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필하모닉 정기연주회
“밖은 봄이지만 가을을 느껴보는 연주곡들도 재미있을 것 같지 않나요.”
가늘게 이슬비가 내리던 지난 4월25일 늦은 8시, 고양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고양 고양어울림누리 어울림극장에서 제21회 정기연주회로 마련한 ‘해설이 있는 낭만주의 음악여행’의 첫 시리즈는 독일 낭만주의 숨결 속으로의 여행으로 가을 정취가 물씬 풍기는 독일 낭만주의 음악들로 채워졌다.
고양지역에서 나름대로 영역을 구축해 오고 있는 고양필하모닉오케스트라가 지난해 5차례에 걸쳐 연주한 ‘베토벤’ 교향곡 시리즈에 이어 올해 그 맥을 이어받아 낭만주의 음악으로 테마를 정하고 첫 기획한 공연이었다.
이날 공연은 1820~1900년 독일에서 비롯된 유럽 음악의 경향인 낭만파 클래식 음악 중 독일 낭만파 작곡가들의 명곡만을 선정해 지휘자 안현성의 맛깔스런 해설과 곁들여 관객들과 낭만에 젖어보는 시간으로 진행됐다.
감성적이고 섬세한 연주로 정평이 나있는 바이올리니스트 김영준(서울시립대 교수)이 부천필과 협연하는 무대도 마련돼 낭만주의 음악을 만끽할 수 있었다.
연주는 베버의 오페라 ‘마탄의 사수(원명 자유의 사수·Der Freischutz)’ 서곡으로 시작됐다. 연주에 앞서 안현성 지휘자가 인사말과 함께 곡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해줘 관객들의 이해를 도왔고, 단원들도 비교적 균형감 있는 연주로 목가적인 선율을 선사했다. 다만 금관파트의 불안한 출발과 트롬펫과 호른의 돌출하는 듯한 느낌 등 음악적으로 정돈되지 않은 느낌을 준 것은 아쉬운 부분이었다.
두 번째 곡은 브르흐의 바이올린협주곡 제1번 사단조 작품 26으로 바이올리니스트 김영준의 협연으로 연주됐다.
오케스트라의 조용한 서주부의 연주에 이어 독주 바이올린의 자유롭고 정열적인 서창풍의 멜로디로 시작하는 1악장은 아련한 옛 추억을 떠오르게 하는듯 했고, 꿈속을 걷는듯한 멜로디의 2악장 아다지오와 집시풍의 선율과 리듬의 3악장 알레그로는 충만한 감성으로 표현해냈다.
김영준의 협주는 약간은 힘이 모자란 듯한 느낌과 함께 그만의 특색을 보여주지 못한 채 고양필의 연주에 묻혀버리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고양필이 1악장의 격정적인 부분을 연주하고 지나간 뒤 바이올린 협연이 뒤따라 오는 1악장 중간부분에서는 정작 바이올린의 독주가 빛나야 하나 그렇지 못하고 밋밋하게 흘러버렸다. 꿈속을 걷는듯한 낭만주의 색채가 잘 드러나는 2악장 초반 감정을 끌어올리는 부분에서도 격정적인 제스처가 없어 관객들의 귀와 시선을 전혀 끌어들이지 못해 아쉬움으로 남았다.
인터미션 후 마지막 곡으로 브람스의 교향곡 제4번 마단조 작품 98이 연주됐다. 이 곡은 약간 지루하다는 느낌을 주기도 하는 곡이지만 외롭거나 쓸쓸할 때 듣기 좋은 곳으로 이날 연주회 주제와도 맞아떨어지는 곡 선택이었다.
만추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1악장, 호른으로 시작하는 꿈 속같은 멜로디의 2악장에선 감미로운 연주로 마치 꿈속 공원을 걷는듯한 한가로움을 느끼게 했고, 아이들이 장난치는 즐거운 광경이 떠오르는 3악장과 금관의 화려함이 있고 웅장하고 장엄한 분위기의 4악장까지 잘 소화해냈다.
하지만 연주하는동안 금관파트가 지나칠 정도로 돌출하는듯한 연주를 곳곳에서 노출했고, 2악장에선 호른이 불안정 호흡을 보여 전체적으로 오케스트라가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준 것은 안타까웠다. 목관파트의 부드러움과 섬세한 표현들이 빛을 잃을 정도여서 아쉬움이 더 컸다. 이같은 아쉬움 속에서도 관객들은 뜨거운 박수와 환호성으로 이들의 연주에 수차례 앵콜을 요청하며 화답했다.
고양필이 준비한 곡을 모두 연주했을 때 관객들은 수차례 커튼콜과 ‘앵콜’을 외쳤고, 안현성 지휘자는 지휘를 공부하기 전 전공한 트롬펫을 들고 나와 즉석에서 ‘밤하늘의 트롬펫’을 앵콜곡으로 연주하는 깜짝 이벤트를 연출, 관객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했고 이어 객석의 박수소리에 맞춰 오페라 카르멘의 전주곡을 연주하며 즐거운 기분으로 연주회를 마무리했다.
지난해 아람누리에서 열린 오페라 콘서트 이후 1년만에 다시 만난 고양필은 여전히 부족한 면을 노출하기도 했지만 빗속에 공연장을 찾은 많은 관객들에게 낭만주의 음악들과 즐거움을 함께 선사했다.
비오는 봄날 낭만파 음악을 듣는 것도 색다른 맛이 있었고 다소 엉뚱하게 가을 분위기의 곡들로 채워졌지만 낭만에 젖어볼 수 있었던 좋은 공연이었다.
/이종현기자 major01@kgib.co.kr
<전문가비평> 합리적인 작품해석 성공 전문가비평>
지난 4월 25일 고양어울림누리 어울림극장에서 열린 고양필하모닉오케스트라(이하 고양필)의 제21회 정기연주회는 ‘해설이 있는 낭만주의 음악여행시리즈’로 기획되었다. 이른바 ‘해설이 있는 음악회’의 형식은 그동안 클래식 음악의 문턱을 낮추는 데에 기여를 했지만 한편으로는 그 자체가 유행이 되면서 점차 매너리즘에 빠지는 경향을 드러내기도 한다. 이번 고양필의 정기연주회도 작품과 작곡가에 대한 소개를 중심으로 해설을 꾸몄고 이를 통해 어느 정도 무대와 객석의 분위기를 부드럽게 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 내용 면에서는 연주회 팸플릿에 수록될 만한 일반적 내용을 중언부언하는 것과 별다름을 찾기 어려웠는데 이러한 점은 타성에 젖은 음악회 해설의 한 면을 보여주는 것 같아 아쉽게 느껴졌다. 클래식 음악회의 아우라가 일종의 허위의식과 닿아 있다고 비판되더라도 그것으로부터 형성되는 고유한 예술적 향수와 미의식 또한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해설이 있는 음악회’에서는 그 형식 때문에 이러한 아우라가 상당 부분 제거되기 마련이므로 해설은 음악의 진지한 감상과 이해를 위해 더 많은 역할을 해야만 한다. 음악회의 해설이 단지 해설을 위한 해설이 아니라 어떠한 목적과 효과를 위해 등장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 속에서 보다 치밀하게 구성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음악회의 사족에 불과할 것이다.
이날 공연의 첫곡인 베버의 ‘마탄의 사수’ 서곡은 비교적 안정적이고 균형감있게 진행된 연주였다. 아다지오 서주에서 현 파트는 다이나믹의 점차적 변화를 잘 살려내었고 호른은 한 두 번의 불안한 어택에도 불구하고 네 성부의 무난한 호흡 속에서 목가적 선율을 노래될 수 있게 하였다. 이어진 비바체에서는 활력이 조금 부족했으나 차분하게 각 부분을 구성하며 작품의 윤곽을 깔끔하게 그려내었다. 다만 충분한 긴장감을 갖고 도입되지 못한 C단조 주제의 포르티시모에서 주선율 또한 관파트의 수직화음에 묻혀버렸던 점, 그리고 E♭장조 주제가 다소 경직되게 제시된 점은 아쉬운 부분이다. 이 부분들은 클래식 음악에 익숙지 않은 관객의 귀를 집중시킬 수 있는 지점이기 때문에 보다 음악적으로 정돈되고 강조되어 처리되었다면 청중들에게 더 큰 호소력을 가질 수 있었을 것이다.
이어서 바이올리니스트 김영준의 협연으로 브루흐의 ‘바이올린 협주곡 1번’이 연주되었다. 김영준은 이 곡을 그의 지명도만큼이나 능숙하게 펼쳐내었는데, 냉정한 연주 자세와는 대조적으로 매 악구에 잠재되어 있는 표현을 수면 위로 끌어내며 매 악장을 충만한 감성으로 채워 나갔다. 1악장의 즉흥적 패시지들에서는 긴장감을 충분히 형성하며 악곡에 극적인 추진력을 부여했고, 2악장에서는 너무 느리지 않은 템포 속에서 로맨틱한 선율을 굴곡있게 드러내면서 악장의 몽상적인 분위기를 주도했다. 3악장에서는 수직 화음과 레가토를 특징적인 텍스쳐로 대조시키며 주제를 선명하게 형상화시켰고 피날레의 생동감 또한 살아있었으나 긴장감에 비해 이완력이 부족하여 다소 피로한 느낌을 주기도 했다. 고양필 역시 대체적으로 독주와 호흡을 무난하게 맞춰 나간 편이었고 전반적으로 작품에 대한 합리적인 해석이 바탕이 된 연주를 들려 주었다. 그러나 군데군데 앙상블의 균형을 깨뜨리는 일부 관 파트의 음량은 거슬리는 부분이었고, 이러한 현상은 인터미션 이후 이어진 브람스 ‘교향곡 4번’에서도 지속되었다.
이날 고양필의 연주에서는 금관 파트의 내성이 과도하게 돌출되는 경향이 있었는데 스타일이나 해석의 차이라고 하기에도 지나칠 정도였다. 브람스 교향곡에서 이러한 문제는 곳곳에서 드러났고 여기에 수 차례 호른의 불안정한 음정이 더해져 전체적으로 파트간의 불균형과 정돈되지 못한 음색의 원인이 되었다. 단정하게 정돈된 현 파트의 움직임과 조화를 이루지 못한 것이 아쉽게 느껴지는 시간이었다. 그러나 2악장에서 현과 목관의 섬세한 표현과 3악장의 에너지와 역동성은 인상적이었고 4악장에서 플룻 솔로로부터 이어지는 피아니시모의 긴장도 귀 기울일 만한 부분이었다. 물론 좀더 정돈된 앙상블로 파사칼리아의 변주적 구조와 비극적 분위기가 드러날 수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
일부 문제 때문에 브람스 ‘교향곡 4번’은 청중들에게 큰 만족을 주기 어려웠지만 앵콜로 마련된 지휘자 안현성의 트럼펫 연주와 객석의 박수 소리에 맞춰 ‘키치스럽게’ 연주한 ‘카르멘 전주곡’을 통해 즐거운 기분으로 음악회를 마무리할 수 있었다.
고양필은 1999년 창단 후 만 10년의 기간 동안 지역 안팎에서의 꾸준한 연주로 고양시를 대표하는 문화예술단체가 되었다. 고양필의 연주회에 참석할 때마다 오케스트라의 탄탄한 기량을 확인할 수 있지만 이와 함께 약간의 아쉬움을 갖고 돌아가게 된다. 지역을 넘어 한국을 대표하는 오케스트라가 되기 위한 도약의 과정을 기대해 본다.
/장인종 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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