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이 벌써 그립습니다” 박경리 ‘토지’ 국악으로 만난다

경기도립국악단  ‘토지’ 공연

고(故) 박경리 선생의 대하소설 ‘토지’가 경기도립국악단의 웅장한 국악 관현악으로 승화돼 무대에 올려진다.

도립국악단(예술감독 김영동)은 고(故) 박경리 선생의 대하소설 ‘토지’를 함축한 노랫말을 음악극으로 재창조, 경기일보사 후원으로 오는 23일 오후 7시30분 도문화의전당 대공연장 무대에 올려진다.

특히 이번 무대는 지난 5일 타계한 故 박경리 선생을 애도하는 뜻을 담아 추모음악제로 꾸며지며, 고인에 대한 향수와 그의 작품에 대한 숭고한 정신, 전무후무한 우리 문학의 대서사시를 고스란히 담아낼 예정이다.

공연은 김영동 감독의 지휘로 다른 연주 프로그램 없이 이승하 시인의 노랫말로 압축한 대본에 우리의 국악을 입힌 순수 ‘토지’ 음악만을 국악 관현악과 솔리스트의 연주로 60여분간 진행된다.

음악극 ‘토지’는 김 감독이 지난 1995년 토지 완간 1주년 및 광복 50주년을 맞아 서양 오페라에 견줄 수 있는 국내 서사음악극을 계획, 이승하 시인의 노랫말에 음악을 입혀 그해 9월5일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직접 지휘한 작품이다.

서울시립국악관현악단, 서울시립합창단, 서울시립가무단, 서울필하모닉 오페라코러스 등 단체들이 모두 참여한 당시 공연은 서양음악에 익숙한 우리 문화계에 신선한 충격을 던진 것은 물론 우리 문화의 세계화를 내딛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평을 받았다.

이번 연주회에서는 소설 ‘토지’ 가운데 제1부와 2부를 축약해 경남 하동 평사리 마을에서 5대째 대지주로 살아가는 최참판댁 며느리가 머슴과 함께 달아나는 것으로 시작해 모두 4막으로 구성했다.

다만 소설이 서희를 중심으로 극이 전개됐다면 이번 ‘토지’는 서희는 마지막 부분에 등장할 뿐 소설 속 인물 모두가 주인공으로 표현돼 극중 개개인의 특성이 음악으로 표출되는 다양한 음색을 느낄 수 있다.

제1경은 어머니 별당아씨와 머슴이 달아나자 어린 서희가 눈물과 앙탈로 주변사람들을 들볶기 시작하고, 이를 바탕으로 김평산이 농투성이(농부를 낮잡아 부르는 말)들의 설움을 부추겨 당주 최치수를 교살한다. 이어 수려한 용모의 용이와 무당의 딸 월선의 애달픈 사연과 용이의 처 강청댁의 투기가 분위기를 고조시킨다.

제2경에서는 머슴들이 최참판댁 고방을 부수고 식량을 가져간 뒤 지리산으로 들어가 동학의 잔당이 되는 것을, 제3경은 최치수에 이어 윤씨부인마저 목숨을 잃자 서희가 조준구(서희의 외가쪽 먼 친척)에게 재산을 빼앗기고 북간도로 떠나는 내용을 묘사하고 있다. 마지막 4경에서는 할머니 윤씨부인이 남겨준 보석을 팔아 사업을 시작, 간도에서 부호가 된 서희가 길상을 평생 반려자로 삼고, 조준구에게 빼앗긴 땅을 되찾으면서 고국으로 돌아오는 ‘권선징악’의 극적 묘미를 표현한다. 만 7세 이상 관람 가능. R석 2만원, S석 1만원, A석(청소년석) 5천원.

문의 도립국악당(031)289-6400

/임명수기자 mslim@kgib.co.kr

<대하소설 ‘토지’는…>

집필 기간만 26년 걸린 역작

대하소설 ‘토지’는 고(故) 박경리씨가 1969년부터 집필한 대하소설로 갑오년 동학농민혁명과 갑오개혁, 을미의병(1895년) 등을 거쳐 1897년 한가위로부터 극이 전개된다.

이후 일제의 본격적인 식민지배와 독립투쟁, 2차 세계대전(일명 태평양 전쟁), 그리고 광복의 기쁨을 맛본 1945년 8월15일까지의 처절하고 긴박했던 한국 근대사를 시간적 배경으로 하고 있다.

또 공간적 배경으로는 경남 하동 평사리라는 전형적인 한국 농촌을 시작으로 지리산과 서울, 간도, 러시아, 일본, 부산, 진주 등에 걸쳐 광활한 국내외적 공간을 배경으로 한 작품이다.

작품 속 인물은 만석꾼 대지주 최참판댁의 마지막 당주인 최치수와 그의 고명딸 서희를 주인공으로 700여명의 인물이 등장해 토지의 상실과 회복을 둘러싼 과정, 그 속에서 벌어지는 암투와 민족애, 가정사 등 인간사의 오욕칠정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토지’는 26년간의 집필기간, 원고지 3만매가 넘는 분량의 역사와 운명의 대서사시를 담고 있으며 한국인 삶의 터전과 그 속에서 개성적 인물들의 다양한 운명적 삶과 고난, 의지가 민족적인 삶으로 확대된 한국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임명수기자 mslim@kgib.co.kr

인터뷰/ 김 영 동 예술감독

“서양 뮤지컬의 범람속에서

문화정체성 뿌리 찾을것”

“서구 대형 오페라나 브로드웨이 뮤지컬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 국내 공연계에 우리 문화의 정체성을 찾고 싶었습니다.” 1995년 박경리 선생의 대하소설 ‘토지’를 축약한 노랫말을 음악극으로 작곡해 무대에 올려 화제가 된 도립국악단 김영동 예술감독은 우리 것의 소중함을 강조한다. 그는 “서양 뮤지컬이 만연한 무대공연 작품의 범람 속에서 ‘토지’를 통해 박 선생의 역작을 기리고 우리 문학의 중심이요 세계적으로도 그 유례를 찾을 수 없는 대서사시가 우리의 음악으로 재탄생되는 계기를 마련했다”고 ‘토지’의 소회를 밝혔다. 다음은 김 감독과의 일문일답.

-많은 작품 중에 ‘토지’를 선택한 배경은.

▲故 박경리 선생이 25년간 집필하신 대하소설 ‘토지’는 일제 강점기 시절 우리 서민들의 끈질긴 삶과 잃어버린 땅을 되찾고자 하는 강한 집념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또 선생의 사위인 김지하 시인과 절친한 관계여서 평소 왕래가 잦았던 것이 계기가 됐고, 선생께 음악으로 표현하고 싶다고 간청했는데 흔쾌히 승낙해 주셔서 가능했다.

-소설의 방대한 분량을 함축해 음악극으로 연출하기 쉽지 않았을 텐데.

▲그렇다. 5부 16권의 분량을 1995년에는 1시간, 2004년에는 1시간 40분으로 축약했지만 당시 많은 어려움이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소설은 서희를 중심으로 극을 전개했지만 이번 공연은 서희가 아닌 역사와 소설 속 등장인물 700명 모두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합창을 많이 삽입하는 등 거시적 측면에서 접근했다. 다만 투자만 이뤄지고 우리의 문화적 현실이 받아 들여지면 세계적 오페라 처럼 3~4일로 나눠 연속성 있게 작품을 만들고 싶은 포부를 간직하고 있다. 이번 작품은 장기공연은 물론 오페라, 뮤지컬, 가극 등 모든 장르로 표현이 가능하도록 기획해 항상 가능성을 열어 두고 있다.

-박경리 선생 타계의 심정과 마지막으로 작품에 대한 평가를 내린다면.

▲첫 공연과 두 번째 공연 모두 박 선생께서 직접 관람하셔서 “서희가 중심이 되지 않아 좋았다”는 평가를 내려주셨는데 그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다. 이번 공연에서도 함께 계셨으면 좋았으련만 안타까운 마음뿐이다. 음악극 ‘토지’는 우리 것을 소재로, 우리의 악기로 표현한 우리의 것이기 때문에 경기도 만의 콘텐츠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제도적인 지원이 필요하며, 나아가 국가적 브랜드로 격상시켜야 된다고 생각한다. 내가 만든 것이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의 것을 담고 있다면 적극적으로 지원해 전세계에 알려야 한다. 외국인들은 우리의 음악을 접하고 감동을 받는데 왜 우리는 국악이라 하면 외면하는지 모르겠다. 아쉬운 부분이다.

/임명수기자 mslim@kg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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