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20주년 기획 깨어나라 대고구려

대제국의 기상을 찾아서

◇비사성, 연개소문의 천리장성이 시작되는 철옹성

수나라는 612년부터 해마다 비사성을 공격했지만 매번 참담한 패배로 마침내 멸망한다. 수나라에 이어 들어선 당나라도 645년 3월 고구려를 침략하지만 실패하고 만다. 비사성이 위치한 라우둥반도 끝자락인 라오닝성(遼寧省) 진조우(金州)시 요우이샹(友誼鄕) 빠리촌(八里村) 해발 663m인 다하이산(大黑山)은 주위가 넓은 평야지대인 탓인지, 유난히 높아 보였다. ‘삼국사기’ 등 문헌은 비사성이 이곳에 축조됐음을 기록하고 있다. 둘레 5㎞, 성벽 너비 3.3m, 성벽 높이 3~5m. 고구려 산성들은 대부분 험난한 지형을 활용한 석성이었지만 지금 이방인들을 맞고 있는 비사성은 철저하게 중국식으로 둔갑됐다.

◇고구려의 도시 지안(集安)

가도 가도 끝이 없는 들녁. 아예 지평선과 하늘이 맞닿아 있다. 1천400여년 전 이 도시의 주인은 분명 고구려였다. 유리왕 22년(서기 3년) 졸본성에서 이곳으로 옮겨 와 장수왕 15년(서기 427년) 평양성으로 천도할 때까지 425년 동안 제국의 서울이었다. 국내성. 당시 고구려와 대치했던 나라들은 수나라와 당나라. 이들 나라의 수도보다 더 계획적이고 섬세하게 조성됐던, 동아시아 최고의 도시였다. 이곳의 겨울은 맵기로 유명했다. 음력으로 10월이면 하늬바람이 분다. 살갗을 스치는 바람이 을씨년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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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텃밭으로 전락한 국내성

이 도시 한복판에 서있는 도로 이름들은 낯설지 않다. 고구려의 웅장했던 왕궁이었던 국내성이 있었다는 사실을 웅변이라도 하듯 지명에 모두 ‘성(城)’이 들어간다. 그만큼 고구려의 오랜 도읍지였다. 지안 중심가에는 아파트단지들이 즐비했다. 이 가운데 제법 깔끔하게 정돈된 아파트 뒷편에 국내성 성곽이 업둥이처럼 버려진 채 앉아 있었다. 이 도시를 가로 지르는 개천 주변에 축조됐던 성곽들은 최근 주민들이 아침과 저녁마다 걷는 산책로에 묻혀졌다.

/글 허행윤 인터넷 포토경기부장·김형표 제2사회부 차장 heohy@kgib.co.kr

/사진 이종길 사진작가 glory88kr@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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