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을 향해 비상하는 인간 자화상
무분별한 욕망을 냉정히 질타한 잉에보르크 바흐만 시집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와 70년대 지식인의 암울한 시대상을 첫사랑으로 치환된 이문열의 소설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
‘추락’이란 절대 절망과 ‘날개’란 구원의 메시지가 묘한 흥분을 일으킨다. 인생은 선택의 순간이다. 그 선택이 추락과 날개란 극단을 달리면서 더 큰 고통을 수반하지 않기 위해 사람들은 몸부림치는 지도 모른다.
서양화가 최경숙은 어떤 선택을 했을까. ‘달바라기’를 테마로 펼친 개인전(수원미술전시관 8~14일)은 노란 둥근 달이 등장하고, 고양이와 까마귀, 달팽이 등이 화면을 채운다. 이들은 모두 달을 바라본다. 무슨 소원을 빌까. 날개가 달린 까마귀는 길다란 다리를 곧추 세우고 달을 쳐다본다.
날짐승이 발을 딛고 있는 모습은 일종의 상실감이다. 들판이나 지붕 위에 고즈넉히 앉아 달을 쳐다보는 고양이의 뒷 모습에선 연민마저 느껴진다. 작가가 등장시킨 달들은 지상의 세계를 점령하지 않는다. 지상의 형체는 실루엣처럼 드러나고 밝은 달은 포근히 하늘에 걸려 있다.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은 채 조화와 균형을 이룬다.
바라볼 대상이 있다는 것은 ‘희망’이 있다는 것. 그래서 최경숙의 작품은 침울하지 않다. 비록 쳇바퀴를 돌리는 고양이와 다리만 길게 늘린 채 날지 못하는 까마귀일지라도 달을 향해 비상하려는 꿈을 지녔기 때문이다.
우리는 무슨 꿈을 꾸며 사는가. 어둠 속의 빛은 더욱 선명하고 익숙했던 것을 낯설게 한다. 처음 떠난 여행의 흥분과 새로운 것들에 대한 불안이 교차하면서 좀 더 색다른 것을 추구하는 인간의 욕망. 이는 추락과 상승을 반복하는 어리석음이 아닌, 꿈꾸는 자의 진정한 행복임을 작가는 넌즈시 일러준다.
/이형복기자 bok@kgib.co.kr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