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고·웃고…관객과 함께 호흡
“순이야. 그토록 사랑하는 딸자식 하나 온전하게 지켜주지 못하는 이 애비를 용서해라. 보고 싶구나. 먼 훗날 수치스런 역사가 너의 잘못이 아님을 깨달았을 때 모든 것 잊어버리고 순이가 아닌 다른 여자로 살아가거라.”
해방이 되어 고향을 찾은 딸자식을 보고도 얼굴을 돌려야만 했던 우리 아버지의 진한 슬픔이, 성황당 뒤에 숨어 그리워 하던 아버지 앞에 차마 나서지 못하는 우리의 딸 순이, 가슴 속 깊이 묻어두었던 한(恨)이 온전히 가슴 속으로 전달돼 오는 것 같았다.
경기도립극단이 지난 9일부터 11일까지 경기도문화의전당 대공연장 무대에 올린 악극 ‘꿈에 본 내고향’은 힘없는 민족의 설움과 애환을 ‘한’이란 정서에 담아 사실적으로 그려내 공연장을 찾은 관객들의 눈물샘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도립극단은 일제하 종군위안부로 끌려간 우리의 누이들, 우리 아버지, 어머니들이 가슴 속 깊이 묻어둔 아픔을 악극형식으로 풀어냈다. 극은 암울했던 일제시대, 광복 등 혼란했던 시대적 상황을 배경으로 종군위안부로 끌려간 주인공 ‘순이’를 통해 종군위안부 여성의 아픈 역사와 ‘한’을 잔잔하게 때로는 격정적으로 그려나갔고, 극 중간중간 막간극 형식을 첨가해 관객들을 울리고 웃겼다.
사실 도립극단이 악극을 무대에 올린다고 했을 때 걱정부터 앞섰다. 정통 악극을 해보지 않았고 무대도 소극장에서 대극장으로 바꾼데다 연습시간까지 짧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기우는 공연을 보면서 말끔히 사라졌다. 주인공 한범희, 우정원, 이승철, 김미옥, 이찬우, 김종칠, 강상규, 강성해 등 도립극단 중견배우들이 탄탄한 연기력을 바탕으로 극에 힘을 실어주었고, 섹시춤(?)과 트롯 노래로 관객들을 울고 웃게 했다. 특히 종군위안부 생활을 그린 장면에서는 리얼한 연기가 극에 사실감을 불어넣어 관객들을 숨죽이게 했고, 곳곳에서 눈물을 훔치게 했다. 여기에 악극단의 막간극 ‘홍도야 울지마라’에서 홍도오빠 역의 심완준과 홍도 역의 추연주는 공연장을 찾은 60~70대 어르신들의 옛 향수를 불러일으켰고, 코믹연기는 젊은 관객들의 웃음을 자아내게 했다. 또한 배우들의 트로트 노래실력도 유감없이 발휘돼 관객들이 박수를 치며 따라부르는 유쾌한 자리를 만들었다. 유쾌한 자리는 정겨운 트로트 가요로 엔딩인사 하는 즐거운 이벤트로 흥겨움 속에 마무리돼 됐다.
다만 몇가지 아쉬운 점도 있다. 관객들이 ‘한’이란 정서에 몰입하려 하면 장면이 바뀌면서 정서가 온전히 객석까지 전달되지 못했다. 또한 필리핀 종군위안부 생활을 그린 장면에서는 리얼한 연기는 돋보였으나 극의 3분의 1을 차지하면서도 순이의 애환은 제대로 담아내지 못했다. 여기에 철민과 순이의 애틋한 사랑은 찾기 힘들어 관객들에게 전혀 어필하지 못했다. 가장 큰 아쉬움은 대극장 무대가 객석과 멀리 떨어져 있어 배우들의 연기를 피부 가까이 느끼기에는 충분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몇가지 아쉬움 속에서도 오랜만에 도립극단이 새롭게 시도하는 악극과 즐겁게 만날 수 있어 기분 좋은 시간이었다.
/이종현기자 major01@kg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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