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고구려 전시관을 찾아

아차산…대륙 호령한 ‘민족 혼’이 숨쉰다

우리나라(남한)에서 고구려 최대의 유적지로 꼽히는 아차산.

한강 남쪽에 위치한 아차산은 군사, 교역 등 전략을 세우기에 좋은 지리적 요건을 갖추고 있어 고구려, 백제, 신라 등 삼국의 치열한 전투가 끊임없이 이어졌던 곳이다. 이는 역사에서 보듯 마지막에 한강(아차산)을 차지한 신라가 삼국을 통일, 중요한 군사적 요새임을 증명하고 있다. 이 가운데 관심을 끄는 것은 평양성, 즉 한수 이북에 주 거점을 두고 만주벌판을 호령하던 고구려가 한수 이남에서 군사시설을 갖추고 백성들이 정착생활을 했다는 점은 고구려의 위상이 한수 이남에도 상당히 컸다는 것을 방증한다. 이에 구리시는 고구려의 혼을 깨우고 고구려 역사를 찾기 위해 고구려 유물이 다수 출토된 아차산 인근을 고구려 유적지로 지정, 고구려 유물전시관과 고구려 당시의 생활상을 담은 대장간 마을 등을 조성했다. 많은 유물이 있는 것이 아니고 역사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지 않지만, 고구려의 역사를 이해하고 체험하기에는 충분한 공간임에 틀림없다. 우리 민족이 가장 아쉬워하고 그리워하는 고구려의 혼이 담긴 아차산을 찾아보았다.

/편집자주

◇아! 고구려

396년 광개토대왕은 손수 수군을 거느리고 한강으로 상륙, 백제 아신왕의 항복을 받아냈으며 남하정책을 감행한 장수왕은 백제 개로왕을 아단성(지금의 아차산성) 아래서 죽인다.

이로써 백제는 한성 백제시대를 마감하고 웅진(지금의 충남 공주)으로 천도, 아차산은 고구려의 영토가 된다.

이후 고구려는 백제와 신라군의 침입을 막기 위해 아차산 정상에서부터 한강, 왕숙천, 중랑천에 군사용 감시초소인 ‘보루’를 아차산 줄기를 따라 400~500m 간격으로 모두 20여개를 설치한다.

아차산의 고구려 유적은 1994년 구리시와 구리문화원에 의해 처음으로 체계적인 조사가 이뤄졌으며 지표조사를 통해 1997년부터 발굴을 시작, 2004년 10월 27일 국가지정문화재로 지정됐다.

특히 아차산 4보루에서는 글자가 새겨진 명문토기를 비롯해 각종 토기들과 창, 도끼, 칼을 포함한 무기들, 갑옷 조각과 투구, 말 재갈, 등자(발걸이) 등 마구류 등과 함께 농기구들도 출토됐으며 현재도 발굴작업 중에 있다.

출토된 유물은 아차산 4보루에 고구려군이 주둔하면서 농사를 지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으며, 중무장한 군인들의 본거지였음을 보여주고 있다.

◇고구려 유물전시관, 대장간 마을

구리 우미내 마을 입구에서 500여m 안쪽에 위치한 고구려 유물전시관과 대장간 마을은 주변에 새소리와 깨끗함이 담긴 실개천 소리가 울림으로 다가와 작은 소리에도 즉각 대응할 수 있는 군사적 요새임을 느낄 수 있었다.

전시관에 들어서면 천장에 고구려의 별자리를 나타낸 ‘천상열차분야지도’가 위용을 자랑하는데 국가의 별자리는 제왕의 나라에만 존재한다고 전해지고 있어 당시 고구려의 위상이 대단했음을 엿볼 수 있다.

천상열차분야지도는 당나라 군사들이 고구려를 패망시킨 뒤 되돌아 가는 과정에서 대동강물에 빠뜨려 없어졌으나 조선시대에 들어와 ‘천상열차분야지도’ 탁본이 발견돼 지금까지 전해내려오고 있다.

또 아차산에서 출토된 고구려를 나타낼 수 있는 벽화와 유물들이 진열돼 있으며, 유물들을 통해 고구려인들의 생활상과 문화, 습관 등 소소한 얘기거리가 전시돼 있다.

전시관 바로 옆에는 철기시대를 가장 잘 활용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고, 지난해 인기리에 방영된 ‘태왕사신기’의 세트장이었던 고구려 대장간 마을이 한 눈에 들어온다.

대장간 마을은 7m 높이의 물레방아와 철기문화의 산실 대장간이 정 중앙에 위치해 있으며, 주변으로 고구려인들이 숭상하는 현무가 그려진 거믈촌과 당시의 온돌문화를 직감할 수 있는 담덕태자와 진영채, 중국을 호령했던 영향으로 중국문화를 엿볼 수 있는 다양한 창문틀을 감상할 수 있다.

이 밖에 광개토대왕비와 고구려의 역사에서부터 문화, 군사 등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전시물이 게시돼 있다.

특히 고구려 대장간 마을을 내려다 보고 있는 아차산 큰바위 얼굴은 태왕사신기 촬영 당시에 발견돼 큰 화제가 되기도 했다.

◇아차산과 한강

아차산(해발 285.8m)은 그리 높지 않지만 정상에 올라서면 한강 남쪽이 한 눈에 내려다 보이고 북쪽으로는 의정부까지 보이는 군사적 요충지로 삼국의 격전지가 된다.

또 한강은 삼국의 흥망성쇠, 즉 운명을 좌우하던 곳으로 한강유역의 넓은 평야가 주는 풍요로움과 황해를 통해 중국과의 교역으로 새로운 문물을 받아들이기 가장 용이하다.

이를 반영하듯 가장 먼저 한강을 차지한 백제는 4세기 근초고왕때 가장 강력한 국가로 성장, 평양성까지 영토를 확장했으며 5세기에는 고구려의 광개토대왕과 장수왕이 만주벌판을 호령하기도 했다.

하지만 6세기 신라는 한강을 차지하면서 삼국통일을 이뤄 신라문화의 꽃을 피우게 된다.

/임명수기자 mslim@kgib.co.kr

인터뷰/ 박영순 구리시장

“한민족 개척정신의 현장자주번영 계승 공간으로”

“고구려의 역사와 소통하는 공간이 되도록 하겠습니다.”

박영순 구리시장은 최근 개관한 고구려유물전시관의 운영방향 등을 설명하면서 고구려의 웅대한 기상과 찬란한 문화 등을 거듭 강조했다.

그는 “고구려는 동아시아 대륙을 호령했던 자랑스러운 한민족의 자긍심이며 민족적 기상”이라면서 “고구려유물전시관은 고구려의 역사를 그대로 실현하기는 어렵지만 고구려의 독특하고 깊은 향혼 등을 체험할 수 있는 역할을 다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조용한 사찰과 같은 전시관보다는 고구려의 개척정신과 창조정신, 도전정신, 모험정신 등을 계승 발전시키는 공간을 목표로 하겠다는 얘기다.

그는 “고구려유물전시관은 단순한 건축물이 아니라 조상들이 이룩한 역사를 지키고 후손들에게 물려줄 의무를 이행하기 위한 작은 시도”라면서 “고구려유물 한 점 한 점이 진취적이고 미래지향적이며 진정한 민족자주와 번영을 담고 있는 자랑스러운 정신이다”고 말했다.

“고구려유물전시관이 그동안 양적 경제성장과 생활수준에 치우쳐 역사와 문화같은 소프트웨어 측면에 소홀히 해 온 국민 모두의 지역적 역량을 결집시키는 네트워크의 중심적 역할을 수행하는 공간으로 자리잡을 것”이라고 밝히는 박 시장은 중국이 최근 고구려의 역사를 왜곡하는 동북공정을 끝내고 다시 고조선사, 발해사까지 왜곡하고 있는데 대해 강한 분노를 깔았다./한종화기자 jhhan@kg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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