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니 롤린스 "별처럼 높아지려고 노력했다"

5월 내한공연 앞두고 전화 인터뷰

(연합뉴스) "음악적으로 별처럼 높은 위치에 도달하려고 애써 왔어요. 노력해야 할 부분이 여전히 많이 남아 있지요. 그래서 매일 하는 연습이 늘 새롭습니다. 제가 과거에 훌륭한 연주를 했다고 해서 내일과 모레에도 그런 연주를 할 것이라고 장담할 수는 없습니다."

재즈 테너 색소폰 연주자 소니 롤린스(Sonny Rollins.78)는 최근 몇 년간 한국을 찾은 대중문화계 스타 중에서 최고의 거장으로 꼽힌다.

그는 1948년 첫 공식 음반을 녹음한 후 반세기 넘는 세월 동안 마일스 데이비스, 콜맨 호킨스, 델로이너스 몽크 등 전설적인 대가들과 연주실력을 겨루며 현대 재즈사의 한 장을 담당해 왔다. '재즈북(The Jazz Book)' '재즈총론(Jazz Styles)' 등 유명 재즈 입문서들은 상당 부분을 할애해 그의 활약상을 기록하고 있다.

이런 그에게서 "아직도 배울 부분이 많다"는 말을 들으니 놀라웠다. 80세에 가까운 고령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하루에 2~3시간씩 연습에 매달리고 있다는 그는 "오랜 세월 나를 지지해 준 한국 관객에게 감사하며, 한국 공연에서는 독창적이고 독특한 나만의 스타일을 보여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5월 내한공연을 앞두고 연합뉴스와 가진 전화 인터뷰에서 시종 진지하고 성실한 태도를 보였다. 정확한 의미를 전달하기 위해 마땅한 단어를 일일이 골라가며 말을 이어가듯 질문마다 혼신의 힘을 다해 대답하는 모습이었다. 음악을 대하는 진진한 자세가 대화에도 그대로 전달되는 느낌이었다.

롤린스는 비밥, 하드밥 등 정통 재즈의 전성기를 이끈 인물이다. 1951년 자신의 밴드를 만든 후 '무빙 아웃(Moving Out)' '워크 타임(Work Time)' 등으로 이름을 날렸고, 1956년에는 재즈사상 불후의 명반으로 꼽히는 '색소폰 콜로서스(Saxophone Colossus)'를 발표했다. 이 음반에는 재즈 스탠더드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세인트 토머스(St. Thomas)'가 수록됐다.

재즈의 황금기를 누린 '살아 있는 전설'이자 '재즈의 신'으로 여겨지지만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새로운 도전을 하고 있다. 1957년 '웨이 아웃 웨스트(Way Out West)'에서는 피아노 세션 없는 연주로 주목받았고, 1985년 발매작에서는 리듬 세션이 전혀 없는 연주를 시도해 후배 뮤지션으로부터 두터운 존경을 받았다.

2001년과 2005년에는 그래미상을 수상했다. 특히 2005년 수상작 '위드아웃 어 송(Without A Song)'은 "상처받은 이들을 음악으로 치유하고 싶다"며 9ㆍ11 테러 직후 연 공연 실황을 담고 있다.

그는 '연습 벌레'로도 잘 알려졌다. 한창 인기를 모으던 1950년대 말 갑자기 무대 위의 공연을 중단한 후 뉴욕 윌리엄스버그 다리에서 혼자 연주 연습을 한 일화는 유명하다.

처음 내한하는 그는 서울 역삼동 LG아트센터에서 5월23일 오후 8시와 25일 오후 7시 두 차례 공연을 펼친다. 65장의 정규 음반을 발표한 그는 2006년작 '소니, 플리스(Sonny, Please)'의 수록곡을 이번 공연의 주요 레퍼토리로 삼을 예정이다.

이하 일문일답.

--첫 한국공연이다.

▲한국 관객에게 사랑을 전하고 싶다. 오랜 세월 나를 지지해 준 한국 관객에게 감사하다. 한국 공연을 갈망하고 있으며, 한국 갈 날을 기다리고 있다.

공연에서는 재즈의 기쁨과 즉흥성을 즐기기를 바란다. 한국인이 재즈를 좋아하며 훌륭한 한국 재즈 뮤지션이 많다는 것을 안다. 공연에서는 나만의 재즈 스타일을 보여 줄 것이다. 독창적이고 독특한 롤린스만의 스타일이다.

--재즈의 매력은.

▲재즈는 인생의 여러 순간을 섞어 새로운 것으로 만들어낸 것이다. 인생에서는 다음 순간을 예측할 수 없다. 재즈도 마찬가지다. 자유의지에 의한 연주이며, 리허설이 없다. 내게 재즈는 실제 인생을 표현하는 것이다. 무엇이 발생할지 모르는 점, 그것이 재즈의 아름다움이다.

--테너 색소폰의 장점은.

▲삼촌이 부는 색소폰을 듣고 자랐다. 색소폰은 다양한 것을 연주할 수 있다. 다른 악기와 비교할 때 사운드와 감동을 변형하기 쉽다.

--기억에 남는 공연은.

▲최근 공연 중에서는 지난해 여름 이탈리아에서 한 공연이 내가 좋아하는 형태로 진행됐다. 재즈는 인생과 같아서 매번 같은 음악이 나오지는 않는다. 모든 것이 잘 이뤄진 좋은 공연은 1년에 2~3차례 정도 나오는 것 같다. 한국에서도 이런 공연이 펼쳐졌으면 좋겠다. 사실 나는 북한도 방문하기를 바랐다.

--거장 존 콜트레인과 라이벌로 비교된다.

▲라이벌 맞다. 서로 강력한 힘을 가진 뮤지션은 늘 어떤 의미에서 라이벌로 여겨진다. 레스터 영, 콜맨 호킨스 등도 서로 다른 식으로 연주해 라이벌이라고 평가받는다. 나도 콜트레인과 연주 스타일은 다르다.

재즈 역사상 가장 위대한 뮤지션인 콜트레인과 함께 연주하고 어울릴 수 있었다는 점은 내게 큰 영광이다. 팬이 볼 때는 두 사람이 라이벌이었겠지만 사실 우리는 좋은 친구였다. 그는 나를 위해 '라이크 소니(Like Sonny)'라는 곡도 작곡했다. 나에 대한 애정을 담은 감동적인 곡이다. 이 곡을 들으면 당시 우리가 함께 했던 시간들이 생각나 눈물이 고인다.

--당신에게 음악적으로 크게 영향을 준 사람은.

▲콜맨 호킨스다. 그는 위대한 색소폰 연주자로 '테너 색소폰의 아버지'로 불린다. 그를 보며 나도 내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배웠다. 음악적으로도 그는 나에게 큰 영향을 줬다.

--기뻤던 순간과 좌절했던 순간은.

▲늘 최고 수준의 음악을 연주하려고 애썼다. 목표를 높게 잡았다. 음악적으로 별처럼 높은 위치에 도달하려고 노력했다. 그래서 그 수준에 도달하지 못하면 음악가로서 종종 좌절감을 느꼈다.

다만 관객의 기분을 즐겁게 해 주는 순간은 기쁘다. 비록 내가 좌절감을 느낄지라도 관객이 그런 감정을 공유할 필요는 없다. 프로 뮤지션으로서 관객 앞에서 연주할 수 있다는 점을 감사하게 여긴다.

--여전히 연습에 많은 시간을 투자하나.

▲예전처럼 연습하지는 못한다. 그래도 매일 하루 2시간은 연습한다. 3시간까지 연습할 때는 아주 좋은 날인 셈이다. 매일이 새롭다. 내가 노력해야 할 부분이 여전히 많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과거에 내가 훌륭한 연주를 했다고 해서 내일과 모레에도 그런 연주를 한다고 장담할 수 없다. 색소폰 연주자는 입술 등 신체적으로도 연주하기에 최상의 조건을 유지해야 하기 때문에 꾸준히 연습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아이디어가 생겨도 몸이 따라주지 못한다.

--연습과 영감 중 어느 쪽에 비중을 두나.

▲꾸준히 연습하면 좋은 뮤지션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이를 넘어 위대한 뮤지션이 되려면 우선 신이 내려준 특별한 재능을 갖춰야 한다. 그 후에 진정으로 연습해야 한다. 재능 있는 많은 뮤지션이 연습을 하지 않고 인생을 낭비하고 있다. 재능만으로는 부족하다. 연주와 음악을 사랑해야 한다.

--건강은 어떻게 유지하나.

▲적당하게 먹으려고 애쓴다. 규칙적으로 식사하며 고기를 먹지 않는다. 단 음식도 피하려고 애쓴다. 다만 생선은 좋아한다. 과일도 매일 먹는다.

--9ㆍ11 사태 당시 사고 현장 근처에 있었다. 충격을 딛고 곧바로 공연을 강행한 이유는.

▲아내가 강력하게 주장했다. 쇼크를 받아서 무대에 설 마음 상태가 아니었다. 하지만 아내가 '사람들을 돕기 위해서라도 이 콘서트를 해야 한다'고 설득했다. 당시 콘서트가 사람들에게 치유의 시간이 됐다고 믿는다.

--요가와 불교에 심취한 이유는.

▲요가를 하고 있으며, 불교도 좋아한다. 가치를 찾아가는 그런 상상을 좋아한다. 인도에서 요가를 가르쳐 준 선생님으로부터 '색소폰 연주도 일종의 명상이 될 수 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부처 같은 위대한 인물의 족적을 따라가려고 노력하고 있다.

--1950년대 말 '윌리엄스버그 다리 에피소드'에 대해 설명해달라.

▲당시 사람들은 나에게 많은 것을 기대했다. 연습이 더 필요하다고 느꼈다. 아이디어도 얻고 더 연습해서 돌아오자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내가 살던 뉴욕은 인파가 많은 도시다. 테너 색소폰은 힘차게 불어서 연주를 해야 하는데 그 소리를 사람들이 모두 좋아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거리를 따라 걷다가 그 다리를 보게 됐고 연습에 적당한 장소라고 여겼다. 차량 경적 등 많은 소음이 있어서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연습할 수 있었다.

--한국 문화에 대해 아는 것이 있나.

▲도쿄의 한국 식당에 간 적이 있다. 아주 독특하게 고기를 요리하는 것을 봤다. 하지만 난 채식주의자라 고기는 먹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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