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문화현장을 가다> ■ 모차르트 오페라 ‘마술피리’

콘서트 오페라 ‘신선’  짜임새 있는 연출·빛나는 아리아…

고도의 테크닉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노래 실력을 발휘할 수 있는, 마치 플루트처럼 투명한 음색이 돋보이는 하늘을 찌를 듯이 높이 올라가는 여성 소프라노 ‘콜로라투라(구슬 구르듯 맑은 음색으로 퍼짐 없이 최고 공명점에 도달하는 소프라노)’의 매력을 가장 잘 살릴 수 있는 ‘밤의 여왕 아리아’. 모차르트의 오페라 ‘마술피리(Die Zauberflote·Magic Flute·마적)’ 2막에 나오는 밤의 여왕의 아리아 ‘지옥의 복수심 내 마음 속에 불타 오르고(Der Holle Rache kockt in meinem Herzen)’는 세기적인 소프라노 조수미씨가 불렀고 CF음악으로도 쓰여 우리 귀에도 익숙한 곡으로 콘서트 오페라 무대에서 이 곡을 접할 수 있어 즐거웠다.

▲콘서트 오페라란?

기존 오페라 형식을 탈피해 작품에 필요한 무대 세트 없이 성악가들이 전곡을 들려주는 연주회 형식의 오페라 공연을 말한다.

한국성악앙상블 ‘노이’가 지난 5월 17일 성남아트센터 콘서트홀 무대에 올린 모차르트의 오페라 ‘마술피리’는 오랜만에 접한 콘서트 오페라였다. 비록 콜로라투라의 매력이 가슴에까지 와닿지는 않았지만 국내외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솔리스트들의 감성풍부한 노래를 들을 수 있어 의미있는 공연이었다.

콘서트 오페라는 정식 오페라와는 달리 극 흐름의 줄기는 해치지 않으면서도 우리 귀에 익숙한 아리아와 중창, 합창 등을 들을 수 있어 오페라 마니아가 아니더라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장르다. 화려한 무대예술은 느끼기 힘들겠지만 가수들의 풍부한 성량과 연기력, 단순화 한 무대 배경 등이 어우러져 연출되는 아름다운 장면들은 그동안 공연장을 찾기 어려웠던 학생들이나 주부 등 정통 오페라 무대에서 소외됐던 관객들이 친숙해질 수 있는 분야다.

지난해 고양 어울림누리에서 처음 접한 신선함을 다시한번 맛보는 기대감으로 가족과 함께 성남아트센터 콘서트홀을 찾았다. 이날 성남아트센터 콘서트홀은 학생들과 연인, 주부 관객들로 만원을 이루고 있었다.

무대에는 오페라 제목에서 느낄 수 있듯 숲 속 풍경을 묘사한 커다란 막이 설치돼 있고 왼쪽에는 음악 연주를 담당할 피아노가, 오른쪽에는 극 진행을 도와줄 진행자를 위한 자리가 있을 뿐 화려함이란 없었다. 하지만 이날 솔리스트들은 뛰어난 성량으로 무대를 장식했고, 2시간이 넘는 원작을 과감하게 90분정도로 줄였음에도 아리아의 정수만을 골라 짜임새 있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가족콘서트라는 컨셉에 따라 할머니와 아이들이 등장해 줄거리를 들려주며 웃음을 선사, 극의 지루함을 반전시키는 적절한 효과를 거뒀고, 솔리스트들은 우리에게 익숙한 아리아들을 엄선해 열창, 화려한 오페라 무대미술만 없을뿐 정식 오페라보다 더 좋았다.

숲과 극의 배경인 사원을 재연한 배경막에 장면이 바뀔 때마다 상징적인 조명으로 처리해 극의 분위기를 부족함 없이 표현해냈고, 피아노 반주자 역시 돌출되지 않는 반주로 솔리스트들이 자신의 풍부한 성량을 유감없이 발휘할 수 있게 해 감동을 극대화 했다.

단정하면서도 정직한 청년 이미지를 표현한 타미노 역의 테너 민경환은 ‘너의 마술소리는 정말 강하다’에서 부드러운 카리스마를 보여준 반면 극중 전체에서는 비중에 비해 다소 밋밋한 느낌을 주었다. 파미나 공주 역을 맡은 소프라노 배기남은 다수의 오페라 작품에 주역으로 출연했던 관록이 느껴지듯 ‘아 모든 것 이미 사라졌고’를 불러 이날 공연의 백미를 선사했다. 이에질세라 밤의 여왕 역을 맡은 소프라노 석현수는 지난해 성남아트센터가 제작한 R. 스트라우스의 오페라 ‘낙소스섬의 아르나데’에서 주역 ‘체르비네타’로 출연했던 경험을 살려 밤의 여왕의 유명한 아리아 ‘지옥의 복수심 내 마음 속에 불타 오르고’를 청아하면서도 단단한 음성으로 훌륭히 소화해냈다. 다만 최고음의 콜로라투라를 내지 못한 것은 아쉬웠다.

이와함께 제사장 역의 베이스 김남수는 ‘이 성스러운 궁전에서’ 등 중후한 저음으로 제사장의 엄숙함과 그 속에 숨겨진 온화함을 함께 표출해냈고, 새잡이 파파게노 역의 바리톤 김범진과 파파게노의 여자친구 파파게나 역의 소프라노 김혜옥은 자신들의 활기 넘치는 자신들의 캐릭터를 십분 활용하면서도 이중창을 비롯 중창곡 등에서 안정감 있는 앙상블을 이끌어냈다.

간수 모노스타토스 역의 테너 김동섭도 코믹한 연기로 관객들의 웃음을 자아내게 했고, 약간 부족한 느낌을 준 시녀역의 김현아, 정찬희, 김순덕 등도 제 역할을 충실히 소화해냈다.

콘서트 오페라 무대는 항상 기대감을 갖게 해준다. 이번 무대와 같이 피아노 반주만으로도 솔리스트들의 아리아와 이중창은 물론 중창까지 모두 음미할 수 있는 무대가 흔치 않기 때문이다. 콘서트 오페라를 대할 때마다 느끼던, 말로 표현하기 힘든 아쉬움이 항상 있었다. 이제 완성도 높은 콘서트를 만나고 싶은 바람이 점점 커지는 것을 느끼며 이 같은 공연이 자주 마련되기를 기대해 본다./이종현기자 major01@kgib.co.kr

<전문가 비평> 장인종 음악평론가

단순한 무대·의상에도 정통오페라 감동 물씬

몇 해 전부터 국내에서도 콘서트 오페라 공연이 자주 무대에 올려지고 있다. 무대장치나 의상 등을 최소한으로 하는 콘서트 오페라는 바로크 시대 ‘오페라 콘체르탄테(Opera Concertante)’를 기원으로 하지만, 오늘날에도 주최측에게나 관객에게나 부담스러운 비용을 절감하면서도 오페라의 정수를 체험할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효과적인 공연 형태로 관심을 모으고 있다. 이러한 콘서트 오페라를 구성할 때 먼저 중요하게 고려되어야 될 것은 원작 오페라의 어떤 부분을 간소화하고 무엇에 역점을 둘 것인가 하는 점이다. 그동안 국내에서 공연된 몇 번의 콘서트 오페라에서는 관현악의 무리한 사용, 자막의 생략 등 구성 상의 오류들이 지적되기도 했는데, 이런 측면에서 지난 5월 17일 성남아트센터에서 공연된 ‘마술피리’는 꽤 성공적인 모델에 가까운 짜임새를 보여주었다고 할 만하다.

이날 공연에서 먼저 눈에 띄었던 것은 할머니와 아이 연기자를 등장시켜 액자극과 같은 형식 속에서 ‘마술피리’의 줄거리를 풀어나가게 한 발상이다. 진부한 방식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는 ‘가족 콘서트 오페라’라는 컨셉트에 어울리는 적절한 방법이 되었다. 극중 할머니와 어린이들의 대사는 원작 오페라의 생략된 부분을 설명해주는 역할을 했는데 이를 통해 내레이터나 해설자를 도입했을 때 생길 수 있는 시간적 공간적 단절감을 최소화하며 극의 자연스러운 흐름을 이어갈 수 있었다. 동시에 이는 오페라의 내용을 이해하기가 쉽지 않은 어린이 청중들에게 더욱 친절한 설명이 되었고, 부가적으로 1부와 2부의 시작머리에서 음악이 시작되기 전에 소란스러운 객석을 정돈시키는 역할의 의미도 있었다. 이와 더불어 1막에 비해 2막의 내용을 지나치게 축소하여 플롯의 전개가 불균형스럽긴 했지만 2시간이 훨씬 넘는 원작을 과감하게 90분 분량으로 축약한 선택 역시 객석의 어린이들이 끝까지 무대에 집중할 수 있었던 한 요인이 되었다. 이 모두 어린이 관객을 포함하는 오페라 공연에서 늘상 발생했던 소통의 문제를 여러 방면으로 고민한 흔적들이다.

그외 숲과 사원을 재현한 배경막과 장면마다 상징적인 색을 사용한 조명은 별다른 무대 장치 없이 장면과 분위기를 부족함 없이 표현해 내었고, 오케스트라를 생략하고 피아노 반주로 진행한 것도 아쉬움보다는 오히려 적절한 선택으로 느껴졌다. 오케스트라 피트가 없는 콘서트 오페라 무대에서 시각적으로나 청각적으로나 자칫 산만해질 수 있는 관현악보다는 오히려 단순하지만 깔끔한 피아노 반주가 노래를 선명하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날 공연이 피아노 반주로 충분했던 것은 관현악 효과가 상대적으로 적은 모차르트 작품인 이유도 있었을테고, 또 관현악만큼이나 극적 효과를 살려내어 반주한 오지영의 피아노 덕도 있었을 것이다.

효과적인 연출과 짜임새 속에서 출연진들의 아리아와 중창은 더욱 빛을 발할 수 있었다. 타미노 역의 테너 민경환의 노래는 단정하면서 약간 밋밋한 느낌도 있었으나 영웅이라기 보다는 정직한 청년에 가까운 배역의 성격을 더욱 잘 드러낼 수 있었다. 부드러운 카리스마로 무대를 장악한 ‘너의 마술소리는 정말 강하다’는 인상적인 부분이었다. 파미나 역의 소프라노 배기남은 비극적 감정을 풍부하게 표출하며 ‘아, 나는 그것이 사라졌음을 느끼고’를 불러 이날 공연의 백미를 장식했고, 밤의 여왕 역을 맡은 석현수는 ‘지옥의 복수 내 마음 속에 불타고’에서 최고음이 완벽하게 나지 않았지만 청아하면서도 단단한 음성으로 콜로라투라를 소화해내었다. 1막의 ‘두려워마오, 사랑하는 나의 아들’에서 그녀의 음색과 기교는 매우 효과적이었다. 또한 베이스 김남수의 중후한 저음은 자라스트로의 엄숙함과 온화함이 공존하는 분위기와 표현에 적합했으며 김범진의 파파게노는 캐릭터의 특징을 충분히 드러내지는 못했으나 파파게나 김혜옥과의 이중창을 비롯하여 중창곡 전반에서 안정감있는 앙상블을 이끌어내었다. 그외 모노스타토스 역의 김동섭은 코믹한 연기를 선보여 관객들의 호응을 얻었고 세 시녀는 무난한 호흡을 보여줬지만 1막의 중창에서 위트감이 부족했던 점은 조금 아쉽다.

이번 공연을 주최한 문화뱅크는 국내에서 가장 적극적으로 콘서트 오페라를 무대에 올리고 있는 예술단체이다. 다양한 오페라를 콘서트 오페라로 구성해내는 시도와 동시에 ‘마술피리’와 같이 좋은 반응을 얻었던 레퍼토리를 꾸준히 재공연하는 노력 또한 높이 살 만하다. 다만 이번 공연은 무대배경을 제외하고 작년과 큰 차이가 없었는데 공연의 완성도와는 별개로 약간 아쉽게 느껴지는 부분이다. 욕심일지 모르겠으나, 축적된 노하우를 더욱 적극적으로 반영하고 이를 통해 매공연마다 업그레이드 되는 콘서트 오페라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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