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주 한길갤러리 ‘A Sweet Illusion’…26일부터 전시회
놀이기구가 많지 않았던 시절, 만화경(萬華鏡)은 아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만화경은 길쭉한 3개의 평면거울로 만든다. 한쪽 끝은 젖빛유리로 봉하고, 다른 끝으로 들여다본다. 그 안에 작은 색종이 조각이나 셀룰로이드 조각을 넣어 돌리면 거울에 다양한 모습이 아름답게 비쳤다.
잠자리의 눈은 평균 3만개의 낱눈이 모인 겹눈이다. 카메라 구조와 닮았다는 인간의 눈은 그에 비하면 단순한지도 모른다. 만화경이 펼쳐낸 요지경과 잠자리의 눈은 또다른 세계로 인도한다.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사이에 인간들은 희망과 절망을 오간다. 인간이 지닌 시력 또한 현상에 대한 반영이지 사물의 이면을 투시할 수 없다. 그래서 슈퍼맨과 같은 초인간적인 이상향을 그리는지도 모른다.
작가들은 이러한 환영을 일컫는 일루전(Illusion)에 대해 어떤 반응을 보일까. 쉽게 읽히는 사물과 현상의 경계를 넘어 만화경 같은 세상을 꿈꿀까. 아니면 예술가 특유의 삐뚤게 보기를 과감히 시도할까.
파주 헤이리에 위치한 한길갤러리가 ‘A Sweet Illusion’을 오는 26일부터 다음달 25일까지 기획했다. 그동안 일루전은 현실이 아닌 환영과 착각 정도에 그쳤다. 그러나 이번 전시는 일루전에 자극받은 모든 감각이 동원된다. 단순한 착시를 넘어 작품을 완성해 가는 환상을 비롯해 시각적 환상을 유도한다. 또 작가의 인위적인 연출에 따른 일루전도 펼쳐진다.
전시는 크게 3부분으로 구성됐다. 먼저 ‘Mental Illusion’. 황혜선은 회색톤의 배경에 길거리를 담았다. 그는 시계나 우산, 머그컵, 신발 등 일상의 소품 등을 거리에 등장시키고 둥근 유리구슬인 ‘스노우볼’에 영상작품을 투사했다. ‘그 향기의 기억’이란 영상작품은 눈이 펄펄 내리는 가운데 주인공이 춤을 추는 장면이 나타난다.
박성현은 캡처된 TV화면을 캔버스에 옮겼다. 연속적인 영상의 한 순간은 마치 눈꽃이 날리듯 투박하다. 인화 직전의 필름처럼 강한 단색의 빛깔이 느껴지며, 영상이 아닌 독립된 장면 장면이 강렬한 몽상과 환영을 뿜어낸다.
두번째 ‘Optical Illusion’은 사진과 회화의 경계를 넘나든다. 양연화는 사진과 회화를 병행한다. 액자속 꽃과 과일이 밖에 나와 중첩되고, 그리스 신화 주인공들이 사진이나 그림으로 결합돼 완성된다. 또 사진작가 이경민은 어른거리는 병모양을 통해 회화의 영역에 도전하고, 주도양은 공원이나 쇼핑몰 등의 풍경을 분할 촬영한 후 한 점을 기준으로 360도로 펼쳐진 장면을 보여준다.
마지막 ‘Artificial Illusion’은 작가의 인위적 연출이 개입됐다. 백승우는 풀밭이나 공중전화박스, 지하철 승강장 등에 손가락 크기의 사람인형을 배치하고 사진을 찍었다. ‘리얼 월드(real world)’란 제목의 이면엔 꾸며진 거짓세상이란 사회적 풍자가 깔려 있다.
반면 이민호는 병원 침실과 기찻길, 고철더미 등의 사진을 붙인 여행용 가방을 바닷가나 실내에 놓고 사진을 찍는다. 가방속 사진과 그 배경을 이룬 풍경은 이질적이면서 낯선 곳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또 이경민은 작가 자신이나 지인의 집 내부를 사진으로 찍은 후 네모난 사각틀에 붙여 넣었다. 각종 가구와 옷가지, 시계 등의 사진을 오려붙인 사각틀을 찍은 작품은 실제 공간과 또다른 공간을 넘나든다.
전시를 기획한 강은주 독립큐레이터는 “일루전은 신기루 같은 꿈을 꾸게 하며 유쾌한 상상을 가능케 하는 반면, 인간의 사고·기억·경험에서 출발했다는 점에서 인간의 지각이 불완전한 것일 수 있다는 반증”이라고 말했다. 문의(031)949-9305
/이형복기자 bok@kg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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