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리뷰> 국립현대미술관 ‘20세기 라틴 아메리카 거장展’

붓으로 부르는 혁명의 노래

‘혁명과 아픔 그리고 그 속에서 피어난 생명력.’

국립현대미술관이 지난 7월26일부터 오는 11월9일까지 덕수궁미술관에서 기획전시하는 ‘20세기 라틴 아메리카 거장전’은 생동감 그 자체였다.

라틴 아메리카 16개국 84명의 작가들의 작품 속에는 정치적 이데올로기 속에서 생존하고자 했던 그들의 삶의 이야기를 화폭 가득 안고 관람객들과 소통을 시도하고 있었다.

‘세계의 변혁을 꿈꾸다: 벽화운동’, ‘우리는 누구인가: 라틴 아메리카의 역사와 정체성’, ‘나를 찾아서: 개인의 세계와 초현실주의’, ‘형상의 재현에 반대하다: 구성주의에서 옵아트까지’ 등 모두 4개의 테마로 이뤄진 이번 전시회는 각각의 오브제로 전시회 벽면을 수놓았다.

첫 번째 방 ‘세계의 변혁을 꿈꾸다’는 멕시코의 화가 디에고 리베라의 작품이 첫 동선의 시작을 알렸다. 멕시코 노동자 계급의 여인을 그린 ‘피놀레 파는 여인’은 당시 벽화를 통해 대중을 계몽하는 수단으로서의 작품성향을 나타내듯 단순한 선과 형태로 마치 조각상을 보는 듯한 견고한 형태감을 보여준다.

디에고의 이야기를 돌아 나오면 1920년대 멕시코 벽화운동의 선배격이며 직접 혁명의 선두에 선 화가 호세 클레멘테 오로스코의 방이 기다린다. 오로스코의 작품은 굵직한 선으로 구분되는 배경과 오브제의 경계를 강한 터치로 획일적으로 그렸으며, 폭파로 인해 오른손밖에 없는 그의 자화상인듯 작품 ‘손(Hand)’은 혁명가의 질곡있는 손마디와 액션 페인팅(물감을 일부러 흘리는 기법)으로 흑백으로 대비되는 어두운 현실과 강한 극복의지를 표명하고 있었다.

세 번째 방에선 민족적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나 개인의 정체성을 찾고 그 속의 아름다움을 표현하고자 한 화가들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디에고의 아내이자 멕시코가 사랑한 대중화가 프리다 칼로의 작품은 영화로 제작될 만큼 드라마틱한 삶을 엿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네 번째 방은 아주 이색적이다. 앞의 전시작들이 화면으로 보여진 그대로의 이야기에 주목했다면 근대화의 물결을 맛본 20세기 작가들은 현상을 분해, 단순화, 도식화, 추상화시킨 구성주의와 옵아트계열의 작품에 열광하고 있다.

하얀 캔버스에 칼로 찢은 듯 날카로운 수직선 세 가닥이 전부인 루시오 폰타나의 작품 ‘공간개념’은 화폭을 평면으로 바라본 선배들에게 ‘현실은 3차원의 공간’이라고 외치며 통쾌한 도전을 내민다.

이번 전시회는 서유럽 편향적인 전시회 현실속에서 관람객들이 쉽게 접하기 힘든 제 3세계 라틴 아메리카의 색다른 이야기를 전해준, 이색적인 콘셉트만큼이나 보는 눈이 즐겁고 신선한 전시회였다. 그러나 라틴 아메리카의 유명 화가들의 작품을 기대했던 관람객들에게 초기작 몇 점만이 선보여졌을 뿐 대다수가 비주류 작가들의 작품들로 구성돼 아쉬움이 컸다.

또 도슨트(설명자)의 설명 또한 시간에 쫓겨 일방적인 도제식 멘트성이 강해 견학차 방문한 어린 학생들에게 난해한 시간이 된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권소영기자 ksy@kg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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