떠한 대안도 제시하지 않고 막을 내린다.
24일 개봉. 12세 이상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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