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전통선율, 오케스트라와의 앙상블

이종현·권소영기자 major01@ekgib.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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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숙의 해금속으로 Ⅲ- 청소년을 위한 특별공연을 보고…

전통악기의 재료인 8음(8가지 재료)이 모두 들어간 유일한 악기 해금, 어떤 음악도 잘 소화해 내며 사람의 목소리만큼이나 표현의 폭이 넓어 지구촌의 어떤 악기와도 어우러지는 악기다. 크로스오버가 주류를 이루고 있는 요즘, 국악도 재즈와 전자음악 등 전 장르를 넘나들며 관객들에게 더 가까이 다가서려는 시도가 곳곳에서 펼쳐지고 있다. 이러한 시도의 일환으로 해금과 오케스트라의 행복한 만남의 시간이 마련됐다.

경기도립 국악단 해금 수석인 박경숙씨가 지난 8월 7일 경기도문화의전당 대공연장에서 ‘오케스트라와 함께 하는 해금으로 부르는 노래’ 연주회를 열었다. 이날 공연은 박경숙 수석이 세계속의 한국음악을 표방하며 진행하고 있는 ‘박경숙의 해금 속으로’ 시리즈 세 번째 공연으로 청소년을 위한 특별공연으로 마련됐다.

고영신 작곡의 해금과 오케스트라를 위한 ‘아리랑 환상곡’, 변계원의 초연곡 ‘추억으로의 여행’, ‘방아타령’, ‘추상’, ‘엄마야 누냐야’ 등 오케스트라의 연주와 박경숙의 해금이 멋진 하모니를 선사했다.

첫 곡은 북한의 작곡가 최성환의 ‘관현악을 위한 아리랑’이 장식했다. 플룻이 아리랑의 주제를 이끌어가자 애잔한 아리랑의 정서가 해금의 선율을 타고 관객 속으로 파고들었다. 아리랑 주제의 변주와 해금의 애잔한 선율이 잘 맞아떨어지는 자리였다.

두 번째 곡은 변계연 작곡의 ‘추억으로의 여행’으로 20여년 전 추억을 떠올리는듯 오케스트라의 잔잔한 음악을 타고 해금의 현이 춤을 추었다. 마치 추억의 한 장면을 떠올리는듯 했고, 일순간 경쾌한 곡조로 바뀌면서 오케스트라와 멋진 앙상블을 이루었다.

세 번째 프로그램은 청소년들을 위한 ‘선물보따리 1’. 대공연장을 찾은 청소년 관객들을 위해 해금사랑 선생님 모임의 김재은(효정초), 박소리(팔달초). 신향숙(매현초), 정혜은(영동초) 교사가 우정출연해 정해은 편곡의 동요 ‘동심으로’를 흥겨운 오케스트라의 반주와 함께 연주했다.

이어진 곡은 경기 대표 민요인 ‘방아타령’ 주제에 의한 해금협주곡이었다. 경기민요의 밝고 화려한 음악적 특징이 잘 살아있고 오케스트라와의 만남을 통해 방아타령의 흥겨움을 해금 특유의 기법으로 신명나게 표현해냈다. 현을 당기고 밀면서 뿜어내는 오묘한 가락과 음은 흥겨움 자체로 객석으로 오롯이 전달되었다. 박경숙의 연주력이 더욱 돋보이는 무대였다.

다섯번째 곡은 청소년을 위한 ‘선물보따리 2’로 무예신동들의 절대무공이 박경숙의 연주와 오케스트라의 협주로 해금협주곡 ‘추상’과 어우러지며 화려한 퍼포먼스가 펼쳐냈다. 경쾌한 리듬의 영화 ‘황비홍’의 주제가를 따라 다섯 명의 무예 신동들은 멋진 동작들을 선보이며 뜨거운 박수갈채를 받았고 오케스트라와 해금이 격렬하게 실력을 뽐내기도 했다.

이날 공연의 대미는 지난해 초연했던 고영신의 ‘해금과 오케스트라를 위한 아리랑 환상곡’이 장식했다. 아리랑의 주제가 편곡자에 의해 어떻게 변화하는지 잘 보여주는 격정적이면서도 멋진 연주였다. 박경숙은 이날 공연을 짧게 끝내는 것이 못내 아쉬웠는지 앵콜곡으로 ‘강변에 살자’와 ‘엄마야 누나야’에 이어 ‘올챙이 송’으로 마무리했다.

이날 연주회는 현대 창작음악의 발전과 전통음악의 저변 확대를 위해 아리랑 및 전통 선율을 주제로 한 창작곡과 청소년을 위한 재미있는 음악연주, 음악과 무예의 포퍼먼스가 어우러진 무대를 펼쳤지만 곳곳에서 아쉬운 점이 눈에 띄었다.

먼저 작은 규모의 오케스트라 편성으로 현파트는 해금의 풍부한 음량을 따라가지 못했고, 인상적인 색채감과 표현은 물론 매끄럽지 못한 부분을 상당부분 노출시켰다. 여기에 곳곳에서 해금의 선율과 오케스트라가 원활한 앙상블을 이루지 못해 관객들의 감흥을 충족시켜 주지 못하는등 미흡했던 부분도 많았다.

박경숙과 해금사랑 선생님들의 합주는 해금의 대중화를 위한 의도가 느껴졌지만 첫 곡 ‘동심으로’를 빼곤 뒷부분으로 갈수록 곡의 의미와 감흥을 떨어뜨리고 관객들을 지루하게 만드는등 아쉬움을 남겼다. 여기에 해설자도 관객들에게 친근함을 주지 못하고 딱딱하고 형식적인 진행으로 관객들을 흡입하지 못해 많은 준비가 필요함을 보여주었다.

특히 아쉬움을 지울 수 없는 것은 친구 사이인 변계연의 초연곡 ‘추억으로의 여행’이었다. 오케스트라와의 앙상블이 원활하지 못한 탓도 있으나 혼란스러움으로 인해 무엇인가 아쉬운 추억의 여행이 되었고, 관객들의 감흥을 이끌어내는 데도 실패했다. 여기에 1시간 이상 공연을 독주자 혼자 끌어가지 못하는 점은 이해하나 독주자의 역량을 최대한 이끌어내는 프로그램으로 꾸며졌으면 어떨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 공연이었다.

/이종현기자 major01@kgib.co.kr

인터뷰 / 박경숙 해금 연주자

“레퍼토리 다양화…새로운 시도 계속할 터”

속칭 ‘깡깡이, 깡깽이’라고 부르던 해금(奚琴). 해금은 먼 옛날 중국의 얼후라는 악기에서 태어났으나 정작 그 화려한 꽃을 피운 것은 우리 땅 고려였다. 이런 유서깊은 해금을 정악의 연주에만 머물지 않고 끊임없이 새로운 시도를 통해 해금의 아름다운 선율을 관객들에게 선사하는 이가 해금 연주자 박경숙이다. 7일 도문화의전당 귀빈실에서 만난 그의 고운 외모와 여린 손마디는 한없이 애잔한 해금과 닯았으나 눈빛은 강렬했다.

“해금이 한국음악으로 머무는 것이 아닌 세계속에 한국음악으로 자리잡기를 바란다”는 그는 “처음 공연을 기획할 때 오케스트라는 서양의 최대의 하모니를 가졌기에 해금소리가 묻히거나 특유의 소리를 낼 수 없으면 어쩌나 우려했지만 오히려 해금의 독특한 선율이 오케스트라의 화음 속에서 빛을 발하며 때로는 애절하고 경쾌하게 그리고 장엄하고 웅장한 음향을 드러냈다”고 말한다.

또 “레퍼토리를 다양화해 재즈, 민요, 가요, 동요, 개량 가야금, 피아노 등 장르와 악기편성을 넘나들며 크로스오버의 진수를 보여주려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며 “이번 연주회에는 무예 신동들이 펼치는 무예퍼포먼스를 곁들여 박진감 넘치고 현람함을 배가하는 오케스트라와 해금합주의 강렬한 비트를 경험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요즈음 장르 자체를 국한하지 않는 탈장르화와 함께 신선하고 이색적인 시도가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고 있어요. 하지만 새로움에만 치우쳐 본래의 의미와 목적인 ‘전통’을 잃어가는 모습이 안타까워요. 특히 후배들이 음악적인 개성을 살리려는 연주가로서의 고민보다는 엔터테인먼트 무대인 쇼맨십에 치중하는 것이 우려돼요.”

후배들의 모범적인 선두주자로서 레퍼토리의 개발과 신나고 재밌는 연주를 향한 고민은 언제나 일직선상이지만 그 같은 길에는 항상 본래의 목적과 중심이 있어야 한다는 그는 새삼 ‘전통’의 의미를 강조했다./이종현·권소영기자 major01@kgib.co.kr

<음악비평> 장인종 음악비평가

소규모 오케스트라 편성 관객과의 소통엔 역부족

지난 8월 7일 경기도문화의전당에서 열린 ‘박경숙의 해금 속으로 III’은 빼어난 독주자의 기량과 의욕적이고 내실있는 기획에도 불구하고 결과적으로 아쉬움이 남는 공연이 되었다.

연주회 프로그램은 변계원과 고영신의 창작곡 초연 및 재연을 포함하여 빈번하게 연주되는 해금협주곡 레퍼토리가 중심이 되었고, 또 청소년을 위한 이벤트를 따로 준비하여 비교적 알차게 구성된 편이었다. 그러나 당연히 아무리 충실한 기획이더라도 현장에서 그것이 어떤 효과를 갖는가 하는 점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이다. 이 날의 청중들의 반응은 무예신동 퍼포먼스에만 집중이 되었고, 공연의 중심이 되어야 할 음악 연주에는 기대에 미치지 못할 정도로 시큰둥했다. 무더웠던 날씨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음악의 질과는 별도로 전통음악에 익숙하지 않은 대다수의 청중들의 감각을 무대로 집중시킬 수 있는 흡입력이 부족했고 그로 인해 연주회 내내 무대와 객석 간에 친밀감이 형성되지 못한 탓이 크다.

서양음악 관현악 연주회는 보통 연주회용 서곡으로 시작하곤 하는데 이것은 복잡한 감상에 앞서 청중들의 감각과 소통의 경로를 트여놓는 부수적 효과가 있다. 이 공연의 첫곡으로 연주된 북한 작곡가 최성환의 ‘관현악을 위한 아리랑’은 친숙한 선율 진행과 관현악적 음향 효과 등으로 이러한 서곡의 기능을 담당하기에도 꽤 적합한 악곡이다. 그러나 이날 오케스트라의 작은 편성은 현파트의 풍성한 질감과 유려한 진행이나 다이내믹의 폭넓은 굴곡을 드러내기에는 다소 역부족이었다. 또 부분적으로 인상적인 색채감과 표현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적절한 긴장과 이완을 형성할 수 있는 템포와 리듬의 운용도 아쉬운 부분으로 남는다.

다음으로 연주된 변계원의 초연곡 ‘추억 속으로의 여행’ 역시 향후 종종 재연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볼 만큼 친숙하고 감성적인 테마를 선보인 작품이었으나, 전체적으로 오케스트레이션이 매끄럽게 이루어지지 못한 부분이 많았고 연주 면에서도 원활하지 못한 오케스트라의 앙상블로 인해 혼란스러운 텍스쳐가 반복되면서 점차 지리멸렬해졌다. 결국 공연 첫머리에 연주된 두 작품은 청중의 귀를 잡아 놓는 데에 그다지 성공적인 결과를 낳지 못했다.

이와함께 무엇보다 직접적으로 청중과 무대 사이에 친밀감을 형성했어야 할 사회자의 역할도 아쉬운 부분이다. 기왕 사회자의 등장을 기획했다면 이 날처럼 딱딱하고 형식적인 진행은 지양되어야 했고, 연주 공간의 분위기를 만들고 감상의 핵심을 짚어 줄 수 있는 보다 자연스럽고 능숙한 진행이 필요했다. 이렇게 무대에 대해 서먹함을 극복하지 못한 청중 앞에서는 동요와 애니메이션 주제곡 등으로 이루어진 접속곡도 분위기를 모으지 못하고 다소 억지스러운 모양새를 띠지 않을 수 없었다.

또 늘 문제거리가 되곤하는 국악과 서양음악과의 관계 설정도 이 공연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공연 후반 연주된 김영재의 ‘방아타령 주제에 의한 해금 협주곡’과 이경섭의 해금 협주곡 ‘추상’은 원래 국악관현악과 해금독주를 위한 곡이지만 여기서는 서양음악 오케스트라로 대체되었다. 물론 이 해금협주곡들이 다소 어색한 카덴차를 포함하여 서양음악의 구조를 일정 정도 따르고 있고 국악관현악이라는 형태 역시 이식된 근대성으로부터 자유로운 존재라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서양음악 오케스트라로 연주되면서 전통음악의 시김새와 음색은 대부분 사라졌고, 그 과정 역시 서양관현악과 접속하여 새로운 미를 창출하는 것이 아니라 국악관현악의 단순 번역에 불과해 연주내내 오케스트라 파트는 지극히 통속적이고 상투적인 울림을 넘어서지 못하였다.

박경숙은 김영재 선생의 해금 민요 연주에서 들을 수 있었던 오묘한 시김새가 바로 연상될 정도로 인상깊은 연주를 들려주었지만 그 조차도 오케스트라의 상투적인 음향의 반복 속에서 희석된 것 같아 아쉽다. 이렇게 연주회는 감성의 환기없이 진행되었고 그 가운데 마지막 곡이었던 고영신의 ‘아리랑 환상곡’의 구성미도 청중들의 감각 속에 각인되기는 어려웠다.

‘박경숙의 해금 속으로 III’ 공연은 무예 퍼포먼스, 접속곡, 사회자 진행과 서양오케스트라의 활용 등 관객과 거리를 좁히기 위한 장치들을 적극적으로 배치했다. 그러나 앞서 말한 바와 같이 그것들이 기대만큼의 효과를 내지 못하면서 독주자의 충실한 연주와 창작곡의 작품성 또한 제대로 청중들에게 전달되지 못한 것 같아 안타깝다. 언제나 진지하고 공들인 음악이 있다면 굳이 그런 장치 없이 공연의 아우라만으로도 관객과의 소통 역할 정도는 충분히 담보하고도 남음이 있지 않을까. 음악이 보다 호소력을 갖는 ‘해금 속으로 IV’를 내심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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