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혼의 추억’ 3박4일 난생 첫 여권들고 다녀온 설레는 해외 나들이

 ■ 사회복지법인 JJ재단,  50여명 초청 크루즈여행

지난 21일 오후 5시30분 부산국제여객선터미널.

머리결을 스치는 시원한 바닷바람 사이로 어린아이 마냥 들뜬 노인들의 목소리가 터미널 전체에 메아리치고 있었다.

“난생 처음 여권이란 걸 만들었지 뭐야. 촌놈이 출세했지”

회색 점퍼에 하얀 운동화를 신은 서동근 할아버지(80·경기도 화성)는 행여 잃어버리기라도 할까 여권이 든 가방을 열고 또 열어보고 있었다.

불그스레한 얼굴, 떨리는 음성, 초롱초롱 빛나는 눈빛.

팔십 평생 처음 가보는 해외여행에 서 할아버지는 어느새 김밥을 싸들고 소풍을 떠나며 콧노래를 부르는 천진난만한 초등학생이 돼 있었다.

이어서 할아버지 주변으로 50여명의 노인들이 삼삼오오 모여들었고 어색한 눈인사를 주고 받던 이들은 곧바로 사는 곳은 어디냐, 하는 일은 뭐냐 등의 이야기를 꺼내며 어색한 분위기를 깨기 시작했다.

경기도 화성과 용인, 부천지역 등에서 올라온 이들은 일본 후쿠오카로 향하는 크루즈호에 몸을 실으면서 서로의 손을 마주잡았다.

이처럼 생면부지의 노인들을 한자리에 모아준 곳은 사회복지법인 JJ재단.

지난해 11월 법인 인가를 받은 JJ재단은 노인복지 사업의 일환으로 도내 모범노인들의 무료 일본여행을 기획, 3박4일간의 뜻깊은 추억을 선사하기 위해 이들과 함께 배에 올랐다.

각자 짐을 푼 노인들과 JJ재단 관계자들은 곧바로 선상에 올라가 배를 가르는 물보라 선율을 감상하고 부산시내의 야경을 바라보며 소중한 첫 만남의 밤을 맞이했다.

# 22일 오전 8시30분.

8시간이 넘게 바다를 건너왔지만 아침을 여는 노인들의 표정은 그 어느때보다도 밝다. 물안개 저편에서 그토록 고대하던 하카다항이 모습을 드러내자 이들은 연신 디지털카메라로 사진을 찍느라 정신이 없다.

부천 소사구에서 온 육종구 할아버지(65)는 유난히도 허스키한 목소리를 내뱉으며 여권을 확인하느라 요란스럽다.

또 옆 방에 있던 김인기 할아버지(76·부천 소사구)는 제일 먼저 일본 땅을 밟겠다며 항구에 도착하기 1시간 전부터 짐을 싸들고 난리법석이다.

오전 9시 출국수속을 마친 이들은 JJ재단이 준비한 전용버스를 타고 큐슈 최대의 도시 후쿠오카로 이동, 수험생 자녀를 둔 일본인들이 합격기원을 하는 곳으로 유명한 다자이후텐만구를 찾아 소원을 빌었다.

또 차가운 샘물과 온천수가 동시에 솟아오르는 칸린호수를 비롯 일본전통 민예품을 전시하는 민가지역 유후인 거리를 둘러본 뒤 일본 최대의 온천도시 뱃부에 도착, 유황재배지와 지옥온천순례를 마쳤다.

오후 5시 이들은 뱃부지역 최고급 호텔 스기노이 호텔에 숙박, 온천욕을 즐긴 뒤 설레는 일본 여행을 기다리며 잠을 재촉했다.

# 23일 오전 10시.

“내 생전에 이렇게 장엄한 광경은 처음이요”

매쾌한 유황가스에도 불구, 박부금 할머니(77)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정상을 향해 걸어갔다.

활화산으로 유명한 아소산의 전경을 둘러보는 박 할머니의 표정에는 어떤 말로도 표현할 수 없는 벅찬 감동이 진하게 뭍어있었다.

박 할머니는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모를 정도로 가슴이 뛴다”면서 “이렇게 멋진 곳을 볼 수 있게 해 준 JJ재단 관계자들에게 너무나 감사한다”고 소감을 말했다.

아소산의 황홀한 전경에 이어 이들은 사루마와시를 방문, 천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원숭이쇼를 관람하며 즐거운 한때를 보냈고, 일본 3대 성 중 하나인 구마모토성 방문시에는 쩍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이들은 어느새 어색한 만남은 잊은 채 서로의 팔장을 끼고 사진촬영을 하며 정을 쌓아갔고 아소 야마나미 호텔로 이동해서는 마지막 밤을 아쉬워하며 새벽까지 담소를 나눴다.

# 24일 오후 5시.

시끌벅적한 부산항 한 켠에서 서 할아버지가 끝내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서 할아버지의 등을 두드리던 박 할머니도 결국 눈물을 참지 못했다.

50여명의 노인들 모두 충혈된 눈으로 박수를 친 뒤 짧지만 아름다운 일본 여행이 끝났다. 용인과 화성으로 버스를 나눠 탄 이들은 출발에 앞서 부산의 저녁노을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쉽지만 소중한 추억. 또다른 만남을 기약할 수 없지만 이들은 서로의 연락처를 주고 받으며 JJ재단 관계자들과 진한 포옹을 나눴다.

서 할아버지는 “여행 기간 내내 친 자식처럼 돌봐준 JJ재단에 감사한다”며 “노인들을 위한 좋은 사업을 꾸준히 진행해 달라”고 말했다.

JJ그룹 오세갑 부회장은 “어르신들이 즐거워하는 모습에 그저 흐뭇할 뿐”이라며 “사회복지법인 JJ재단은 앞으로도 마음에서 우러나는 진정한 사랑을 통해 노인들을 위한 사업에 열정을 쏟아붓겠다”고 강조했다.

각자의 집으로 향하는 이들의 뒷모습이 유난히 눈부시다./황신섭기자 hss@kg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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