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영화> 통렬한 역사의식 '고야의 유령'

(연합뉴스)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 '아마데우스' '헤어' 등 명작을 만들어낸 체코 출신의 명장 밀로스 포만 감독.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에서 피 한방울 나지 않을 것 같은 악역을 연기해 혀를 내두르게 한 아카데미 남우조연상의 주인공 하비에르 바르뎀. 하버드대 심리학과 출신, '레옹'의 소녀에서 최근만 해도 '마이 블루 나이츠' '천일의 스캔들'을 통해 완벽한 미모와 거침없는 연기를 선사하고 있는 내털리 포트먼.

이 세 명의 조합만으로도 충분히 관심을 집중시키는 영화가 '고야의 유령'이다.

제목에서도 드러나듯 이 영화의 화자는 스페인 출신의 세계적인 화가 고야다. 18~19세기 종교와 왕권의 갈등, 프랑스 혁명으로 비롯된 격변기의 혼란이 화가의 관점에서 진행된다. 영화는 문예적이며, 비판적이다.

혼란기를 맞은 화가는 현실 세계에서는 무력하지만 예술혼을 놓지 않으며 시대와 인간을 비판한다. 귀가 먼 그가 보는 세상은 눈으로 보는 세상, 그 이상이다. 신과 인간의 갈등, 아니 신을 빙자한 인간과 인간의 갈등을 지켜보는 그의 눈길은 매섭다. 하지만 그는 눈앞에 놓인 현실에서는 방도를 찾기 힘들다. 그도 살아남기 위해 애쓰는 사람일 뿐.

영화는 고야를 관찰자로 내세우면서 격변의 시기, 교활한 한 신부와 어린 양 같은 한 여자를 주인공으로 삼았다.

'돼지고기를 안 먹었다'는 이유로 젊고 아름다운 한 처녀를 이교도로 몰아넣고 잔인한 심문, 아니 고문을 일삼을 정도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른 18세기 스페인 종교재판소의 이면은 신에게 용서를 빌고 싶을 정도다.

이교도를 처단하는 데 앞장섰다가 아름다운 여인의 몸을 겁탈하는 비행을 저지른 로렌조 신부는 권력 앞에서 언제든 변신하는 인간의 나약함과 비굴함을 보여준다.

그리고 프랑스 혁명이 가져온 '자유'의 이상은 피지배자들에게는 그저 피비린내나는 권력 투쟁일 뿐이라는 엄연한 현실을 일깨운다.

스페인 궁정화가 고야에게 예술혼을 불어넣어주는 뮤즈 이네스는 어느 날 종교재판소의 소환을 받는다. 재판소는 돼지고기를 먹지 않았다는 이유로 갖은 고문 끝에 이네스를 이단인 유대교인이라고 결정해버린다.

이네스의 아버지 토마스는 토마스 성당 재건립 비용을 쾌척하는 등 딸을 구하기 위해 백방으로 애를 쓴다. 고야의 소개로 만난 철두철미한 교조주의자 로렌조 신부는 이네스를 도와주기는커녕 이네스의 미모에 이성을 잃고 이네스를 겁탈하고 만다. 토마스는 재판소와 똑같은 방법으로 로렌조 신부를 심문해 거짓 자백서를 받아내고 교단 지도부는 로렌조 신부를 추방한다.

15년 후 스페인은 나폴레옹이 이끄는 프랑스 혁명의 회오리에 휩싸이게 되고 로렌조 신부는 점령군처럼 다시 스페인에 돌아온다. 이번엔 인간이 신보다 위에 있다고 외치며.

이제야 피폐한 육신으로 풀려난 이네스는 화가 고야를 만나 감옥에서 낳은 딸을 찾아달라고 부탁한다. 로렌조 신부는 자신의 명성에 흠집이 날까 두려워 매춘부가 돼 있는 딸 알리시아를 해외로 추방하려 한다.

고야는 역사의 희생자인 두 모녀를 만나게 해주기 위해 백방으로 애를 쓴다.

내털리 포트먼은 아름다운 얼굴과 추한 얼굴을 모두 드러내며 관객과 만난다. 프랑스 혁명 전과 후의 하비에르 바르뎀의 발성을 눈여겨 들어보면 이 배우의 연기 폭을 가늠할 수 있다.

4월3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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