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영화> 잔잔한 멜로 '그 남자의 책 198쪽'

(서울=연합뉴스) '동감', '화성으로 간 사나이', '바보'를 만들었던 김정권 감독은 4번째 멜로 영화 '그 남자의 책 198쪽'을 내놓으면서 "이게 멜로의 끝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심장이 멈춰버린 듯한 느낌이 들 때가 가장 슬픈 것"이라는 말도 했다.

김정권 감독의 멜로는 김진표 감독의 '너는 내 운명'이나 김유진 감독의 '약속', 이정국 감독의 '편지', '산책'과 같은 멜로와는 또 다르다.

그의 영화들에서 가장 중요한 키워드는 '상처'다. 상처받은 두 남녀가 서로에게 다가갈 듯 말듯, 마음을 열듯 말 듯 서서히 서로를 보듬어 안는 그 미묘한 순간을 잔잔한 흐름 속에 잡아낸다. '그 남자의 책 198쪽' 역시 김정권 감독이 장기를 잘 살린 영화다.

시립도서관 사서인 은수(유진)는 남자친구와 헤어져 마음이 아프고 철없는 동생의 뒷바라지까지 하느라 힘들지만 씩씩하게 살아간다. 어느 날 은수의 앞에 미스터리한 남자 준오(이동욱)가 나타난다.

준오는 여자친구 민경이 '198쪽에 내 마음이 담겨있다'는 쪽지를 남겨놓고 사라지자 민경이 즐겨찾던 도서관에서 책을 뒤지기 시작한다. 은수는 그를 도와 민경이 빌렸던 책 목록을 내준다.

'그 남자의 책 198쪽'은 담백하고 담담하다. 거창한 사건없이 짧은 이동경로 안에서 남녀 주인공이 주고받는 대사로만 전개되는 이야기는 일상적인 시간처럼 느릿하게 흘러간다.

소설가 윤성희의 동명 단편소설을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의 나현 작가가 각색해 꽤 많은 분량의 대사를 과장되지 않고 깔끔하면서도 설득력있게 쏟아낸다. 카메라는 도서관 앞뜰이나 구내식당, 골목길, 기차 간이역 등 일상적인 공간들을 따뜻하게 훑는다.

유진은 자칫 잘못하면 현실성을 잃기 쉬운 은수 캐릭터를 깔끔하게 소화해 아이돌 가수 출신으로는 드물게 성숙한 연기력을 보여준다.

23일 개봉. 관람 등급 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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