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상병과 함께한 ‘즐거운 소풍’
입가에 흐뭇스레 진 엷은 웃음은,/삶과 죽음 가에 살짝 걸린/실오라기 외나무 다리// 새는 그 다리 위를 날아간다/우정과 결심, 그리고 용기/그런 양 나래 저으며…//풀잎 슬몃 건드리는 바람이기보다/그 뿌리에 와 닿아 주는 바람/이 가슴팍에서 빛나는 햇발//오늘도 가고 내일도 갈/풀밭 길에서/입가 언덕에 맑은 웃음 몇번인가는…(천상병의 ‘미소’ 중에서)
새벽빛과 아침이슬, 붉은 노을이 가득한 세상을 그리워했고, 짧지만 즐거운 ‘소풍’처럼 한 세상 어린아이와 같은 마음으로 아름다운 세상살이를 즐겼던 사람 천상시인 천상병(1930~1993년).
지난 26일 오후 5시 의정부예술의전당 대공연장에선 ‘푸른 것만이 아니다(천상병 시인의 시)’란 주제로 ‘시가 흐르는 천상음악회’가 열렸다. 공연장 밖에서 내리는 빗방울이 무대에서도 내리고 있었고 화면 가득히 천 시인의 ‘미소’ 원고가 배경으로 비쳐지고 있었다. 천 시인의 어린아이 같은 웃음소리와 추억의 사진들이 오버랩 영상으로 비춰지며 시작한 이날 행사는 천 시인을 기리는 축제만이 아니라 그가 품었던 맑은 마음과 시선을 함께 호흡하는 자리였다.
2시간 30분 가까이 시와 음악이 함께 한 자리에는 천상병 시인의 시를 아끼고 그리워 하는 사람들이 객석을 가득 채웠다. 객석을 가득 메운 관객들은 천상병 시인의 시를 읊고 낭송하며 그의 시를 음미했고, 초대가수들의 음악에 푹 빠져 박수치고 웃고 즐기며 하늘나라 소풍을 즐기는 천 시인과 함께 했다.
이날 사회를 맡은 박나림(전 MBC 아나운서)은 시종일관 편안한 분위기로 2시간이 훌쩍 넘는 음악회를 이끌었다. 첫 무대는 한·중·일 여성5인조 퓨전국악그룹 ‘율려’의 퓨전국악곡으로 문을 열었다. 이어 김도향이 무대에 올라 ‘난 바보처럼 살았군요’ ‘My way’ ‘꽃보다 사람이 아름다워’를 열창하자 40~50대 관객들은 너나 할것 없이 객석에서 일어나 춤추며 박수를 치고 노래를 따라 부르는 등 20대 못지않은 열정을 발산했다. 뜨거운 열기는 지난해 뮤지컬로 선보인 ‘귀천’에 출연한 남녀 주인공이 뮤지컬 넘버 ‘노래하는 새’, ‘귀천’을 불러 천 시인의 삶을 잠시나마 느껴보는 시간으로 잠시 잦아들기도 했다.
아카펠라그룹 ‘아카시아’는 천 시인의 ‘다음’을 아카펠라곡으로 불러 관객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감싸안았고, 새로 의뢰받아 작곡한 ‘푸른 것만이 아니다’는 천상음악회와 맞는 맑고 상쾌한 분위기로 박수치며 따라부르기에 좋았다.
음악회 중간중간 참여한 시낭송도 일품이었다. 천 시인의 시를 영어로 번역해 소개해 온 안토니오 수사(서강대 교수)가 피아노 반주 속에 천 시인의 ‘강물’을 한국어와 영어로 낭송했고, 정옥희 한국예절원 원장의 시 낭송은 잔잔한 감동으로 자리를 빛냈다.
마지막 무대는 신형원과 제자들이 꾸미는 자리였다. 신형원이 ‘개똥벌레’를 부르자 아주머니 관객들은 목청껏 따라불렀고, 자신의 신곡 ‘더 좋은 날’에 이어 제자들과 함께 부른 ‘아름다운 강산’에선 분위기가 최고조에 이르렀다.
이날 공연은 밖에 내리는 촉촉한 봄비와 함께 객석을 가득 메운 관객들의 마음에도 감동으로 촉촉히 내려앉았다. /이종현기자 major01@kg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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