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릿한 포구와 멀리 수인선 기차가 지나갈 것 같은 그때
시화호, 반월공단 등 근현대 시대의 산업현장과 도시 개발의 중심에 있는 안산은 원래 고구려의 장항구현 또는 고사야홀차현인데, 고려 초기에 안산현으로 고쳤고, 현종 9년(1018)에 수원의 속현이 됐다.
충렬왕 34년(1308)에 덕종, 정종, 문종이 탄생한 명예로운 고을이라하여 안산군으로 승격되었고, 이후 지사의 다스림을 받았다.
고종 32년(1895)에 인천부에 딸린 한 군이 되었고, 다음해에 경기도의 4등군이 되었다가 1914년에 시흥, 과천, 안산의 3개군이 시흥군이란 명칭으로 통합됐다.
그후 1976년 시흥군의 수암면, 군자면과 화성군의 반월면 일부가 반월신공업도시로 조성되어지면서 해마다 인구가 증가, 1986년 1월 1일 시승격과 함께 안산의 뿌리를 찾아 안산시로 부르게 됐다.
시화간척지가 개발되면서 공단은 물론 학교, 주거지 등이 입주, 대도시로 성장했다. 갯벌이 도로가 되고 아파트가 되고, 학교가 되고, 비릿한 내음과 자그마한 어선들이 들어 있던 포구에 배들이 사라지고 현대식 상가가 들어선 도시로 발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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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비릿한 내음이 있는 포구과 질퍽한 갯벌, 짠바람이 불어 올것만 같은 그 때의 모습이 가끔 그립다. 그리운 그시절로 들어가 보자.
/글 안산=구재원기자·자료제공 안산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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