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자. 그 이름은 방문자.
방문자라는 말은 타의에 의한 자발적인 침입이라는 뜻이다. 내가 원하지 않은 시간과 장소에서 마주치는 사람들. 연극 ‘방문자(Le Visiteur)는 그들을 모티브로 쓴 연극이다.
산울림 소극장이 지난 12일부터 다음달 28일까지 무대에 올리는 연극 ‘방문자(심재찬 연출)’는 에릭 엠마뉴엘 슈미트의 동일 제목이 원작이다. 지난해 ‘나비눈’에 이어 올해 ‘틱틱붐’, ‘침향’에 이어 이번 작품까지 모든 예술이 꿈꾸는 아름다운 꿈을 무대 위에 펼치는 심재찬 연출가가 이번에는 신과 인간의 진지하고 치밀한 두뇌게임을 무대 위에 올려놓았다.
연극은 단일 장소에서 1시간 50분의 러닝타임을 달린다. 그 장소에는 모두 4명의 배우가 그들의 이야기를 꾸미는데, 그 인물이 아주 독특하고 유니크하다.
이 시대 최고의 지성이라 일컬어지는 지그문트 프로이트와 그의 딸 안나. 환자를 치료하던 예의 그 유명한 소파를 가운데에 두고 넓찍한 서재와 서재를 가득 메운 그의 저서들 그리고 그의 시거. 이렇듯 아주 일상적인 공간이지만 때는 1938년의 비엔나이다. 나치가 오스트리아를 침공해 유태인들을 그야말로 ‘청소’하던 비참한 그 시기에 학대당하는 민족을 위해 망명하지 않는 프로이트를 위협하는 현실의 낯선 방문자가 찾아온다. 게슈타포, 그는 독일장교로서 골칫거리인 프로이트를 협박하기 위해 그의 딸을 잡아가는 범행을 저지른다.
딸을 구하기 위해 독일의 개가 되어야 하는 망명서에 서명할 것인가, 아니면 대의를 위해, 민족을 위해 아니 그 자존심을 위해 딸을 버릴 것인가. 현실은 그에게 계속 망명서를 작성하기를 원하고 이 때 깔끔한 슈트 턱시도에 멋쟁이 모자를 비스듬히 눌러쓴 비현실의 낯선 그러나 익숙한 ‘그’가 방문한다.
그리고 그는 철학적이고 이성적인 치밀한 논리를 펼치며 프로이트에게 계속 질문을 해댄다. ‘신을 믿느냐고’, ‘믿지 않느냐’고. 그러나 그는 딸을 구해야 하는 한낱 필부일 뿐 지금 이런 질문들은 그에게 무의미하다. 하지만 그는 계속해서 낯선 방문자에게 빨려들어가고 급기야 그에게 이 모든 상황을 해결해주길 바란다.
관객들은 극을 보는 내내 궁금하다. 과연 그 낯선 방문자는 정말 신일까, 아닐까? 하지만 이것은 또한 연출가의 또다른 ‘관객속이기’의 한 장치는 아닐까. 낯선 방문자가 다름아닌 프로이트의 또 다른 에고(ego)라면?
최고의 지성이라 자부하는 어른이 된 프로이트는 현실의 가로막힌 벽 앞에서 또다시 유년시절 자신 안에 갇혀버린 것처럼 자신 속에 숨어버린 것은 아닐까. 그리고 우리들 또한 어른이라는 타이틀을 내걸고 살지만 극한적인 상황이 오면 어디론가 숨어버리고 싶지 않은가.
한없이 나약하지만 ‘용기’라는 희망을 가지고 살아가는 우리들의 자화상을 다룬 연극 ‘방문자’는 라스트신에 희곡을 안겨준다. 결국 신을 믿지 못해 기적을 보여달라며 떼를 쓰던 프로이트는 창문으로 탈출하는 그에게 두 발의 총알을 쏜다.
‘탕’, ‘탕’ 숨을 헐떡거리며 관객들을 향해 돌아선 ‘그’의 마지막 대사. “헉, 헉…. 빗나갔어.”
/권소영기자 ksy@kg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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