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교하고 계산된 움직임현대무용의 진수 선보여
‘내면, 관계, 권력’
지난 18일 성남아트센터 무대에 오른 세계적인 무용단 네덜란드 댄스 씨어터Ⅱ(NDTⅡ)는 이렇게 3가지 단어로 자신들의 공연을 대변했다.
23세 이하의 무용수 16명으로 구성된 NDTⅡ의 움직임에는 한 인간의 내면을 파고드는 고뇌와 만남과 헤어짐, 인간과의 관계에서 오는 허무, 권력의 중심과 변두리 그리고 권력에 편승하는 인간들의 모습이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간다. 때론 무용수의 구체적인 묘사로 움직임의 의미를 잘 알 수 있기도 하지만 공연 전반에 걸쳐 무용수 각자의 추상적인 움직임들을 연결 연결해야 비로소 그 움직임의 의미를 떠올릴 수 있게 한다.
‘3인 3색’
이날 공연도 3부분으로 나뉘어 3명의 안무가가 그들만의 독특한 예술 세계를 펼쳐 보였다.
지리 킬리안의 ‘슬리프리스(Sleepless)’. NDT의 예술고문 겸 상임안무가로 활동하고 있는 지리 킬리안은 음표 하나라도 놓치지 않는 정교함과 단순하면서도 효과적인 무대장치와 조명으로 인간의 심연을 탐구했다.
갈등하는 듯 보이는 한 여인의 신비한 그림자놀이로 시작하는 슬리프리스 역시 무대 위에 설치된 여덟 조각의 천을 두고 세 쌍의 남녀 무용수가 무척 그로테스크한 방식으로 등장했다가 퇴장한다. 세 쌍은 몽환적인, 그러나 극도로 정교하게 계산된 움직임으로 인간의 심연을 추상화했다. 마지막 장면은 처음과 같이 혼자 남은 여인이 우울한 그림자놀이와 함께 천의 틈 사이로 사라지는 장면으로 마치 삶의 순환을 암시하는 듯했다.
한스 반 마넨의 ‘심플 씽즈(Simple Things)’. 네덜란드 국립 발레단의 상임안무가를 역임한 한스 반 마넨은 무용수의 추상적인 움직임에 집중하면서도 그들의 관계에 주목했다. 짝짓기를 위한 몸짓으로 보이는 두 남자 무용수의 경쾌한 움직임에 이어 여자 무용수가 하나 둘 등장해 두 쌍은 행복한 춤을 춘다. 이들 남녀 두 쌍은 즐거운 시간을 보내지만 어느 순간 여자 무용수들은 남자 곁을 떠난다. 또다시 처음처럼 두 남자 무용수만 무대에 남겨지지만 그들의 모습은 처음과 같지 않다. 허무가 밀려오는 외로움에 사로잡힌다. 처음과 똑같은 춤을 추는 두 남자 무용수의 모습에서 어딘지 모를 고독감과 벗어나고픈 몸부림이 느껴졌다.
마지막 작품은 오하드 나하린의 ‘마이너스 16(Minus 16)’. 언제나 힘이 넘치고 에너지가 충만한 안무로 유명한 오하드 나하린은 이 작품을 통해 권력에 편승하지 못하는 ‘주변인’의 모습을 보여준다. 처음부터 정장 차림의 무용수 15명이 반월형으로 배치된 의자에 앉아 마치 파도타기를 하는 움직임을 보이는가 하면 앞으로 엎어지고 옷을 벗어 던지는 등 긴장감과 통렬한 감정을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15명의 무용수 중 가장 끝에 앉은 무용수는 넘어져도 더 고통스럽게 넘어지고, 옷도 벗지 못한다. 반면 중앙에 앉은 무용수는 지도자(권력)의 모습을 보여준다. 계속해서 반복되는 그들의 모습은 권력관계 속에서 쳇바퀴 돌듯 살아가고 있는 현대인의 자화상처럼 느껴졌다.
/윤철원기자 ycw@kgib.co.kr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